전통과 상상력: 서장 – 데이빗 브라운
전통과 상상력: 서장
데이빗 브라운
두 권 가운데 이 첫 권은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서 전통의 역할에 관한 부분이다. 그러나 두 권 모두 서로 따로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물론 두 권 모두를 볼 때라야 계획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목표는 전통이 성서와 그 너머에 있는 계시를 지켜내는 동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통은 그저 이차적인 것이나 반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적 계시와 그 이후의 전통을 대립시키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에 이 둘을 포괄하여 계속되는 과정에 있는 하느님의 손길을 봐야 한다. 이 주장을 세우려면 뒤따를 내용에서 성서적 통찰에 대한 제한을 많이 두어야 한다. 이 말을 오해할 수도 있겠다. 처음부터 밝히건대, 그 작업은 성서를 얕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보기에 성서가 감당할 수 없는 짐에서 성서를 구해내자는 것이다. 성육신은 하느님께서 그 최대치의 진정성으로 특수한 문화적 맥락이라는 제한을 받아들이셨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서에 항상 그 계시가 존재한다는 식으로 현대 교회가 지금 유지하고 있는 관점들을 가정한다면, 이야말로 계시를 냉대하는 것이 된다. 대신 우리는 어떻게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지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신앙 공동체의 역사에 끊임없이 관여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성서는 그 이야기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남아 있다. 뒤따를 내용에서 이후의 전개를 정당화하는 수많은 논쟁을 제공하겠고, 성서적 관점들에 대한 ‘교정’에 대해서 말하겠지만, 이는 앞선 성서적 전통과, 이후에 등장한 것에 대한 비판을 제공하는 그 힘을 부인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서라도 지적하는 까닭은 책의 내용에서 그런 점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별로 익숙하지 않은 논점, 즉 지속적인 전개의 필요라는 진리에 대하여 독자들을 설득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라는 말은 이 책과 그 자매편인 <<제자도와 상상력>>(Discipleship and Imagination)에도 등장한다. 이는 내가 교리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교리적 문제들은 종교적 믿음에 그 형태와 활력을 제공한 이야기와 표상들에 대해 이차적이며 의존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들과 표상들의 형태는 변한다. 이는 현존하는 의사소통의 가정들, 새로운 문화적 맥락들, 그리고 하느님의 계속되는 활동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아주 잘못되어 갈 것이다. 성서 본문의 의미에 대한 현재의 이해를 만든 역사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고, 매개 없이 성서 본문과 대화하겠다고 시도한다면 말이다. 둘째 권은 두 가지 문제에 천착하다. 첫째, 관여한 독자 – 제자 – 가 어떤 차이들을 만들어 내는가? 둘째, 이러한 제자도가 특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권위에 관한 문제들과 제자도에 대한 좀 더 개인적인 물음을 생각하는 독자라면 둘째 권을 살펴야 한다.
한편, 이 책에서는 논쟁의 일반 구도를 세우는 데 관심을 둔다. 뒤따를 토론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현대 세계의 세 가지 주요 양상들과 관련하여 내 논점의 맥락을 설명한다. 그 양상은 이렇다. 1)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현재 논쟁, 2) 그 결과로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와 종교 간 대화에 관한 경쟁적 주장들, 3) 그리스도교의 역설, 즉 많은 곳에서 특히 지극히 매력적인 부분(성탄절 축하 행사)에서 신학자와 설교자가 가장 당황스러워하며 발견하는 풍부한 상상의 세부 결과로 드러나는 역설. 그다음 2부에서는 고대 세계에서 종교 전통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살핀다. “움직이는 텍스트”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그 발생한 변화를 드러내 준다. 어떤 이들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역사를 아우르는 신앙 조상의 이야기에서 일어난 변화를 그리스 종교 전통과 나란히 놓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심한 독자에게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이 비교는 양 전통에 대한 신뢰를 반영하는 것이지, 성서 이야기의 가치를 손상하려는 것이 아니다. 3부는 특별히 그리스도교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그 개인에 대한 전유가 그 앞 장에서 보여준 유형에 어떻게 정확히 대응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성육신 교리를 훼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실은 그 교리의 진실성을 강화시키려는 것이다. 인간성과의 가장 위대한 그 접촉에서조차,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특정한 문화와 그 문화의 가정들에 제한시키셨으며, 그리스도가 이후의 계속되는 시대를 통하여 어떻게 전유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도록 지속적인 전개를 요구하셨던 것이다. 이 점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한 장을 시각 예술에 할애했다. 두 권의 책에 시각적, 문학적 상상력에 대한 자료가 거듭 나올 것이다. 이 상상력은 종교적 믿음이 살아서 발전하는 동력에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
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신앙이나 신앙이 없는 이들과 같이 다른 시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썼다. 여기서 제공하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른 방식으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즉 그 성서적 뿌리와 그 이후에 나온 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변화된 이해라는 시각에서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는 이들은 하느님의 손길을 배척하고 싶겠지만, 실제로 펼쳐지는 전통의 작동 방식과, 특별히 상상력에 대하여 내가 적용한 핵심적 역할과 관련한 주장들에 대해서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책 마지막에 참고문헌은 달지 않았다. 대신에 각 장에서 특정한 저술이 처음 언급될 때 그에 대한 세부 서지 사항을 찾을 수 있다.
* David Brown, Tradition and Imagination (OUP,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