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 – 우리의 현장과 선교
토착화(土着化) – 우리의 현장과 선교1
성공회 강화읍 성당은 우리 성공회가 자랑하는 신앙과 문화의 유산입니다. 불교의 사찰과 유교의 향교 건축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 아름다운 성당으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우리 서울 주교좌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적인 서양 건축이지만, 곳곳에 우리 전통과 문화의 아름다움이 녹아들어 장엄하고도 따뜻한 신앙과 전례의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서 더욱 아름답게 피어오릅니다. 우리는 이 두 성당을 토착화의 한 열매라고 봅니다.
토착화를 건물에만 제한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토착화’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양한 인간의 삶과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내려 자라나고 펼쳐지는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신앙과 신학이 ‘토착화 신학’입니다. 복음의 토착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참여하시어 인간 예수로 오신 성육신 사건에 뿌리를 둡니다. 특정한 시대와 지역과 문화 속에서 활동하신 예수님 자신이 바로 토착화의 근거입니다. 토착화는 역사를 향한 복음의 증언인 선교의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토착화의 의미를 넓고 깊게 물으면, ‘상황의 신학’ ‘현장 신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외국 선교사들이 심은 신앙과 신학을 넘어서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상황과 맥락과 현장 안에서 그리스도를 신앙하고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두 가지 토착화 신학이 돋보이는데, 민중신학과 종교문화의 신학이 그것입니다.
민중신학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의 사회와 정치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고 응답하는 신학입니다. 특히 1970년대와 80년대의 사회 정치적 억압과 격동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비추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에 집중하며 성서를 해석하고 그에 따라 실천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종교문화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한국의 종교와 영성이 만나서 대화하는 일에 열중합니다. 선교사보다 먼저 오시는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를 깊이 깨닫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 속에서 이미 펼쳐진 영성의 경험과 표현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서로 비추면서 복음의 뜻을 더 깊이 헤아립니다.
일찍이 신앙과 복음의 토착화에 남다른 식견을 보여주었던 우리 성공회에는 이제 어떠한 현장의 신학과 선교가 필요할까요? 한국 사회 속에서 복음의 작은 씨앗을 품은 우리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키워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그 나무에서 우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다시 맺을 수 있을까요?
-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2014/07/20에 실은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