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 신앙과 교회의 근본

환대 – 신앙과 교회의 근본1

주낙현 신부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며, 옳은 사람을 옳은 사람으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40-42).

종종 편안하게 기대어 안주하고 싶은 마음으로 종교를 찾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종교 경전에서 멋진 한 두 구절을 만나 마음을 위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거기다가 약속된 상까지 있다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은 이런 사람 마음에 관하여 몹시도 단호한 선언을 던집니다. 적어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은 말씀 자체인 예수님의 삶과 그 도전에 정직하게 대면하는 사람이기에, 오늘 복음 말씀을 허투루 듣기 어렵습니다.

마태오 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교사로 파송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당부하시며, 그 선교 활동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를 염려하고 격려하십니다. 오늘 복음 본문은 그 당부와 염려와 격려의 결론입니다. 그것은 예언자와 옳은 사람과 보잘것없는 사람을 ‘환대’하라는 명령과 그에 따른 보상의 약속입니다.

오늘 말씀을 따르면, 하느님 신앙은 예수님을 환대하고, 예수님이 보내신 제자들을 환대하는 행동에 달려있습니다. 그 제자들은 다름 아니라, 예언자와 정의로운 사람과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환대하는 행동이 신앙이고, 이들을 환대하는 공동체가 바로 참된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과 교회가 참된 신앙의 공동체인지를 알아보려면, 우리가 지금 속해 있는 현실의 교회 안에 예언자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정의로운 사람이 발을 붙이고 있는지, 보잘것없는 사람이 환대받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이 교회와 사회 안에서 예언자로 살아가고, 정의롭게 살아가고, 작은 사람으로 겸손히 살아가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입니다. 성서에 따르면, 예언자는 못 배웠거나 천한 신분이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는 힘을 가진 사람들, 특히 종교와 정치의 여러 지위와 권력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용기 있게 쓴소리를 쏟아내는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대하기 불편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때문에 교회는 썩지 않고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일 수 있습니다. 이들 덕분에 교회는 세상에서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옳은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을 말합니다. 혼자서 이루는 옮음과 정의는 없으며,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정의는 늘 공동체와 관련된 일이니까요. 공평한 대접과 공정한 절차가 정의의 기초입니다. 이런 기초를 에둘러서 정의를 말할 수도 없고 이룰 수도 없습니다. 건물의 초석이 어긋나면 아무리 우람하고 아름다운 건물도 곧 위태로운 처지에 빠집니다. 교회는 이런 정의와 올바른 절차를 지키고 훈련하며, 교회 밖의 사회를 정의롭게 물들여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때라야 교회는 세상을 향해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은 말 그대로 내세울 게 없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사람, 낯선 사람, 이방인, 재력과 지위가 딸리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냉수 한 그릇 대접에 고마워할 정도로 관심과 배려와 환대가 그리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참된 사람들과 공동체를 찾으며 이리저리 헤매다가 지친 신앙의 나그네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을 환대하고 쉼터가 될 때라야, 교회는 참된 희망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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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 이콘 – 삼위일체 – 세 나그네를 환대하는 아브라함과 사라)

우리 교회 안에서 이들을 환대하고 있나요? 이들은 우리 교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철없는 사람, 괜히 풍파를 일으키는 얼치기라는 핀잔을 받고 있나요? 우리는 이처럼 예언자이고 정의롭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도대체 하느님에게서 어떤 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1. 성공회신문 6월 28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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