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 역사의 희망이 움트는 자궁

교회 – 역사의 희망이 움트는 자궁 (루가 1:39~45)1

하느님의 희망은 잘 보이지 않은 곳, 버려진 곳, 잊혀진 곳에서 움틉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은 보잘것없고 실패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모여든 종착지입니다. 성공하여 어깨를 으쓱대는 세상이 눈을 주지 않는 지역과 집안이고, 힘을 얻은 집단이 업신여기는 신분과 지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꿈은 스스로 막장에 이르렀다는 절망의 현실을 거름 삼아 뿌려진 씨앗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둡고 습한 곳에 숨죽였던 사람들이 함께 만나 손을 모으고 어깨를 기댈 때 새로운 생명이 움틉니다. 이 생명은 옛 시대의 지혜와 새 시대의 희망이 함께 만날 때 자라납니다. 이것이 아기 예수 탄생을 눈앞에 둔 우리가 바라보는 신비입니다.

세대 간 단절과 갈등이 깊어진다는 우려가 큰 시절입니다. 역사의 경험과 지혜가 풍요롭게 이어지지 않고, 오해와 갈등으로 막히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이 현실을 서로 안타까워하면서도 서로 더 깊이 이해하며 지혜를 잇대려는 노력은 부족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부부와 가족 친지에게 기쁨과 평화를 안겨줍니다. 젊은 부부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크나큰 기쁨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아기로 오십니다. 이 기쁨으로 세대의 갈등을 멈추고, 험한 세상 속에 온 아기의 미래를 위해 화해를 마련하라는 부탁입니다. 갓 태어난 생명의 신비에 모두 감격하라는 초대입니다. 여기서 평화가 열립니다.

나이 적은 마리아는 나이 많은 엘리사벳을 먼저 찾아갑니다. 혼외 임신 소식에 당황하고 불안했을 마리아는 비슷한 경험으로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경험과 지혜를 구합니다. 나이 든 엘리사벳은 젊은 마리아를 환대하고 그가 복되다고 높이 찬양합니다. 속 깊은 격려입니다. 이 만남 속에서 새 시대의 희망인 아기들도 서로 알아보며 기뻐 뛰놉니다. 새 시대가 옛 시대에 기대고, 옛 시대가 새 시대를 격려하여 찬양할 때, 역사는 이어지고 풍요로워져서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세대가 서로 만나 환대하고 경청할 때 공감이 열립니다. 각 세대가 품은 꿈이 공명할 때 희망과 기쁨이 뱃속을 꿈틀거리며 발길질을 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공명으로 역사와 구원의 희망이 움트는 자궁입니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남녀노소 모두 모여 한목소리로 찬양하고, 하느님의 구원 이야기를 같이 듣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몸을 함께 먹고 나눕니다. 이때 우리는 구원의 삶을 이미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공감을 나눌 때, 습하고 어두운 자궁은 위대한 생명의 신비를 담은 아름다운 구원의 공간이 됩니다. 아기를 품은 마리아의 노래는 이 구원의 삶을 노래합니다. 힘과 부를 얻으려고 경쟁하고 짓누르는 소수의 힘과 가치는 흩어져야 합니다. 실패하여 절망한 사람들, 비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향한 복음이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신앙인은 아기를 고대하는 마리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의 희망이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으로 펼쳐지고, 하느님의 꿈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협력으로 피어납니다. 교회는 모든 세대가 이 희망과 꿈을 지니고 역사의 경험과 지혜를 이어달리기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만남과 나눔으로 희망의 역사를 이어갑니다. 교회는 세상에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신앙인을 낳는 거룩한 자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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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5년 12월 20일 대림 4주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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