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삶

누구나 늙고 은퇴한다. 매주일 반갑게 맞이 해주시던 신부님이 부활주일 미사 집전을 마지막으로 교회 사목을 떠나셨다. 중국 대륙만큼 넓은 아량으로, 집없이 떠돌아 다니던 우리 한인 교회를 안아 주시고 기꺼운 환대를 한번도 거두지 않으신 고든 라우 신부님이시다.

수년 전에 심장마비를 겪은 뒤, 곧 파킨슨 병이 그분의 건강을 조금씩 흔들어댔다. 성찬례를 집전해야 하는 사제에게 손이 심하게 떨리는 이 병은 그분을 몹시도 애처롭게 했다. 도움이 필요한 탓에 지난 2년여 동안 그분 대신 집전-설교하거나, 공동 집전하거나, 집전 보좌를 정기적으로 해야 했다. 때문에 중국계 미국인들(Chinese Americans)과 더 가까워지긴 했는데, 그분이 떠나시니 사실 내 마음도 조금은 떠 버렸다.

미사 후 교인들을 위해 드리는 마지막 사목 기도에서 그분의 목소리는 떨렸다. 옆에서 그분의 어깨를 감싸고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부활 기념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신부님께 말씀드렸다. “신부님의 오늘은 저의 내일이에요.”

은퇴하는 분들을 여럿 뵈었다.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에게 있었다. 오래도록 준비한 분이든 그렇지 않고 갑작스레 맞이한 분이든, 두려움은 한결 같았다. 그 두려움에 “백척간두 진일보”로 대응한 분들은 그나마 조금 여유로워 보였다. 은퇴하신 마당에야 인연을 맺었던 유동식 교수님은 그 느리고 넉넉한 삶으로 시간을 더욱 느리게 하는 경지를 보여주셨다. 은퇴하기까지 마지막 10 여년을 아시안 사목과 샌프란시스코 밤거리를 거닐며 위기 상담(the Night Ministry)을 하신 돈 폭스 신부님은 “잠을 더 많이 잘 잘 수 있게 되었고, 생각보다 마음이 넉넉해졌노라”고 하셨다. 내 스승인 존 케이터 신부님은 세계를 떠돌며 계속 가르치시는 일이며, 새로운 친구 만나 배우는 일로 새 삶을 누리고 계신다. “진정한 영웅”인 문정현 신부님의 은퇴도 기사로 보았다. 이 분들의 은퇴하는 삶이 “나의 내일”이었으면 좋겠노라고 생각한다.

흔히 가장 사납고 추한 욕심이 “노욕”(老慾)이라고들 한다.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기도 하겠으나, 이를 맞이하는 처지에서는 자기 삶을 붙들어 매어보려는 자연스런 마음의 한 발로일게다. 다만 그것이 추하지 않도록 놓아 줄 건 놓아 주도록 여러모로 수련정진하여 준비해야겠다. 꺽어진 나이이니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은퇴를 가장 “멋”지게 드러낸 말을 고교 시절 한 선생님에게서 언젠가 건네 들었다. 졸업한지 십수년 후 젊은 선생님을 만나 연로한 선생님 소식을 여쭙던 중, 고교 시절 시국사건(?!)으로 우리가 속꽤나 썩혀드렸던 한 선생님이 조기 은퇴하셨다고 들었다. 은퇴 후 계획을 묻는 이들에게 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은퇴하는 삶은 공(空)으로 사는 것이니, 강가에 나가 강물에 붓을 적셔 주위 바윗돌에 글을 쓰며 그 마르는 것을 즐기는 삶이 아니겠느냐”고.

강을 망치려 작정한 사람들이 있는 처지에, 한적히 나가 붓을 적셔 공(空)한 글을 쓸만한 바윗돌이 남아 있을리 만무하리라 싶으나, 우선 이 글이나마 남겨 두어 내 훗날의 노욕을 짓누르고 두려움과 맞서는 정표로 삼고자 한다.

7 Responses to “은퇴하는 삶”

  1. 민노씨 Says:

    주신부님께서는 은퇴하지 마시고, 계속 그렇게 기꺼이 먼저 고민하고, 온 존재를 기울여 성찰하는 ‘멋진 청년’으로, 그 정신으로 남아주시길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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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r. joo Says:

    민노씨 /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이런 시덥지 않은 말로 언제 무너질 줄 모르는 심약한 “쐐기”를 박아 두겠습니까? “청년”은 사양하고 “멋지”게 늙도록 정진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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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인돈 Says:

    고든 신부님께서 은퇴하셨군요.
    그분께 안부를 전해 주세요.

    은퇴, 20년 또는 25년 뒤의 모습은 어떨까? 가끔 생각합니다.
    은퇴, 주신부님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나의 내일이겠지요.
    은퇴, 그것은 오늘의 삶의 축적들의 결과들을 매듭하는 한 매듭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그날이 아름답기를,
    은퇴, 그날이 축복이기를,
    은퇴, 그날이 더 넓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빌어봅니다.
    은퇴, 그날은 기쁘게 용납하는, 순명하는 날이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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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r. joo Says:

    주인돈 / 신부님,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는데요.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연락드리지요. 신부님이 꿈꾸며 비는 그런 아름다운 은퇴를 함께 맞이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좋은 모본을 보여주세요. 제가 따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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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Paul Says: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신부님 블로그에서 글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성공회와 천주교는 참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한 형제 교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겠지요?
    잔잔하면서도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신부님의 글,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아, 제가 잘 몰라서 여쭙는 것인데 혹 유학 중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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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fr. joo Says:

    Paul / 반갑습니다. 그리스도교 내의 여러 전통들에는 사실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지요.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면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일이 쉬운 방법이긴 한데, 그게 적대적으로 변하여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허다하다고 생각합니다.

    예, 아직 외국에서 덜떨어진 학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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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성공회 전통과 시적 언어 Says:

    […] 때가 되어 늘그막이 소일할 일마저 없게 되면, 이런 성공회의 시적인 언어들에 기대어 나 자신을 비추고 하느님을 엿보려 번역했던 시들을 몇 수 모아 해적판 시선집이라도 내볼까 한다. 나 스스로 좋은 시를 쓸 수 없음을 한탄하지 않아도 되려니와, 하느님께서 성공회 전통 안에 허락하신 아름다움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만으로 벅찬 일일는지 모른다. cf. Bill Countryman, Poetic Imagination: An Anglican Spiritual Tradition,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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