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신앙 – 세속과 종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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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신앙 – 세속과 종교 ‘사이’에서 (루가 17:11~19)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밖에서’ 옵니다. 신앙은 ‘밖에서 손 내미는 구원’ 앞에 자신의 연약함과 상처를 내어놓는 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자기 내면의 고정관념과 안락한 영역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한 걸음 발을 뗍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과 새로운 사건에 ‘감사와 찬양’으로 답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따르는 일이 거룩한 신앙입니다. 오늘 구약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과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러한 구원을 맛본 거룩한 신앙인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남부럽지 않은 권력과 재산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에게 닥친 ‘한센병’이라는 지독한 피부병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이때 구원의 소식이 ‘밖에서’ 들려옵니다. 권력과 재산, 지위와 명예에서 전혀 동떨어진 ‘이스라엘 여종’에게서 말입니다. 이 비천한 자의 소식에 귀 기울일 때 나아만의 치유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가 자기 앞에 조아리지 않는 예언자의 명령에 토라져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려할 때, 치유는 다시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하’가 건네는 조언에 ‘장군’이 귀 기울여 초라한 강물에 몸을 던질 때 치유는 되살아납니다. 기존의 경험과 고정관념은 종종 신앙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립니다. 이때 세상 보기에 작은 이들의 지혜과 도전이 구원을 향한 변화로 우리를 이끕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사이’에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납니다. 선민 유대인 종교의 땅도 아니고 이방인 세속의 땅도 아닌 ‘사이’의 땅입니다. ‘나병 환자’는 어디에도 들 수 없이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종교의 교리든 세속의 가치든, ‘전염’의 두려움에 휩싸이면 서로 편을 가르고 쫓아내고 소외시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좁고 위태로운 ‘사이’의 공간을 걷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삶의 은총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뿌리 내리는 곳은 안녕을 약속하는 기존의 종교도, 성공을 보장하는 세속의 가치도 아닙니다. 고정된 기준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새로운 가치를 찾아 길 떠나는 나그네들이 매우 간절하고 위태로운 ‘사이의 땅’에서 만날 때 신앙이 싹틉니다.

신앙의 길은 과거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그 ‘사이’를 계속 새롭게 걷겠다는 다짐입니다. 치유를 받은 아홉 명은 옛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익숙한 자기 종교와 세속의 땅에서 기쁘게 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은 전혀 낯선 곳에서 다른 길의 선택으로만 이어집니다. 자신의 몹쓸 병 때문만이 아니라 이방인으로도 손가락질받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길과 믿음과 생명”(19절)을 선물하십니다. 이 은총의 선물로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안락한 집을 떠나 이 간절한 기도와 호소를 드리러 ‘사이’의 공간인 성찬례에 모입니다. 하느님께서 펼치시는 구원의 역사에 귀 기울이며 우리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주님께서 선사하시는 치유와 구원의 은총에 기뻐하며 성찬기도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선택 안에서 우리는 세속의 가치와 종교의 판단에서도 벗어나 진실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찮게 작은 밀떡과 포도주가 성체와 보혈로 변화하여 우리 몸을 만나고 우리 삶을 거룩하게 가꿉니다. 이것이 우리가 걷는 믿음과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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