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전통과 시적 언어

성공회 전통의 신학과 신앙의 언어는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의 언어와 사뭇 다르다. 그 다른 특징을 변별하여 ‘시적 언어’가 성공회 신앙의 언어요, 그런 점에서 아예 성공회의 영성을 “시적 상상력”으로 이름하여 풀어 내기도 한다.1

신앙이 철학의 언어와 법률의 언어에 예속되는 동안, 신을 논리에 가두어 배타적인 진리의 소유를 주장하는 무리가 득세하거나, 법적인 채무 관계로 해석하여 범죄와 처벌에 따른 심판자 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곤 했다. 이는 대체로 확실성의 언어이다.

그러나 시적인 언어는 불확실성의 언어이다. 그것이 비추는 신앙과 하느님은 철학적 논리와 법적 관계에 균열을 낸다. R.S. 토마스의 말을 빌자면 “지식의 상처”(the wound of knowledge)에 관여한다. 그리하여 좁은 행간 사이로 드리워진 의미의 비약과 심연은 하느님과 인간의 거리감을 암시하는가 하면, 종이에 찍힌 그 물리적 행간은 금세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좁디좁다고 비춘다. 비약과 모순의 이미지와 상징과 언어가 목적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다만, 그 시적 언어에서 가만한 응시, 혹은 어찌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시선을 본다. 그것이 하느님의 시선과 닮았으리라 생각하며.

성공회 전통에서 이런 시적 언어의 대가들은 존 던(1572-1631) 조오지 허버트(1593-1633), 토마스 트라헌(1636/7-1674)으로부터 T.S. 엘리엇(1988-1965), W.H. 오든(1907-1973), 그리고 R.S. 토마스(1913-2000)에 이른다. 어떤 이는 성직자요, 어떤 이는 신실한 신자였으나, 모두 하느님과 삶에 관한 의심과 의문을 감추지 않고, 그 갈등을 시의 언어로 토로했다. 그 의심 사이에서 떠오르는 하느님이라는 시상을 나누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신 경험-인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때가 되어 늘그막이 소일할 일마저 없게 되면, 이런 성공회의 시적인 언어들에 기대어 나 자신을 비추고 하느님을 엿보려 번역했던 시들을 몇 수 모아 해적판 시선집이라도 내볼까 한다. 나 스스로 좋은 시를 쓸 수 없음을 한탄하지 않아도 되려니와, 하느님께서 성공회 전통 안에 허락하신 아름다움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만으로 벅찬 일일는지 모른다.

  1. cf. Bill Countryman, Poetic Imagination: An Anglican Spiritual Tradition, 1999.(↩)

2 Responses to “성공회 전통과 시적 언어”

  1.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성공회 역사와 전통은 왜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가? Says:

    […] 조오지 허버트(George Hebert), 존 던(John Donne), 헨리 본(Henry Vaughan) 정도는 잘 알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성공회의 위대한 신학자와 영성가에 관해서도 잘 […]

  2.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존 던 – “죽음아, 뽐내지 마라” Says:

    […] 시인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존 던(John Donne)의 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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