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데릭 신부의 파드캐스팅
몇 개 안 되는 내 파드캐스트 구독 목록 가운데는 네덜란드의 한 로마 가톨릭 신부가 운영하는 “데일리 블랙퍼스트” Daily Breakfast 라는 것이 있다. 로데릭 본회겐 신부 Fr. Roderick Vonhögen 는 처음에 가톨릭 인사이더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개설하여 작년에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및 새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선출과 교황의 독일 쾰른 방문 등을 현장감있게 소개하고, 갖가지 신앙적 이슈와 관련된 영화 이야기 및 파드캐스팅 전반에 관련한 에피소드를 만들다가, 몇 개월 전부터는 세계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식사”를 선사하고 나섰다.
아무리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국인을 뺀 유럽에서 영어를 가장 잘한다곤 하더라도,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는 영어 방송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또한 바티칸에 신앙 교육과 홍보를 위한 미디어 학교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파드캐스팅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들과의 교감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의사 통로요 미디어라는 점에서 큰 자극을 얻었다. 게다가 신앙의 문제를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접하는 영화, TV 드라마 등을 소재로 하여 컴퓨터 매니아로서, 교구 사제로서의 일상과 함께 풀어나가는 것에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이런 걸 한번 시도해봐야지 하는 부러움에 넘쳐 한껏 자극을 받아 매일 아침 이어폰을 꽂고 있다. 물론 영어 듣기 훈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어제는 평소와 달리 1시간이 넘는 긴 방송을 내보냈다. 쉬는 참에 후반부까지 다 들어보니, 아주 실망스러운 소식에 로데릭 신부 자신이 어리벙벙해 하고 있었다. 교구에서 그에게 맡긴 프로젝트는 이런 방송이 아니니,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쏟지 말라고 하면서 파드캐스팅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 교구 관계자들이 파드캐스트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니와, 최근에야 몇번 로데릭 신부의 방송을 듣고 자기들끼리 폐쇄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주교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세계 곳곳의 청취자들과 네덜란드의 교인들에게 자신의 파드캐스팅을 후원하는 이메일과 코멘트를 보내달라고 했다. 오는 토요일 2시에 주교와 면담할 때, 그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것. 다만 그 주교님이 전혀 컴퓨터를 모르는 분이서 걱정이 된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개인 메일을 로데릭 신부에게 보냈고, 웹페이지만도 90개가 넘는 코멘트가 줄이어 그를 응원하고 있다. 물론 나도 한 줄 거들었는데, 다른 교단 신부가 응원한다고 흠이나 잡히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잘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만, 결국 중단되고 만다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 교구와 주교라는 오명을 얻을 것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말은 사실 로마 가톨릭이나 성공회, 정교회에서 중시하는 성사신학의 핵심이 될 만한 말인데도…
<4월 1일자 갱신>
그런데… 이게 100번째 에피소드 기념으로 만든 만우절 행사였다. 나 역시 혹시나 해서 오늘 아침 열어봤는데, iTunes 제목에 “This will be an episode long remembered”라고 되어 있어,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완전히 낚인 것이다!!!
하여튼 그는 약 500여통의 이메일과 코멘트를 받았고, 깊은 관심과 사랑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떤 이들은 skype로 음성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눈치빠른 이들은 로데릭 신부가 작년 만우절에 한 일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단다. 어쨌든 이 일로 그는 자신의 파드캐스팅의 존재 이유를 더욱 분명히 확인했고, 멋진 사랑의 편지들을 자신의 100번째 에피스도 기념 선물로 챙겨두었다. 사람들은 그의 유머 감각과 탁월한 파드캐스트 운영에 다시한번 감탄과 자신의 보낸 심각한 편지를 보며 포복절도했을 것이다. 나도 아내와 같이 귀기울이며 듣다가, 정말 즐거운 4월 1일을 맞았다.
그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소속 교구 실무진과 주교님이 얼마나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지 밝혔다. 게다가 이 만우절 행사를 위해 교구에 걸려올 항의 전화, 이메일, 팩스에 대비하여 공모하기까지 했다.
로데릭 신부… 정말 기발하고 멋진 친구다…
흠… 질문과 답변란을 닫는다는 선언에도 나는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는데… 닫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로데릭 신부가 부럽기만 하다. ^^
그나저나 시간 나는 대로 우리 신부님들에게 블로깅을 좀 하라고 옆구리를 찔러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