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즉문즉답 – 스케치
‘신앙 즉문즉답’ 스케치1
주낙현 요셉 신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신앙’에 ‘즉문즉답’을 덧붙이는 일은 애초에 무리지요. 종교와 신앙처럼 복잡한 일이 없는데, 바로 물어 바로 답을 얻을 심산이라면, 오히려 깊은 신앙에 방해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주일 11시 성찬례가 끝난 뒤 여러 교우와 신부님들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뒷길로 저와 다른 교우들은 대성당 오르간이 있는 2층 방에 모입니다.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이렇게 성직자와 나누는 ‘신앙즉문즉답’을 시작합니다.
이 시간은 성공회에 낯선 새교우들이 당황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우려고 마련했습니다. 두 해가 넘는 동안 자못 심각한 질문과 공부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새교우들과 더불어 우리 성당을 오래도록 지켜온 어르신들도 꽤 오십니다. 신학과 교리에 관련한 어려운 논의도 있고, 십자성호와 유향에 관한 질문, 마리아와 연옥에 관한 궁금증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높낮이를 재지 않고, 불온과 불순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시간입니다.
쑥스러운 분들의 입은 조용한 웃음만 머금기도 하지만, 그분들의 눈은 맑고 귀는 쫑긋합니다. 이십 여 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머리를 쓰면 곧 허기지기 마련입니다. 어서 식당으로 내려가야지요.
짧은 나선형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어쩌면 신앙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종교는 단정짓는 교리로 사람에게 명백한 확신을 심어주려 합니다. 삶이 그렇게 분명하여 사다리 오르는 것 같으면 좋겠는데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실패와 의문, 머뭇거림과 혼란을 거듭하니까요.
성공회에서 새로운 신앙의 길을 묻고 찾는 분은 좀 다릅니다. 좁고 불편한데다 어지러울 듯한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기로 다짐한 분들입니다. 더 많은 계단으로 진전이 더디고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듯한 길이 우리 삶이니까요. 신앙인은 이 길 위서 함께 물음과 고민을 나누며 걷습니다. 오르내리는 마음 속이 풍족히 다 채워지리라는 보장이 없어도, 그 계단과 비좁은 방으로 발길이 다시 함께 향할 때, 우리는 이미 거룩한 의문과 복된 대답을 품은 신앙의 순례자입니다.
-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복음닷컴] 2016년 10월 30일 치 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