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벗 되어 서로 머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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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벗 되어 서로 머무는 일 (요한 15:9~17)1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 15:17).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의 핵심을 드러내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늘 되새기며 실천하려는 ‘새로운 계명’입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면, 여느 종교나 도덕의 가르침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뜻과 실체를 깊이 새기지 않으면, 세상에 흘러넘치는 빈말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세상의 기존 질서가 정한 테두리와 가치에 도전하고 초월할 때라야 새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특권과 차별의 벽을 넘어섭니다. 벽을 넘는 힘은 성령에게서 옵니다. 오늘 사도행전(10:44~48)이 전하는 성령의 내림 사건이 전하는 진리입니다. 성령의 은총과 활동이 유대인의 제한과 벽을 훌쩍 넘어서 ‘이방인’에게로 확장되었습니다. 성령의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이 일을 선민의식과 자기 신앙의 특권을 주장하여 막는다면 성령의 활동을 훼방하는 중죄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를 가르는 빈부, 세대, 지역의 분열과 특권을 성령과 함께 넘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을 입에 담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환대의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사랑은 ‘함께 머무는 일’입니다. ‘함께 머물러 달라’는 초대가 예수님의 삶에 되풀이하여 등장합니다. 엠마오 가는 길에서 낯선 나그네에게 머물러 달라서 청한 제자들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도 베드로에게 ‘머물러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협조자 성령의 내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영’으로 더욱 깊고 친밀하게 머무시려는 까닭입니다. 요한 신학의 핵심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 안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는’ 관계입니다. 서로 초대하여 함께 머무는 관계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서로 벗 되는 새로운 관계입니다. 세상이 만든 질서는 ‘주인과 종’의 질서입니다. 한쪽은 힘을 부리고, 다른 한쪽은 굽신거려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새롭게 펼친 질서는 ‘서로 벗 된 관계’입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벗’입니다. 예수님마저 우리를 ‘벗’이라 부르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종’ 부리듯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은 이를 ‘동등 제자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교부는 ‘우정’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극진한 표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성령이 ‘이방인’인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성령은 온갖 차별의 벽을 넘어 낯선 사람을 초대하여 함께 머물라는 용기를 줍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대로, 서로 함께 ‘벗’으로 존중하는 삶을 훈련하는 장소입니다. 초월과 환대와 우정이라는 새로운 삶의 관계를 몸에 익히는 일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선교를 감당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사랑은 서로 벗이 되어 함께 머무는 일입니다.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5년 5월 10일치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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