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나눔의 집, 대안 공동체
관계는 돈이나 재원의 전달에 기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희망과 두려움과 삶의 이야기를 교환하는 일에 기반한다. 그리스도교 영성이 의미하는 바는, 함께 먹는 일, 함께 나누는 일, 함께 마시는 일, 서로 이야기하는 일,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 서로를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일이며, 이런 일 속에서 모든 이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내쫓긴 사람들, 얻어 맞고 사는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대안적인 전망(vision)인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in Elizabeth S. Fiorenza, In Memory of Her
어제는 봉천동 나눔의 집에 다녀왔다. 성공회 나눔의 집의 선교 실천과 영성에 마음의 빚을 많이 진 사람으로서, 기회가 되는대로 들러서 경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 며칠 전에 몇몇 나눔의 집 신부님들과 작은 공동체 안의 전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으나, 전례란 그것이 드려지는 현장에서 함께 참여할 때라야 경험되는 법, 그래서 작년 성북 나눔의 집을 방문한 것처럼 주일 미사에 함께 참여했다.
봉천동 나눔의 집은 이제 섬처럼 남아 있었다. 재개발이 완료된 뒤 들어선 주위 아파트들에 둘러 싸여 ‘아직’ 옛모습으로 남아 있는 몇몇 이웃들과 함께 그 오래된 보금자리를 20년이 지키고 있었다. 7년 전엔가 들르고 나서 다시 찾은 나눔의 집은 그때와는 달리 한없이 작게 보였다. 그러나 이웃 여러 채의 허름한 집들 사이에 혹은 뜰에 정성스럽고 소답스럽게 핀 작은 화단과 꽃들로 여전히 아름다운 생명을 피워내고 있었다. 작은 담장을 뒤덮은 푸른 잎의 넝쿨들은 그 너머 보이는 위압적인 고층 아파트의 페인트와 대비되는 푸르고 풍요로운 생명을 시위하고 있었다.
나눔의 집은 문턱 없는 환대의 공동체요, 나눔의 공동체이다.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모두 품고 와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를 안고 온 산모를 함께 축복하고, 축하의 떡을 함께 나누며, 콩나물밥에 간장을 비벼 먹고 시원한 콩나물국을 곁들여 배를 채웠다. 편하게 둘러 앉아 작은 공동체 안에서 누릴 전례의 기쁨과 행동들, 그리고 이를 위해 개선할 점들을 서로 나누면서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살짝 얼린 막걸리가 배달되었다. 걸쭉한 막걸리와 그 사발 만큼이나 진하고 편한 이야기들을 행복하게 나눴다. 1부의 미사에 드린 성찬례를 2부인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온 것이다.
기쁘고 반가운 하루를 마련해 준 이들, 그 착하고 맑은 마음들에게 깊은 합장.
June 16th, 2008 at 9:18 am
나눔의 집이라면 부평교회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노원 나눔의 집 박순진 신부님과 송민기 사무국장님이 오셔서 사회선교에 대해 강의해주셨지요. 조금은 지루했지만, 질문과 답변을 통해 사회선교실무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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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3rd, 2008 at 9:5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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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4th, 2008 at 8:23 pm
정말 오랜만 이예요.
신부님, 혹시 도로테 죌레 선생이 쓴 ‘사랑과 노동’도 읽어 보셨나요?
저두 피오렌자 선생이 쓴 책을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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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9th, 2008 at 10:23 am
혜이안 / 오랜만이군요. 지난 약 20년 동안 죌레의 [사랑과 노동]이 준 충격과 여파, 무엇보다도 그 감수성은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뽑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피오렌자의 In Memory of Her 는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챤 기원의 여성신학적 재건] (종로서적, 1986).
다시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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