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1

이래저래 바쁜 여름을 보냈다. 몸이 파김치가 되었으나, 참 좋은 경험이었다. 아래에도 적었지만, 한국 방문 기간에 환대해 준 분들의 마음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어 곧바로 람베스 회의로 영국에 가는 바람에 몸의 집도 비우고, 이곳 블로그 집도 한동안 비웠다. 대신 새로운 임시 천막인 [람베스 통신]을 치고, 거기서 다시 몇몇 분들을 조우했으니 그것으로 족하게 기쁜 일이다.

몸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길었는데, 블로그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더 멀었다.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연결 문제로 연발과 연착이 거듭되었 듯이, 블로그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의 길에 연착륙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선은, 돌아와서 미처 영국에서 끝내지 못한 [람베스 통신]의 몇몇 글들을 정리해서 올려야 한 탓에 제 집을 소홀히 했고, 다른 이유로는 영국에 머물러 [람베스 통신]을 적는 동안, 거기다 적은 글들로 심기가 불편한 분들이 뒷담화하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통에 마음이 산란했다. 이런 일로 마음에 파장이 이는 건 분명 내 그릇이 작은 탓이요, 마음이 깊지 않은 탓이겠다.

수련과 내공이 깊지 못해서 얻은 상처라 해도, 우선 싸매고 치료하고 봐야 한다. 자칫 만신창이가 되면 남겨둔 수련의 일정을 소화할 틈도 없이 불구가 되어 하산해야 한다. 예전엔, 죽도록 싸워봐야 하리, 했는데, 돌아보니 객기였을 성 싶다. 우선 싸매고 보살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움츠리는 건 자연스런 보호 본능이다.

사실 이런 일에 익숙할 만도 하다. 연전에도 관구 게시판에서 더 험한 인신공격도 겪어 봤으니, 이 정도 가지고야, 할 만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문 상처의 자리는 더 약하다. 그 상처를 보호하고자 짐짓 단호한 어조로 “당부의 말씀”을 드리기도 했으나, 그걸로 잦아든 건 아니어서 다시 이런 공격이 머리를 든다. 게다가 알만한 사람이 뒷담화를 하거나, 인터넷에 주소를 입력하거나 링크를 타고 오면 언제든지 읽을 수도 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그런 뒷담화를 퍼뜨리는데 가담하는 일은 비겁하다 못해 가여운 일이다. 하릴없이 그 “당부의 말씀”을 다시 들려 줄 수 밖에 없다.

제 생각을 나누기 전에 여기서 잠깐 당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지 않으시고, 그저 몇가지 주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칠하려는 분이 있다면, 아래 내용을 읽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당사자 개인에게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말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영을 추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민스러운 내용과 글을 어렵게 나누고자 하는 처지에서 나온 글에 대한 이런 비방들이 그 주장을 정당하게 하기 보다는 교회 전반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도 교회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로 바쁜 처지에 어떤 정신적 노동과 수고를 강제할 생각도 없습니다.

익명성으로 가려진 공간에서는 신앙인이라면 스스로를 더욱더 삼가는 일이 덕이겠습니다. 솔직히 저만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을 받으면서 무대 밖의 어둠으로부터 화살을 맞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처지라면 오히려 실명을 밝히시고, 교회에서의 위치를 밝히면서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이 자신의 영을 건강하게 붙잡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은 논쟁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요구가 아니라, 한 명의 사목자로서 몇몇 신앙인에게 드리는 권면입니다.

