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유산” 잡감

‘운동권’이라는 말에 객관적인 거리 두기가 내게는 쉽지 않다. 내 개인적 관여의 깊이가 균일하지 않았으나 몸이든 마음이든 그 울타리 안팎과 다른 언저리를 오갔기 때문이다. 그 안팎을 지켜보는 처지에서 복잡한 심경이 많으나 그 모진 세월 속의 경험에 대한 판단을 주저했다. 존경과 연민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것이 한 사회의 유산(legacy) 일부가 되고 그 영향력이 어떤 식으로든 행사되고 있을 때, 이를 살펴보는 일은 절박하다.

그 운동권 ‘경험’이 아니라, 그 ‘유산’을 두고 든 여러 생각이 많았다. 지난 한 해 동안, 트위터에 잠시 짧은 생각만을 보태고 긴말을 피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다시 한번 돌아보니, 줄기차게 잡히는 ‘멘탈리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을 더 풀어낼 처지는 아니나, 그 단상의 일부를 옮겨놓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생각거리도 삼기로 했다. (트윗 기록, 시간 역순)

  • 소위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에서 느끼는 공통점. 격한 경험과 사고로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하고, 상대를 뭉개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태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처한 상황으로 정당화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담함. 결국, 자기 성찰성이 없는 것.
  • 1년 전, 미국을 방문한 기회에 나를 만나자고 해서 만난 기독교운동권 출신 목사님과 맥주 한잔하던 일이 떠오른다. “요즘, 미국서 유행하는 신학이 뭐에요?” “유행하는 신학 없어요. 그런 것에 매달린 탓에 한국 진보 신학이 이렇게 엉망이 된 것 아닌가요?” – 돌아보면, 이런 내 퉁명스러운 대답이 좀 미안했다. 그러나 식민지 신학을 넘겠다는 고민이 여전히 식민지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발견한 탓에 욱, 올라왔던 듯하다. 한국은 우선 ‘쌈빡한 바람’에 기우는 태도를 잠재워야만 일이 될 것이다.
  • 80년대 운동권 문화 일부에서는 억압적 질서에 대한 비판과 해방이라는 이름 아래서 무책임한 일탈도 눈감아 주곤 했다. 그러나 종종 그 일탈과 그 성향이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다가 이후 권력과 만났을 때, 패권을 휘두르는 억압적 일탈이 탄생하곤 한다.
  • 근사하게 영적으로 해석하거나 에둘러 핵심을 피하는 동안, 교회 외부를 향해서는 진보로 간판 장사를 하며, 교회 내의 개혁에는 침묵하고 각자도생을 꿈꾸는 이들이 두른 성직 칼라는 도대체 뭘까? 이 일관성이 없는 곳에 권위는 없는 법.

    하기야, ‘교회와 교단이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제는 짐짓 커밍아웃까지 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주도 세력을 자처한다니, 이 교회의 불행은 분명하다. 80년대 설익은 운동권 신학과 소위 조건 활용론의 포로가 된 교회.

    교회의 내적 포로 상태는 이런 것일 테다: 교회/교단 전통에 대한 무지 혹은 무시 + 그 결과 전통에서 길어올릴 해방적 근거의 부족 + 그 탓에 근거 없는 아전인수 + 386 유산이 만든 침묵의 카르텔과 그 개신교 멘탈리티 + 도통한 척 + 각자도생

    이 포로 상태는 다른 말로 하면 여러 형태의 식민지 상태다. 탈-식민은 구호와 논리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다. 탈-식민의 논리가 어떻게 자기 성찰의 논리가 되어 삶의 일관성을 회복하느냐는 문제다. 이것이 외적인 정치적 식민 탈출과 탈-식민의 차이다.

  • 자신이 얽혀있는 권력관계에 대한 섬세한 자각과 성찰이 없이는 개혁이니 진보, 영성이니 도통이니 하는 것들은 대체로 의식-무의식의 자기 배신이다. 그러니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사학에 불과한 일이 많다.
  • 자신들에게 도전하면 ‘응, 우리도 다 알아’ 혹은 ‘너희는 복잡한 속내를 몰라서 그래’ 라며 입을 막는다. 자신을 예외로 두고는 변화는 없다. 이를 살피지 않고 영성을 말하고 도통한 척들 하니 소위 ‘진보적’ 교회 꼴이 어떻겠나?
  • 80년대 낭만적/나이브한 운동권 신학이, 이후에 성취한 기득권과 만날 때, 더욱 공고한 권력체계를 구성한다. 그 나이브한 낭만성에서 비롯한 진보성의 수사학이 그 세대의 강렬하고 ‘유니크’한 경험과 문화가 지배하는 구조가 만났기 때문이다.

    결국, 열망이 식은 자리에 탐욕이 대신 꿰찬다. 그런데도 그것을 계속 열망이라 우긴다. 그 열망을 부인하면 자신의 기득권을 변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 식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망과 탐욕을 식별하는 것이다. 갖지 못한 이들은 탐욕할 수 없다. 이들이 거친 것은 탐욕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 때문이다.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여전히 영적 식별을 하려 한다면, 이제 타자가 된 고통스러운 열망에 귀 기울여 자신의 초발심을 되살리는 길 밖에 없다.

  • 어떤 형태의 좌파든 진보든, 그들이 자리 잡은 처지를 살펴보면, 그들이 말하는 진보나 개혁이라는 말은 대체로 그 지위의 안전한 테두리에서 나온 호사스러운 변주일 뿐인 경우가 많다. 변혁과 탈식민을 외치는 방식은 엘리트주의에 기울고, 그들이 차지한 자리에서 실제 보이는 행태는 기존질서의 권위주의를 빼닮았다. 이의를 제기하면, ‘너희는 복잡한 속내를 몰라’라며 입을 막는다. 80년대 운동권 문화와 그 얼굴들이 겹친다.
  • 좌파의 힘은 자기 성찰성에 있다. 그 성찰성의 출발은 ‘자신이 지닌’ 현실의 기득권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한계를 넓히기 위해 ‘판단중지’하고, 현실에 직면하여 ‘기술'(description)에 힘쓰는 것. 우리 사회와 교회가 왜 도돌이표인가 생각할 때.

최장집도 작년에 소위 운동권에 대해 뼈아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아래 인용 내용이 폐부를 찌른다. 사회나 종교 조직에도 해당하는 지적이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나빠진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민주화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 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한국 민주화에서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부정하려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그 뒤 정치인이 되고 진보 정당을 하고 사회 운동을 주도한 것이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떠한 실체적 혜택을 주었고, 이들을 위한 정치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 무엇을 기여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One Response to ““운동권 유산” 잡감”

  1.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안녕 – 분노를 내려놓기로”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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