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양식 – 우물가의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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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양식 – 우물가의 여인처럼 (요한 4:5-42)

하느님은 생명의 물입니다. 어둠 깊은 물에서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창조하십니다. 그 물은 죽음과 심판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죄는 홍수의 물로 심판받습니다. 다시, 홍해에서 갈라진 물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자유와 해방의 길을 열어줍니다. 예수님은 변화의 물입니다. 세례의 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차별과 분리의 벽을 넘는 만남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새로운 삶을 마련합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이 만난 우물가의 여인처럼 생명과 변화의 물을 선택합니다.

오늘 한낮에 벌어진 우물가의 만남은 지난주 어둠 속의 만남과 대조를 이룹니다. 니고데모는 어둠 속에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물가의 여인은 대낮에 자신의 신분과 처지가 다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권위 있는 선생입니다. 그러나 우물가에서는 예수님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지치고 연약한 나그네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같은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니고데모는 권력과 도덕의 명분을 갖춘 사람이지만, 이 여인은 과거의 삶이 복잡합니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권력과 신분, 종교와 혈통입니다. 성차별이 심각한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대비 점도 꼭 눈여겨봐야 합니다. 휘두르는 힘과 고통받는 연약함을 여러 맥락에서 조심스레 식별해야 합니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처음에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지의 상태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지와 편견을 벗어나 배움과 깨달음으로 전진하느냐 마느냐는 신앙의 기준이 됩니다.

두 사람의 방향은 전혀 다르게 펼쳐집니다. 니고데모는 어둠 속에서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지만, 여인은 깊은 대화와 배움 속에서 자기 생각을 바꿉니다. 자신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처지, 복잡하고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낯선 사람과 나눌 때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세운 온갖 차별과 분열의 벽을 훌쩍 뛰어넘는 일로 여인에게 선물을 건넵니다. 과거가 불분명하고 낯선 이방인 여인을 복음의 증언자로 초대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신앙인이 먹을 양식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새로운 음식의 조리법과 같습니다. 그 조리법에 따라 우리의 마음과 몸을 참된 기도와 예배의 그릇에 담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뒤섞여 세례의 물과 성령의 불로 끓을 때 새로운 음식이 마련됩니다. 교회는 이 음식을 올린 잔칫상에 낯선 사람들을 초대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행동이 우리 신앙인의 양식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물가의 여인처럼 예수님과 생명의 물을 마시며 신앙의 양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이것이 우물가의 성찬례, 참되고 영적인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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