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대주교 성탄절 메시지 2004

Christmas Message 2004
from the Most Revd. Dr. Rowan Williams, the Archbishop of Canterbury

몇 주전 나는 여러 형태의 “자폐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더불어 일하고 있는 분들과 나누는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자폐증이란 사람이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하는 무질서의 일종으로, 이상하게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고, 때로는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국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치료 전문가 한 분이 하는 일을 비디오로 시청하고 나서, 그가 시도하는 치료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 우리가 비디오에서 본 사람은 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심각한 정신 교란 상태에 있어서 자기 머리를 벽에 연신 찧어대고 나서는, 줄 같은 것을 꼬거나 튕기면서 내내 빠른 걸음으로 자기 방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치료 전문가의 첫 반응은 뜻 밖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역시 줄을 꼬아서 튕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년이 괴성을 내자, 그도 따라서 했고, 소년이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것과 같은 어떤 특이한 행동을 하면, 그 치료 전문가 역시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비디오는 이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기를 이틀이 지나려는 참에 그 소년은 그 치료 전문가에게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고, 몸을 만지면 이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치료 전문가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자폐증은 뇌가 너무 많은 자료들을 탐지 할 때, 즉 너무 많은 정보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감정의 공황 상태가 있는데, 이 때 정신 제어 능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익숙한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하면 안되며, 밖에서 들어오는 어떤 것도 감지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 치료 전문가가 그런 행동과 움직임에 부드럽게 맞장구 치면, 자폐증에 걸린 사람의 불안하고 상처 입은 마음은 결국 바깥 세상과 연결되는 어떤 고리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며, 그것은 전혀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이 일을 행하는 내가 있다. 세상은 공포와 불확실로 가득한 이상한 곳만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어떤 대답, 어떤 맞장구의 메아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무기력하지 않다. 그래서 이 때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 같은 모습을 실제로 지켜 보는 것은 정말로 감동적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치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하는 그 진정한 모습에 대한 어떤 강력한 이미지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인 간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타락이라고 부르는 그 최초의 배반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하느님과 세계를 두려워하고, 어떤 차원에서는 우리의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빛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요한 복음서의 말대로, 하느님께 응답하려 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고 빛으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행동은 우리를 치료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소외 상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소외란 바로 자폐 소년이 자신의 머리를 벽에 짓찧던 이상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행동은 마치 비디오에 나온 치료 전문가와 같은 방식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하는 대로 행동하십니다. 그분은 아기로 태어나셨으며, 자라나셨고, 우리의 일상처럼 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그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노동하시고, 밥을 드시고, 잠을 청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작은 마을 어느 뒷골목에서 일어난 지극한 사랑과 완전한 거룩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이 새롭고 충격적인 어떤 일을 시작하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치유를 베푸시며, 용서하시고, 죽으신 후에 다시 부활하시자, 우리는 더 이상 어떤 공황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도망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맞장구 쳐주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단지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죽음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에 인간의 살 속에 담긴 사랑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와 같은 모습 속에 있는 창조주의 능력과 생명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우리를 살피시는 하느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공포와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번뇌라는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에 당신을 비추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 치유와 십자가라는 위대한 움직임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르시기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를 어루만지시고 변화시키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이 것이 성탄절에 시작되는 일입니다. 오시는 분은 바늘과 칼을 들고 오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분은 이러한 응시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될까 배우기 위해 오시는 갓난 아기입니다. 바로 이 갓난 아기만이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우리를 응시하고 배우는 이 아기가 하느님의 변화의 말씀을 전할 때에 우리는 인간의 언어 속에서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은 치유하시는 자유의 힘을 가지시며, 우리의 치유자가 되십니다. 그분은 인간이시기에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그분이 완전히 우리와 함께 나누고 있는 인간됨의 고통과 기쁨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분께 우리를 어루만지도록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갇힌 정신, 즉 우리의 교만과 두려움과 죄책감 바깥에 어떤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도록 우리를 열어야 합니다. 그 세계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성육신하신 왕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빕니다.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

* 이 성탄절 메시지는 세계성공회사무소(런던)의 요청으로 주낙현 신부가 번역하여 세계성공회 홈페이지와 한국성공회 신문에 공식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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