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규칙에서 본 리더십의 영성
새로 선출된 교황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아직 미국 언론에서는 식을 줄 모른다. 미국 천주교회 안에서도 우려와 희망이 심각하게 교차하고 있다. 이 참에 로마에 머물고 있는 미국 천주교 베네딕도회의 조앤 치티스터 수녀님의 글을 읽는다. 매우 잘 알려진 베네딕도 영성 강연가이자 칼럼리스트인 조앤 수녀님 역시 새 교황과 관련한 우려를 염두하고 있다.
베네딕도 영성에서 바라본 지도자의 덕목을 살펴보는 이 글은 간결하지만 곱씹을 여러 내용을 담고 있다. “경청-겸손-공동체-환대”가 그것이다. 성공회가 발전시킨 신앙의 덕목을 여기서 다시 읽는 것도 매우 귀하고 감사하다.
천주교 형제들은 새로운 교황을 얻었고, 내가 속한 한국 성공회 서울교구도 새로운 주교를 축성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곳 미국 성공회 캘리포니아 교구는 새로운 주교를 찾고 있다. 그들이 어떠한 분이건 그 모든 분들이 조안 수녀님이 밝혀주시는 베네딕도 리더십의 영성을 몸으로 실천한다면 “그 교회는 분명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지도자에게만 이런 영성이 필요하겠는가? 신앙의 길에 들어선 이상 모든 칠부대중이 함께 정진해야 할 신앙의 덕목이라 여겨 함께 나누고자 글 한부분의 졸역을 싣는다.
Joan Chittister, OSB “And he shall be called . . . ”
The National Catholic Reporter(앞부분 생략)
베네딕도회 수도자로서 나는 어떤 지도자이든 누르시아의 베네딕도 성인을 자신의 리더십의 잣대로 삼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베네딕도회 규칙은 이제 1500년이 된 문서이자, 세계 도처에서 수도 생활의 기본이기도 하다. 이 규칙은 네 가지 중심 덕목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어떤 형태의 권위주의나 인간의 영혼을 억누르려는 태도와도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다.
“경청”은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이 규칙의 중심이다. “마음의 귀를 기울여… 경청하라.” 이는 규칙 서언에 나오는 권고이다. 다른 말로 하면 경청은 교회법상 옳은 것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진실한 것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며,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을 향해 던져지는 말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전통에, 서로에게, 삶의 상황들에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이 영적 성장의 초석이다. 이러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물음이지 정해진 답이 아니다.
“겸손”은 베네딕도 수도원 전통의 두 번째 주요 덕목이다. 겸손은 우주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제한적인 지를 깨달으라고 우리 모두에게 요구한다. 겸손은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을 말한다.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은 수도원장이든 수도자이든, 우리는 누구도 우리 생각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2장에 걸쳐서 공동체의 기도 생활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끝에,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 생활의 가장 중요한 면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누구든 좀더 나은 방법을 알고 있거든 이것들을 다르게 배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베네딕도 규칙이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행하려는 어떤 권위주의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체”는 베네딕도 영성의 세 번째 덕목이다. 공동체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우리 자신의 성장에 얼마나 좋고 필수적인 지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서 배운다. 우리는 공동체를 섬긴다. 베네딕도 성인의 태도는 분명하다. 규칙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든지 토론해야 할 중대한 일이 있으면, 수도원장은 공동체를 소집하여 가장 젊은 사람부터 그 의견을 물어야 한다.” 여기엔 어떤 압력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생각을 묵살하려는 태도도 없다. 수도원장은 공동체에 답을 가져다 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수도원장은 물음을 가지고 와서 공동체 안에서 답을 찾는다.
“환대”는 베네딕도 영성의 네 번째 덕목이다. “환대”는 모든 사람이 들어오도록 초대한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배척당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가 악하거나, 가난하거나, 쓸모 없고,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공동체의 일부에서 배척당하지 않는다. 규칙은 이렇게 말한다.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대하시오.” 서로를 그리스도처럼 대하는 것이 규범이다.
마지막으로, 베네딕도 성인에게는 수녀인 스콜라스티카 성인이 있었다. 수사 성인은 수녀 성인을 동등하게 대했다. 그들은 함께 만나 “거룩한 일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했다.” 수녀 성인은 수사 성인에게서 배웠으며, 역시 수사 성인 역시 수녀 성인에게서 배웠다. 수녀 성인의 수도회는 수사 성인의 수도회와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베네딕도 전통에는 남성과 여성의 거룩한 관계의 모델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여성의 권위가 보장되어 있다.
우리는 다만 진리의 파편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고 베네딕도 성인은 가르치신다. 어느 누구도 진실 전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
http://www.nationalcatholicreporter.org/update/conclave/jc042005.htm
May 12th, 2009 at 11:22 am
[…] 조앤 치티스터 수녀님은 기도와 창을 이렇게 연결하신다. 탈무드에 나온 말이에요. ‘창 없는 방에서는 기도하지 말라.’ 다시 말해 마음 속에 세상을 담아 두지 않고서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영성 생활의 목적은 우리를 현실에서 구출하는게 아닙니다. 그 목적은 그 현실을 우리가 함께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요. […]
August 24th, 2011 at 4:01 pm
경청, 겸손, 공동체, 환대. 삶이든 신앙이든 학문이든 사랑이든, 모든 활동의 근본이 되는 마음가짐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기준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네요. 정말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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