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이를 눈물로 보내며…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안에서 친구의 딸도 목숨을 잃었다. 참사를 지켜보면서 동동 구르던 마음이 친구 딸의 소식과 더불어서 거의 무너져 내렸다. 며칠 후에 찾은 아이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나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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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어제 아침, 아침 미사를 마치고 서둘러 친구인 유경근 님의 딸 “예은이”를 만나러 수원 연화장에 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연화장 올라가는 길에는 안산 단원고의 상징색인 초록 리본에 달린 슬픔과 아픔, 미안함과 분노가 비에 젖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내 몸도 이미 흔들리며 젖었습니다.

근 십여 년 만에 얼굴로 만난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슬픔의 무게 때문에 땅바닥에 닿을 만큼 지친 모습이었지만, 나를 안고 손을 잡을 때는 오히려 거목처럼 든든하게 섰습니다. 예은이가 휘청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 아빠, 언니 동생들을 앞세우고 한 줌의 재, 그러나 여전히 예쁜 꽃가루로 우리에게 앞에 섰을 때, 우리의 통곡은 땅 속 깊은 곳을 적셨고, 하늘 끝까지 사무쳤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예은이를 먼저 온 친구들 옆방에 나란히 안치했습니다. 그 꽃가루를 담은 함들을 보니 불교 신자 친구, 그리스도교 신자 친구, 종교 없는 친구가 모두 사이 좋게 어깨동무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어른들보다 나은 세상을 이미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정 화엄 세상이기를 기도했습니다.

안치 예식 때에, 친구는 내게 기도를 청했습니다. 가족 앞에 섰을 때, 내 울음 섞인 기도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로 서니 하느님이 이렇게 우리에게서 선물을 거둬가시는 법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든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하느님께라도 따지겠습니다…” “남은 언니와 동생들이 남은 삶 동안 터럭 하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의 찢어진 가슴을 사랑과 위로로 평생 채워주시지 않으면… 하느님이든 누구든 우리 원망을 받으실 것 아시라”고 하느님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는 이 사회의 악과 그 사슬을 끊어내도록 당신 백성을 다그치라”고도 하느님께 부탁했습니다. “당신 자신이 아들을 잃으셨던 그 고통과 슬픔의 하느님만을 믿으며 살겠다”고도 다짐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기도를 우리는 눈물을 담아 하느님께 올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제 예은이에게 기도했습니다. 세상의 꽃 같은 아이들을 지키는 수호천사가 되어달라고. 못나고 나쁜 어른들이 정신을 못 차리거든 하늘에서 함께하는 친구들과 함께 낡고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는 일곱 천사가 되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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