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와 공동체

멀리서 안부를 묻는 어느 벗된 신부님의 편지에 답장했다. 공부하는 일에 관한 고민과 여러 어려움이 담겨진 편지였고, 나를 여러모로 기억하며 격려해 주는 편지였다. 나 역시 깊이 공감하고 그분을 응원했다. 그러나 먼저 된 사람으로서 이렇게 밖에 적어 보낼 수 없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편지는 늘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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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바실, 요한 크리소스톰, 신학자 그레고리)

*** 신부님, 잘 지내셨지요? 자세한 소식을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울러 [오래 전 제가 진행한 전례 워크숍과 특강 등에 관한] 옛 기억을 되새겨 주시니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부끄럽게도, 지난날을 돌아보면, 지금은 그 열정이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에 하늘을 멍하게 쳐다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지난 5년은 제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안팎[에서 비롯한]… 깊은 절망에 저 자신이 눌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여기저기서 밝힌 바와 같이, 지난 10여 년의 미국 생활은 제게 여러 가지로 축복이요 은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분들을 만나서 깊은 공부와 경험을 한 것이 그것이고, 공부와 더불어 사목 현장에서 발을 떼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신자들과 버텼다는 것이 스스로 자랑스럽고, 그나마 하느님 앞에 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찌보면 지금처럼 제 공부의 진척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성직자로 불린 이상 어떤 이유로도 사목 현장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교회의 변화는 그야말로 교회의 현장에서 일어나지, 신학교나 신학자의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 혹은 신학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현장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경험을 좀 더 보편적인 언어로 정리해 내고, 역사와 전통 안에서 그 맥락을 이어주고 새로운 대화의 길을 열어주는 일에 종사할 뿐입니다. 이 순서가 잊히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회와 신학, 특히 신학은 ‘지식인의 유희’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 현장을 누가 점령했는지 깊이 살펴볼 일입니다.

특히 신학교는 “성직자 양성 기관”이며, 신학을 가르치는 이는 그 일에 복무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르치는 신학자”의 임무이며, 이 임무를 하지 않을 요량이면, 그냥 “연구하는 신학자”로 남으면 될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직자 양성 과정에 대해 깊이 살펴보는 기회를 얻길 바랍니다. 학위는 개인적인 성취이지, 교회의 성취는 아닙니다. 그것이 교회의 성취가 되려면 교회 현장과 신앙 교육에 연결돼야 하고, 좁게 보더라도 성직자 양성 과정과 연결돼야 합니다.

[…] 여러 식으로 한국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 공통적인 아쉬움은 교회에 좀 먹는 반지성/반신학주의와 신학교의 전혀 헤아릴 길 없는 신학 교육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 편견이겠으나, 한국 성공회의 실패는 바로 이런 지점의 결핍에 있습니다. 그 와중에 교회는 더욱 피폐해져 갑니다. 더 나빠진 한국 교회로 돌아가는 마음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어쨌든 신학 교육과 성직 양성 과정에 대한 고민을 계속 고민해 주세요. […] 적어도 저는 여기에서 그 점을 깊이 경험하고 대화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깁니다.

‘꼰대’ 같은 소리를 지껄여 대서 미안합니다. 신부님께서 깊이 생각해 주시리라 믿기에 드린 말씀일 뿐입니다. […]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적었다고 헤아려 주세요.

평화를 빕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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