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죽음 – 엘스 컬버와 로제 수사

이틀에 걸쳐 두 죽음의 소식을 연이어 듣게 되었다. 내 이웃에 사는 신학생의 남편 엘스 컬버(Ells Culver, 78세)와 방금 기사로 들은 떼제 공동체 로제 수사(Brother Roger, 90세)의 죽음이다. 이 고령의 두 죽음이 내내 마음에 깊이 남는 것은 그들이 전 생을 평화만들기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3주전 발바닥에서 발견된 피부암인 흑색종(멜라노마) 제거 수술을 받고, 림프절에 전이된 종양 제거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있던 엘스 컬버(Ells Culver)는 우리 광복절날인 8월 15일 밤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옆집에 사는 동료 신학생의 남편인 까닭에 2년 전 그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미국 내 민간 구호 조직인 Mercy Corps 재단의 공동창립자요, 수석부총재였다. 무엇보다 그는 아시아와 북한 식량 지원의 실무 책임자이기도 했다. 중국 성결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에서 자라난 엘스 컬버는 이후 한국의 선명회(현 월드비전)과 연계하여 전후 한국 식량 원조를 도왔고, 그의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은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1990년 대 이후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진 곳은 북한이었다. 해마다 3-4차례씩 북한을 방문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의 발바닥은 세상의 가난을 둘러보며, 식량꾸러미를 나르는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3명의 자녀와 4명의 의붓자녀, 그리고 9명의 손자녀를 거느린 대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환갑이 넘어 성소에 응답하여 신학생이 된 아내의 남편으로서, 그는 그 희끗한 머리카락과 하얀 수염만큼이나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는 찬찬히 자신의 성장사와 신앙 이야기, 성공회 신자가 되게 된 연유, 그리고 북한 원조의 뒷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내가 공부하는 GTU 한인학생회는 지난 4월 이 분을 모셔서 북한 정치와 기아 문제에 대한 경험을 들었다. 어떤 정치적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굶주림이 외면되어서는 안된다는 인도주의적 의지와, 완전히 폐허가 된 전후 북한의 복구 과정과 정치 체제의 성립 과정에서 형성된 그 사회 만의 특별한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생각은, 여러모로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던 북한이 식량 원조와 관련하여 대표자를 미국에 파견했을 때, “무슨 일로 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응답했다는 예화를 들려주면서, 변화는 신뢰와 우정 안에서 생겨난다는 자명하지만 잊고 있던 깨달음을 되새겨겨 주기도 했다.

8월 15일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 정부 대표들이 국립 현충원에 참배하고, 우리 국회를 방문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평화의 기운 속에서 엘스 컬버는 잠들었다. 그도 이를 알았으리라.

로제 수사(Brother Roger)의 죽음은 5분 전에 엿본 세계성공회 웹사이트의 소식을 통해서 다가왔다. 평생을 평화만들기에 헌신한 그의 생이 무참한 폭력에 의해서 무너지는 이 아이러니가 주는 충격을 쉽겨 삭여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떼제 공동체의 기도 모임 중에 36살의 루마니아 여인이 휘두른 칼에 찔려 15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세계는 이 평화의 사도를 잃은 충격에 한동안 말을 잃을 것이다.

떼제 공동체가 현대 교회에 던져 주는 의미를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미국으로 건너오기전 성가수녀원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시작한 떼제 기도 모임의 경험 속에서 그는 내 생에서 어떤 식으로든 닮아가야 할 성인 가운데 한 분이었다. 미국에 건너온 이후로도 매주 첫주에 어느 수도원에서 열리는 떼제 기도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과 한 시간을 넘게 달려가는 것은 내게 설렘의 시간이요, 기도 안에서는 평화와 깊은 영성 체험의 시간이었다.

그들이 이제 하느님께로 돌아갔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이니, 그들의 정신과 족적이 우리 안에 새겨져 다시 부활하기를 희망한다. 하느님 품 안에서 편히 쉬소서, 엘스, 로제…

3 Responses to “두 죽음 – 엘스 컬버와 로제 수사”

  1. 루시안 Says:

    로제 수사님 소천하신 뉴스는 어저께 우연히 떼제 공식 싸이트에 들어갔다가 알았습니다. 워낙 연로하신 분이라 몇해전부터 염려했었는데, 그렇게 불려가실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슬프거나 가슴 아프지는 않더군요. 제가 젊은 날, 교회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방황할 때, 떼제 공동체를 알게 되엇고, 그 분은 삶과 글을 통해 제게 빛을 찾게 해주신 영적 스승입니다. 비록 먼 발치에서 한 두번 본 적 밖에는 없어도 …. . 그 분을 통해 주님께서 저와 떼제 공동체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신 온갖 선한 것들로 인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로제 수사님이 교종 요한 23세를 그리며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제 하느님의 영원 속에 있는 그 분의 기도를 믿습니다.”

    소속 교회의 금요 심야 기도회가 쉬는 8월, 오늘은 모처럼 화곡동 금요 기도 모임에 가야겠습니다.

    신부님 건강하시고요, 새로 시작하는 박사과정 주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언젠가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 뵙게 되는날, 떼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함께 떼제의 친구된 루시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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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r. joo Says:

    루시안님 //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떼제의 로제 수사님의 죽음은 그 고령에 비추어 ‘머지 않아…’ 이럴 수 있었을 텐데, 그게 갑작스러운 폭력에 의한 것이었기에 그 아이러니가 마음에 남더군요. 저 역시 고등학교때 이후로 알게된 떼제 이야기며, 떼제 성가 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죠. 아마 성공회를 이끌려 온 것이나, 예전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에도 그분과 떼제 공동체의 이상이 작용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 루시안님처럼, 그 삶의 베풂이 제게까지 미쳤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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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r. joo Says:

    고 엘스 컬버씨에 대한 나중 이야기를 또 하나의 포스트로 기록하려다가 댓글로 덧붙인다.

    1. 엘스 컬버씨 사후, 미망인이자 내 이웃 신학생인 에스미 조 컬버는 몇 주간의 휴식을 더 갖고 유품을 정리하고는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버클리로 돌아왔다. 신학생 아파트 가족들이 그를 위한 단촐한 위로 모임을 갖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에스미 조는 엘스 컬버가 60-70년대 한국 원조를 하면서 찍었던 몇장의 사진을 가져와서 내게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그 중에는 최근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도 있었다.

    2. 미망인 에스미 조는 지난 12월 초 내게 와서 놀라운 소식 하나를 전해 주었다. 북한 정부가 고 엘스 컬버씨에게 “우정의 메달”을 주기로 결정했으며, 조만간 UN 주재 북한 대사가 “머시 재단”에 직접 찾아와 전달하겠다는 것이었다.

    3. 1월 10일 에스미 조 컬버는 오레곤주 포틀랜드로 돌아갔다. 우정의 메달을 받기 위해서 였다. UN 주재 한성렬 북한 대사는 UN 이외의 미국 다른 지역을 여행하기 위한 특별 허가를 미국 정부에서 받아 포틀랜드로 날아왔고, 에스미 조 컬버에게 “메달”을 전달했으며, 그의 묘소에 참배했다. 북한이 미국인에게 준 첫 “우정”의 표시였다.

    4. 다시 버클리로 돌아온 에스미 조 컬버는 “우정의 메달”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철천지 원수의 나라 미국”의 시민 “엘스워스 웨슬리 칼버”에게 주는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제 2급 친선 훈장”이었다. http://www.mercycorps.org/countries/northkorea/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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