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탄생 이콘

정교회 전통에서 이콘(ikon)은 그림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신비를 비추는 창(窓)이다. 신비를 비추기에, 인간의 신학적 사고를 전달하는 다른 도구인 언어의 신학과 더불어 이콘의 신학이 있다. 그래서 이콘은 그림이 아니라 신학이기에, “그린다”고 하지 않고, “쓴다”고 한다.

고마운 분들과 독자들에게 성탄의 은총과 복락을 바라는 인사를 드리며 나눈 이콘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담은 신학이다. 이참에 이 이콘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이 이콘이 쓴 성탄의 신학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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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탄생 장면을 이런 모양으로 드러낸 이콘은 14세기 비잔틴 정교회 관습 이후에 정형화되었을 것이다. 성서 이야기에서 나왔을 장면을 더하고 빼면서 좀 더 복잡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배치도 조금씩 다르다. 오늘 제시한 이콘도 이후에 발전된 전형 가운데 하나다.

  1. 무엇보다도 장면이 낯설다. 우리가 대체로 서방 교회의 ‘성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서방 교회의 탄생 ‘성화’는 대체로 아기 예수에 집중하지만, 동방 교회의 이콘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사이에 오시는 사건의 신비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2. 이 이콘의 중심인물을 잡기가 난처하다. 아기 예수보다는 마리아에게 중심을 이룬 느낌이다. 당연하게도 아기보다 크고, 다른 인물보다 크며, 아기 예수와 함께 화면의 중심부를 차지한다. 마리아가 누운 붉은색이 강렬하다. 이 붉은색은 해산의 피, 그리고 생명을 상징한다. 참 생명이신 하느님을 낳은 분(Theotokos: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돋보인다. 탄생 사건의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3. 이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어두운 동굴이다. 이 동굴은 예수를 환대하는 않는 세상을 상징한다. 예수가 연약한 아기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 왕으로 등장하기를 기대했던 세상의 욕망을 보기 좋게 뒤집는다. 그리고 그 두텁고 완고한 인간 동굴의 벽을 꿰뚫는 빛 세 가닥이 아기 예수께 닿는다. 삼위일체의 빛이다. 그 안에 별이 있다. 별이 있다. 세상 많은 사람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다.
  4. 이 사건을 축하하고 예견한 많은 이가 있다. 동굴을 꿰뚫고 가르는 빛 양편에는 천사들이 등장하여 노래한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5. 왼쪽 화면 중간에는 동방박사의 행렬이 보인다. 이 역시 예수의 탄생이 모든 세계에 알려졌다는 뜻이요, 하느님의 구원 사건이 전 우주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6. 오른쪽 화면 중간에는 한 천사가 목자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린다. 그 옆으로 이새의 나무가 보인다.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점, 약속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7. 오른쪽 화면 아래에서는 요셉의 고뇌가 흥미롭게 눈에 잡힌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진 마리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두려워하고 고뇌한다. 그 옆에서 목자로 변장한 마귀가 요셉의 고뇌를 부추긴다. 마리아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아기를 버리라고 유혹한다. 이 장면은 ‘테오토코스’ 교리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8. 이와 쌍으로 왼쪽 화면 밑에는 산파가 등장한다. 예수는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다. 산파가 필요했고, 태에서 뭍은 피를 씻어야 했다. 메시아는 참 인간이다는 교리적 선언이다.
  9. 다시 아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를 가까이서 맞이하는 소와 나귀가 이채롭다. 이사야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 오늘날의 세계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10. 아기는 흰옷을 입고 구유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수의를 입고 관에 뉘인 모습이다. 아기 예수의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이다.
  11. 마리아의 시선은 아기를 향하지 않고, 우리를 향한다. 이콘마다 조금씩 다양하긴 하지만 걱정스러운 눈을 거두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당신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텐가?”하고 묻는 시선이다. 아니면, 이 부서질 듯이 연약한 아기와 자신을 저버리지 말라는 애처로운 눈망울이다.

이 그리스도 탄생의 신학을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시겠는가? 마리아의 걱정스럽게 애처로운 시선에 어떻게 여러분의 눈을 맞추시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 시선을 돌리고 누구를 품을 것인가?

One Response to “그리스도 탄생 이콘”

  1. Paschal Says: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확실성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의심과 회의와 불확실성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격려가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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