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총리와 성공회, 두 개의 일화
마가렛 대처 UK 전 총리(1925~2013)의 부고에 많은 이들의 감회가 복잡하고 논쟁도 격렬하다고 들었다. 과거 행적에 대한 어떤 호불호가 있더라도 죽은 이와 유가족에게는 진정으로 평화로운 안식을 빌고 위로를 건네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모두 죽음 앞에서 평등하고, 바로 그 죽음의 평등은 거룩하고 엄숙하기 때문이다. 그의 평화로운 안식을 빈다.
그가 세상에 남긴 신자유주의 체제는 많은 이들, 특히 힘없는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에서 비롯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정치의 유산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각각 이익과 불이익을 가져다주면 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마련이다.
그는 보수주의의 이념인 ‘조화’를 주장했지만, 그의 실제 정치는 ‘분열’을 일삼았다. 보수주의의 나쁜 민낯인 “부자에게 이익을, 가난한 이들에게 불이익”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다. 이점에서 그는 정말로 ‘나쁜’ 보수주의의 화신이었던 셈이다.
(내가 아는) 성공회와 관련된 대처 총리의 일화 두 개.
1.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영토 전쟁에서 승리한 대처 총리는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로버트 런시 대주교(1921~2000)에게 “승전 기념 미사”를 부탁했다. 그러나 런시 대주교는 ‘하느님이 보기에 전쟁에서는 승리와 패배란 없으며, 오직 희생자와 유가족만이 있다’며 “승전 기념 미사”를 거부하고, 대신에 양국의 “전쟁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위령 미사”를 진행했다. 게다가 런시 대주교는 대처 총리가 야기하고 탄압했던 광산 파업 현장에 방문하여 파업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2. 로버트 런시 대주교의 은퇴 이후, 대처 총리는 차기 캔터베리 대주교 지명을 통해 성공회에 복수했다. 국교(영국에서만)인 ‘영국’ 성공회의 관례상 캔터베리 대주교 후보 두 명의 명단이 총리실에 올라가 지명을 받는다. 한 명은 사실상 지명될 후보, 다른 한 명은 지명 가능성이 지극이 낮은 형식상 후보. 그러나 대처 총리는 관례를 깨고, 형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후보자를 지명한다. 그가 바로 ‘복음주의자’ 조오지 캐리 대주교. 캐리 대주교 아래서 영국 성공회는 런시 대주교를 통해서 새롭게 연 ‘복음적 정치학’에서 뒷걸음쳐 우향우를 거듭했다.
물론 대처의 캐리 대주교 지명에 대해서도 성공회 안에서 찬반이 엇갈렸다. 그 유산은 여전히 많은 이들을 괴롭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