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역사와 전통은 왜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가?
영국에 가 계신 최스테파노 수사님(성공회 프란시스 수도회)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차가 아주 고약해서 줄곧 실패하다가 오늘에야 연락이 닿았다. 어떤 글을 읽자니 지난 몇 해 동안 나와 나눈 대화가 송곳처럼 되살아나더라는 말이었다. 신학교 성직 양성 과정과 성공회 신학과 역사에 관한 교육 문제였다. 내친김에 글을 번역해서 나누자고 했고, 그 초벌 번역을 검토하여 다시 싣기로 했다.
(실은 위 문단 아래에 긴 투정 어린 잡감을 적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다 날아가 버렸다. 그런 허튼 투정은 우리 현실을 비판하고 누구를 탓하는 모양이 돼서, 그들에게도, 내게도 덕이 될 일이 아니니, 염려 많은 블로깅 프로그램이 내 안전을 위해 적당히 알아서 날려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오래도록 나눈 대화와 생각을 지인들을 잘 알 것이다.)
성공회 역사와 전통은 왜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가?
배리 오포드 신부 (옥스퍼드 대학교 푸지 하우스 신학교, 문서자료실 사제)
성공회 신학교 과정을 잘 아는 한 친구가 내 길을 가로막고 말했다. “문제는 성공회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는 이들을 성직 후보자로 양성한다는 거에요.” 요즘 성직후보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성공회 역사와 영성은 물론, 그 역사 안의 중요한 인물들에 관한 이해 수준이 바닥이라는 말이었다.
그 친구 말이 맞는가? 만약 성공회 사제들이 성공회 역사와 영성 전통에 대해 무지하다면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다. 1970년대 초반 내가 신학교에서 성직후보자로 훈련을 받을 때를 돌아봐도 우리 성공회 유산에 관한 일관된 교육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이제 고인이 된 위대한 교회사학자 헨리 채드윅(Henry Chadwick) 신부가 경고한 대로, 성공회는 지금 기억 상실증 환자가 될 위험에 놓여 있다. 그나마 이 말은 그 사람이 적어도 지금은 잃어버린 정보를 한때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성직자들이 잃어버릴 지식조차 없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성직후보자들은 어디서 우리의 과거와 토대에 대한 이해를 얻을 것인가? 성직후보자는 신학교에서 관례에 따라 신학 학위 과정을 위해 공부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공회 역사와 영성은 별로 인기가 없는 듯하다.
성공회 신학교는 성직후보자들을 우리 전통 속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소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인 접근과 더불어 체험적인 접근 방법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 기도서의 역사에 관한 강의는 성공회의 영성 전통을 만들어낸 형식과 언어, 특히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체험하는 일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성공회 역사학자였던 존 무어만(John Mooman) 주교는 이렇게 썼다.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와는 다른 위대한 영성 전통을 지녔다.” 성공회의 영성 전통을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 미래에 성공회 사제가 될 신학생들은 조오지 허버트(George Hebert), 존 던(John Donne), 헨리 본(Henry Vaughan) 정도는 잘 알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성공회의 위대한 신학자와 영성가에 관해서도 잘 아는가?
청교도주의에 맞서 싸우면서 성공회의 본질을 확립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도덕신학과 수덕신학을 통해서 새로운 “실천 신학”을 마련했던 인물들을 떠올려 보라. 예를 들어, 리차드 후커(Ricard Hooker), 랜슬롯 앤드루스(Lancelot Andrews),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로버트 샌더슨(Robert Sanderson), 윌리암 비버리지(William Beveridge) 등을 떠올릴 수 있는가?
교회에 남은 골동품 연구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다. 성공회 기도서나 그보다 못한 킹제임스 성경을 숭배하자는 말도 아니다. 17세기 정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요구와 경험과 이해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신학자들이 말해줄 거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현재의 성공회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들의 존재와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서지 못한다.
걱정스럽다. ‘성공회’라는 말을 역사적 정당성이 없는 용어로 내동댕이치는 일을 볼 때도 그렇거니와, 어떤 사람들이 성공회에서 성직후보자가 된 이유가 성공회에 헌신해서가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성공회가 “고기를 잡는데 유리한 고깃배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자니, 걱정스럽다. 우리 역사와 전통에서 배우지 않으면, 우리의 목적도 금세 흐려지고, 물려받은 전통의 가치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게 된다.
미래의 성직자들이 성공회의 유산 위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신학교의 사제 양성 과정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특별히 성직후보자들에게 필요한 자격 요건이 일반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의 요건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분명히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성공회 역사에 관한 무지가 교회 일치 대화에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교회 일치 운동은 각 대화 당사자 교회의 전통이 마련한 공헌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전통을 모른다면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줄 것은 없다.
교회사는 신학 공부에서 자주 무시당하거나 관련 없는 일로 취급된다. 성공회 역사는 성직자 양성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서 성직자는 사회와 교육에서,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무시당하는 그리스도교와 성공회의 유산을 가르쳐야 한다.
성공회 영성신학자 알친(A.M. Allchin)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회 신자는 지금 깨닫지 못하는 전통의 상속자이다.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기억(역사)을 회복해야 한다.” 성공회의 독특한 신학 방법, 그리고 하느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방법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 4세기 동안의 성공회 영성을 아우른 선집이 2001년에 출간되었다.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 등이 편집한 “Love’s Redeeming Work”(OUP)라는 책이다. 과연 성직후보자들 중 몇 명이나 이 책을 사서 읽으며 성공회의 위대한 유산을 익히라고 지도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성공회 신자들은 우리 성공회의 질과 가치를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성공회의 위대한 유산 속에 담긴 가치를 깨닫고 받아들여 자신감과 정체성을 회복할 때이다. 제3천년의 시대가 던지는 도전들에 잘 대응하려면 우리 자신이 쇄신된 성공회 신자가 돼야 한다. 이 쇄신은 성공회의 초석을 놓은 신학자들의 생각과 신심을 알 때라야 가능하다. 그들도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에 관한 분명한 가르침을 찾는다. 이들이 우리 성공회에 귀 기울이게 하고 싶다면, 이미 검증된 “성공회 교부들의 신앙”에 뿌리를 두면서 우리 시대에 맞게 다시 빚어진 성공회 방식의 제자도를 당당하게 전해야 한다.
원글: The Rev. Dr. Barry Orford, “Why history is crucial to the Church’s future” in The Church Times, Feb 8, 2013
번역: 최스테파노 수사 / 수정: 주낙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