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대주교 성탄절 메시지 2006
“주님께서 다시 오시어 죄인을 풀어주시고, 사탄에 잡힌 사람들 구하여 주신다.” 이 말은 제가 가장 좋하는 대림절 성가의 한 구절입니다. 이 말은 또한 성탄절 이야기의 ‘부드러운’ 점들만 좋아하는 탓에, 우리가 종종 무시하고 지나가고 마는 성탄절의 한 면모를 되새겨 줍니다.
나자렛 예수께서 태어나셔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 인간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류사가 동튼 이래로, 사람들은 모두 덫에 걸려 살았습니다. 가장 훌륭하다는 이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 회의를 품으며, 그분으로부터 멀어져서 서로를 두려워 하는 것을 대물림한 탓입니다. 인류사 이전에 하느님께 대한 대반항에 사로잡힌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피조물의 반항은 교만과 오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타락한 천사인 사탄은 이 원초적인 비극의 신호로서, 지극히 뛰어난 자질을 가진 존재도 이러한 자기 오만으로 타락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천사들이 갖추었던 온갖 지능과 영적인 존엄도 루시퍼가 자기 존재의 기반인 하느님을 거절하는 극단적인 광기를 드러낼 때 이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능과 존엄의 타락은 이 우주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와 정의와는 동떨어진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고 느끼면서도, 이러한 덫에서 어떻게 헤어나올지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의 탄생과 삶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이 탄생과 삶은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인류는 우리의 존엄성을 새로온 기반에 다시 세울 때라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신인 성자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기에, 모든 인간은 그 변화의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반항이라는 전염병은 이제 새로운 자비로운 ‘감화’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인간과 소통하시려는 하느님의 손길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과 협력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의 본성을 다시 창조하시면서 우리에게 그 길을 이미 열어 놓고 계셨습니다.
내년은 영국 의회가 노예제를 철폐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사건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이론적으로 확신하던 계몽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유럽 지식인들이 이루어낸 일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 말씀의 성육신으로 손길이 스친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가를 열정적으로 깨달았던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낸 일입니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노예제가 노예였던 사람이 가진 존엄성에 대한 가혹한 모욕이며, 동시에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 영적인 건강과 고결에도 가혹한 상처를 내고, 노예 소유를 통해서 그 자신이 죄와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성탄절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가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 밖의 노예제 철폐 운동가들을 기억하며 어떤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이기심이라는 감옥을 깨뜨려 열어줍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겪는 비참을 우리 삶의 뒷모습쯤으로 당연시하는 우리의 게으른 태도에 도전합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이제 우리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도록 합니다. “우리가 당연시하여 관심갖지 않는 비참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오늘의 노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년에는 이러한 질문에 우리가 대답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행사들이 있겠지만, 이미 우리는 몇가지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 병사들, 성매매의 희생자들, 수십년동안 끊임없는 폭력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 그리고 이러한 폭력에 의해 집과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오시어 죄인을 풀어주신다.” 이제 그분이 ‘모든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일에 헌신하는 우리의 실천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시도록 합시다. 이제 예수의 그 존재와 그 말씀과 그 실천을 통하여 베들레헴으로부터 갈보리, 그리고 그 너머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사건에 감사를 드립시다.
“평화의 임금께 우리의 찬송을 드리니,
주님을 환영하라 선포하는 소리 울려 퍼지며,
하늘의 문들은 그 사랑하는 이름을 찬미하네.”
이 시간, 하느님의 은총과 행복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빕니다.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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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탄절 메시지는 세계성공회사무소(런던)의 요청으로 주낙현 신부가 번역하여 세계성공회 웹페이지와 한국성공회 신문에 공식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