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부가 주인공인 NBC의 새 TV 드라마

한국에서는 미국의 최근 인기 TV 드라마들이 곧잘 소개되어 동영상 파일로도 돌아다닐 정도가 된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 와서 살아가는 처지에서는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없지 않지만, 11시 뉴스 빼고는 드라마 시청까지는 엄두를 못낸다 (여러 이유에서 ^^). 그런데 계속해서 보게 될 것 같은 TV 드라마가 오늘 밤부터 시작된다. 한 성공회 성직자의 고민과 가족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The Book of Daniel”이 그것이다.

방송국의 선전 등에 따르면, 주인공 다니엘 웹스터 신부는 교회에 헌신적이고 가족에도 충실한 성직자이다. 하지만 성직자로서 신앙적인 회의가 있으며, 가족은 가족대로 복잡한 고민과 갈등을 노출한다.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는 다른 신앙적 견해때문에 교구장인 여성 주교 (여성 주교 –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성공회에는 여성 주교가 있다)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족사의 개인은 더 복잡하다. 신부는 병원 처방이긴 하지만 강력한 진통제인 비코민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부인은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낮에도 마티니 한잔씩을 홀짝거려야 하는 알콜 중독기가 있다. 쌍둥이 동생 (혹은 형)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들은 동성애자이다. 딸은 어딘 가에 쓸 돈을 마련하려고 마리화나를 거래하고, 입양한 중국계 아들은 교인의 딸과 사귀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지경에 있는 신부에게 예수님은 종종 나타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현재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 곧 중독(약물, 알코올), 슬픔의 문제, 인간의 성 문제, 그리고 성 역할의 문제와 더불어 종교의 문제까지도 포괄할 이 드라마의 성공 여부는 방영 이후 시청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이미 드라마 전문 기자들은 사전에 배포된 내용을 보고 그리 썩 훌륭하게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미국 드라마의 성격 상 흥미에 대한 관심이 그 문제들의 깊이를 덮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과도한 기대를 늘 저버리니까.

현재 종교와 정치에 관련하여 사실 두 쪽으로 쪼개져 있는 미국에서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예민한 주제들을 한 성직자의 가정 생활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들은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방영 반대 캠페인 벌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가족협회 American Family Association이 그런 사람들을 대변한 모양인데, 이는 최근 조쥐 부시가 기독교 우파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거듭 외쳐대고 있는 “가족의 가치”를 대변하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은 이 드라마가 극단적인 문제들로 가득한 비정상적인 가정에 성직자를 배치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약화시키고, 가족의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드라마 연출가는 그리스도교 혹은 종교를 비웃으려는 의도가 없으며, 오히려 여기서 그리고 있는 성공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인 연출가는 자신의 파트너가 신실한 성공회 신자이며, 이 드라마를 위해서 LA 파세데나에 있는 성공회의 주임 신부의 자문까지 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회는 주임신부의 설교 중에 전쟁 반대 및 반 부시 발언을 했다고, 미국 국세청으로부터 면세 혜택 중지를 통고받은 교회이다.)

정작 미국 성공회 쪽의 반응은 침착하다. 오히려 호의적이기까지 한 반응이 있다. 워싱턴 교구 웹사이트는 “다니엘 블로그” 까지 만들어서 블로거들의 생각을 듣고 있다. 벌써부터 시청 소감을 가지고 주일 미사 후에 토론을 벌이는 소재로 삼겠다는 성직자들의 댓글도 눈에 띈다. 여기만 봐서는 성직자들의 호기심과 호의가 더욱 큰 것 같다. 자신들의 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으니 당연할 밖에, 나도 그렇고…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직자의 모습이 그려지는 방식은 종교적인 무게감으로 압도하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장면의 악세사리였던 사례에 비추어, 성직자의 복잡하게 얽힌 공식적 비공식적 이야기들로 꾸며진 이 드라마는 일반인들에게도 한번 엿보고 싶었던 사생활을 살짝 들춰 보여줄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내 “뭐 사람이야, 내내 똑 같은 거지…” 하면서, 괜히 차이가 있어 보이는 성직자와 자신들의 거리감을 좁힐런지도 모른다. 그 이면의 생각들이 어떨 지언정, 말이야 맞는 말이다.

어쨌거나 문화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교단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고, 역시 교회의 권위와는 달리 조금은 삐딱하게 신앙하고 가족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에서 벗어날 길 없는 성직자인 내 자신의 한 상을 소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동감의 여지를 미리 가져다 놓고 있다. 예견할 수 있는 것은, 그 신부는 분명 사목적이긴 하되, 신앙적으로 늘 명쾌한 답으로 사람을 후리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을 모호하고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다. 종종 나타난다는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항의도 하겠고, 부부 싸움도 빈번하지만 마음 약하게 금새 후회하며 백기를 들 것이다. 해결책을 주기보다는 보다는 오히려 함께 나눠보자며 좀더 어렵게 이끌어 나가고, 함께 실수를 하면서, 오히려 어리숙하다는 핀잔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성직자는 그렇게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실수투성이이며, 오히려 더욱 어리숙하다. 한마디로 별로 능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사람들을 대신해서, 혹은 그 자신의 평범한 삶 속에서 하느님께 더욱 깊이 항의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며, 여전히 확실히 들려오지 않는 대답 속에서 그가 어떤 사람들이건 간에 그들을 사랑으로 껴안고 그들과 같이 동행할 것이다. 설혹 그 동행이 그를 어떤 식으로든 망가뜨린다 해도, 그는 그것을 사제의 운명으로 받아들일런지 모른다. 이쯤되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감정이입에 의한 각색이다.

