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 삶의 향기를 품어 나누는 사람
그리스도인 – 삶의 향기를 품어 나누는 사람 (요한 12:1~8)1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린 마리아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이 향기로운 이야기는 다채로운 대비와 역전으로 예수님의 구원 사건과 하느님 나라의 진실을 드러냅니다. 권력과 재력의 셈이 빠른 ‘남성성’과 겸손하고 넉넉한 ‘여성성’이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차갑고 인색한 돈과 방안을 부드럽게 휘감는 향유의 대비가 뚜렷합니다. 위에서 힘을 부리는 이들을 내려 앉히고, 아래에서 섬기는 사람을 올려 함께 나누려는 의지가 선명합니다.
히브리어 ‘메시아’와 희랍어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 구약성서에서는 특별한 사람을 뽑아 왕과 예언자, 사제들을 세우며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정치적인 업적이 분명한 지도자를 ‘메시아’로 호칭하기도 합니다. 기름을 붓는 사람도 높은 지위에 있는 남성입니다.
신약의 복음서 ‘그리스도’ 예수님은 어디에서도 구약의 왕이나 예언자나 사제와 같은 권력과 행태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시 그런 지위에 있던 이들과 불편하게 대결합니다. 기름 붓는 장면도 사뭇 다릅니다. 예수님께 기름을 붓는 사람은 당시에 신분 낮은 여성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드립니다. 그것도 일 년의 수고와 땀을 다 모아야 살 수 있는 분량의 기름을 아낌없이 부어드립니다. 한 생명을 어루만지고 감사하며 축하하려는 마음때문에 그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합니다. 그 향기는 자기 혼자 움켜잡을 수 없습니다. 그 집에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향기의 시간과 공간에 감싸여 다른 이들과 서로 연결되고 함께 삶을 즐깁니다.
현장에 있던 ‘남성’ 제자 가리옷 유다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발에 부어버린 향유 값이면 가난한 사람을 여럿 도울 수 있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돈의 효율적인 사용에 관한 고민이 어쩌면 갸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런 즉각적인 해결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문화를 경계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기 쉬우며, 사회적 프로그램이나 제도의 성과에 집착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지고 오해와 다툼이 잦아지며 비난과 요구가 더 완고해지고는 합니다. 급기야 서로 멀리하고 피하는 ‘썩는 냄새’를 풍기는 일로도 번집니다.
오늘 향유 사건이 일어난 무대는 과월절을 앞둔 ‘만찬장’입니다. ‘썩는 냄새’가 나도록 부패한 라자로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고, 그 회생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갖 수고와 땀으로 맺은 향기를 아낌없이 봉헌하는 성찬례의 잔치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땀을 모아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향기를 다른 이들의 머리와 얼굴, 손과 발에 넉넉하도록 듬뿍 부어 축복합니다. 우리 삶의 구원을 축하하는 성찬례에서 신앙인은 서로 섬기며, 이 세상의 메시아/그리스도로 일어섭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서로 기름 붓는 이들로 세워주고, 겸손하게 기름 받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함께 축하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우리 가정과 교회, 사회와 세상을 주님의 향기로 가득 채워 하느님의 나라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3월 13일 사순 5주일 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