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듣고 보는 신앙 – 성 막달라 마리아 축일

성 막달라 마리아 축일 (7월 22일)1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연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새로 발견되었다는 파피루스 쪽지의 표현처럼 예수님의 아내였을까요? 소설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은 이런 의문을 다뤄 세간의 이목을 받았습니다. 이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서와 교회가 이해하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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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는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여행하던 여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고, 자기 돈을 들여 예수님의 사목과 선교를 돕던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마귀’로 고생하던 그를 예수님께서 구해주신 뒤에 그리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일곱 마귀’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정신이나 육체에 깃든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만성 질환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몸을 파는 여인으로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가 예수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한참 뒤에 이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를 풀어 닦아드린 아름다운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옵니다. 서방 교회 전통에서는 이 여인의 사례에서 신앙인이 본받아야 할 참회와 헌신의 모본을 찾으려고 이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인물이라고 결론짓기도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묻힌 현장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빈 무덤의 첫 증인이었습니다. 모든 복음서의 한결같은 기록입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든 그토록 따랐고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기에 예수님의 시신을 두고라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신이 없어져 그 기회마저도 사라졌습니다. 마리아는 상실과 절망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눈물이 그의 귀를 적셨을 때,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었고, 그 눈물이 그의 눈을 씻어내렸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다른 열 두 남성 사도들을 다 제쳐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 가에서 우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당신의 몸을 드러내셨습니다. 다른 열 두 남성 사도들을 다 제쳐놓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사람, 부활의 첫 증인이었습니다. 이 여성이 다른 열 두 남성 사도들에게 부활을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동방 교회 전통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사도들 가운데 사도”로 여기며 존경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복음서와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의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한 분은 ‘하느님을 품은 사람’(테오토코스)로, 다른 한 분은 ‘사도들 가운데 사도’로 불렸습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랐던 사도였던 두 마리아는 우리 신앙인이 걸어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을 품은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을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연인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삶의 고통과 슬픔, 기쁨과 즐거운 전체를 대면하면서 그 안에 깃든 눈물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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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낙현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주보 글 수정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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