그나저나… 방영 10분 전이군…

5 Responses to “성공회 신부가 주인공인 NBC의 새 TV 드라마”

  1. fr. joo Says:

    1편 시청 후 간단한 소감:
    역시 미국 드라마 !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들 – 첫편이니까, 모든 문제를 펼쳐 놔야 했을까?: 성 생활 및 스캔들에 대한 무리한 이야기 제시 – 뜬금없는 설정들: 인종적 스테레오타입? – 흑인 가정부, 이태리계 가톨릭 신부, 입양된 중국계 아들의 행동 – 나중에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보이기도 하지만… 중국계 아들의 섹스광적 설정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질려버릴 만한 중간 광고 (이건 드라마의 문제가 아니지만)

    가장 설득력있게 와닿는 것은 다니엘 신부의 바쁘고 복잡한 일상 생활과 고민 – 언제든지 진통제, 아니면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역시 자기 투영인가? 그런데 미국에서 언제부터 성공회 신부를 “레버런드”라고 불렀나? 그냥 “파더”(신부님) 아니면 “다니엘” 이렇게 이름을 부르고 마는데… 어쨌든 이것은 TV show 일뿐… “show는 계속” – “되어야 한다” 까지는 아니겠고 – 그냥 계속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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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브리엘 Says:

    Rev. 라는 호칭은 개신교, 가톨릭을 불문한 직함아닌가요?

    1. Reveland,
    2. Pastor
    3. Father
    4. Priest

    의 차이점이 저 역시 궁금하네요. 제 지식으로는 2번은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다 붙이는 호칭/직함임에는 분명하고요. 4번은 그냥 명사일테고. 3번은 호칭으로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1번은 보통 목사님/신부님의 명함, 예를 들어 Rev. Joo 이런 식으로 많이 쓰더군요. 그리고 방송 인터뷰 나올 때도 자막으로 Rev. 누구 라고 나오고요.

    아~ Clergy는 또 뭔지 궁금하네요…

    미국에서 3년째 유학하면서도 잘 모르는 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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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r. joo Says:

    가브리엘님 // The Reverend (the Rev. 혹은 the Rev’d)는 말씀하신대로, 안수(서품)받은 목회자(the ordained minister)를 알려주는 표기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성직자나 스님에게도 부치는 것이 영어에서 일반화되고 있지요. 다만 표기는 그렇다치고, 또 다른 교단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성공회에서 성직자를 “레버런드”라고 부르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아주 공식적인 예식에서라면 모를까.

    Pastor의 경우 일반적인 사목자(목회자) 전부를 지칭하는 것이니, 굳이 그 사람이 성직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pastor는 성직자이지요. 교회 공동체의 사목 책임과 관련하여, 천주교에서는 pastor를 주임사제로, 그리고 다른 여타 개신교에서는 담임목사를 표현할 때 붙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성공회는 rector 혹은 vicar 를 사용합니다. 미국의 경우 rector는 재정이 독립된 교회의 주임사제(관할사제), vicar는 그렇지 못한 선교 교회의 주임사제를 말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대부분이 파송제인 관계로 이와 관계 없이 그 교회 사목 책임을 진 사제를 모두 vicar 라고 합니다.

    Father는 천주교, 성공회, 그리고 정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성직자를 부르는 “호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성공회의 여성사제 서품 이후, father를 적용하기 어려우니 reverend 라는 표기를 호칭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리라 추측합니다. 한편에서는 성공회 여성 사제를 mother 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Priest는 “사제”라고 번역하고, 성직의 직위를 표현하는 것이니, 호칭으로 하기는 어렵지요.

    Clergy는 일반적으로 “성직자”로 번역하면 되는데, 그리스도교 성직자 일반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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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충연 Says:

    저도 1,2편을 봤습니다. 방송하기 전의 격렬한 논란에 비해서는 아주 가볍게 전개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부분의 미국 미니시리즈가 그러하듯이요…아마 한국에서 방송된다면 성공회에서 가장 반대하지 않을까요. 다른 교단에선 은근히 성공회가정이 저 정도니..하면서 선교할지도 모르겠구요. 사석에서 저희 교회신도분들에게 소개를 했더니 그런 가족관계라면 성공회신부님 아니면 버티기 힘들겠다라고 웃으시더군요. 성공회 아버지들은 참 그렇게 너그러우십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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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r. joo Says:

    충연 프란시스 // 코멘트 남긴게 언젠데 이제야… 핀잔 너무 마슈… 그렇지 않아도 이 글과 관련해서 할 말 많은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지요. 결국 미국가족협횐가 하는 단체의 로비도 있고, 금요일 저녁의 시청율도 좋지 않고 해서 도중에 방송을 내렸지요. 그런 다음 6편까지 NBC 웹사이트에서 방영을 했는데, 그 이후에 몇편 더 남았는데 결말 없이 웹캐스팅도 안해요. 어쨌든 프란시스 주려고 방송분을 다 구해 놨는데, 건네 줄 방법이 없군요. 그나저나 조만간 연락 한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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