마지막으로, 몇몇 신자들이나 동료 성직자들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으로 남을 윽박지르는 일을 삼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자신이 글을 쓰면서 매우 엄격한 “자기 검열”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기도요, 둘째로 제 자신에 대한 성찰이요, 세째로 신학 공부와 사목적인 경험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누려는 하나의 열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교회에 대한 책임있는 자로서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물론 성직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가 제게 부여한 책임이고, 또 검증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잘못이 있다면 그에 상응한 절차로 제게 책임을 물으시면 됩니다. 그에 따라 저도 제 말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제가 깊이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외부의 “윽박지름”이 우리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분들 (신자, 성직자, 수도자 모두)에게 지나친 자기 검열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리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크나큰 위험이자 손실입니다. 외부에서 강제된 이러한 검열은 결국 교회의 숨통을 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자기 듣기 좋은 말만 듣거나, 혹은 남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친목 단체로 전락할 것입니다. 교회의 사제직과 예언자직의 균형을 위해서 신자들이 먼저 성직자들을 응원해 주십시오. 저는 최소한 이것이 다른 교회와는 달리 성공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살아있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만 읽으시고, 떠나실 분들은 제발 떠나시고, 나머지 역시 읽지 마시고, 여러분의 영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아래의 이야기들이 그런 분들의 생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며,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돌이켜 살피거니와, 화살을 맞는 장면을 지켜보는 보는 입장에서 느끼는 짠한 마음과 실제로 그것을 맞는 처지의 느낌은 다르다. 게다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서 가려진 면들 때문에 저 친구가 진짜 화살을 맞았는지 아닌지 의심하는 부류도 있을 뿐더러, 비명을 엄살이라고 우기는 분들도 종종 나타난다. 그동안에 화살은 살을 꿰뚫고 피를 내고 몸에 독을 퍼뜨린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돌아오고 있다. 사실 마음을 같이하고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훨씬 많이 있다는 걸 안다. 게시판에서 그야말로 장난질하는 사람이나 뒷담화하는 분들은 극히 적은 한 두 사람에 불과하고, 사실 또다른 배려의 대상이요, 기도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화살에 맞는 사람은 그 충격을 감당하고 그 상처를 싸매느라, 혹은 그것이 나중에 덧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 이 참에, 사서 고생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할까?

그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곳은 내 돌아갈 작은 거처로 삼은 곳이요, 무엇보다도 선한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통로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으나마 이 공간에서 생명의 둥지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다물고 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참이다.

6 Responses to “집으로 돌아오는 길 1”

  1. 민노씨 Says:

    항상 신부님의 글을 읽으면서 깊은 위안을 얻곤 합니다.
    집으로 잘 돌아오셨어요. : )

    [Reply]

  2. 민노씨.네 Says:

    글이 기도가 되는 곳… via media…

    거기다 적은 글들로 심기가 불편한 분들이 뒷담화하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통에 마음이 산란했다. 이런 일로 마음에 파장이 이는 건 분명 내 그릇이 작은 탓이요, 마음이 깊지 않은 탓이…

  3. minoci's me2DAY Says:

    민노씨의 느낌…

    집으로 돌아오는 길 [1]..[2] (주낙현) : 감동적인 글.. 주신부님 글은 글이 곧 스스로 성찰하고, 희구하는 기도같다….

  4. fr. joo Says:

    민노씨 / 스스로를 위로하자고 쓴 글이었는데, 다른 누구에게도 위안이 될 수 있다니 기쁩니다. 그런데 너무 황송(^^)한 글을 쓰셨군요. 게다가 제가 그리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지라, 오히려 민노씨 글을 읽고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크게 켕겨서 아내에게 먼저 고백을 하고, 마음 씀씀이를 새로 해야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 못되는 걸로 평이 자자한데, 이런 글로 감동을 느끼는 희안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고 제 눈을 다시 넓히게 되었습니다. (ㅎㅎ)

    공교롭게도, 아거님께도, 민노씨에게도, 처지와 정도가 다르지만,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두 분은 제게 블로그 세계를 알려줘서 그곳에서 어떻게 진솔하게 대화하고, 어떻게 서로 도전하고 도전받을 지를 알려 준 분들입니다.

    집에 돌아왔으니 자주 뵐 수 있도록 노력합지요.

    좋은 글로 마음 나눠줘서 참 고맙습니다. 깊은 합장.

    [Reply]

  5. 로렌스 Says:

    행간을 통해 신부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일은 준비하리라는 신부님의 마음으로

    이해해도 좋겠지요?

    늘 애쓰시는 신부님께 도전받고 저 또한 생명의 둥지를 발견한

    한 사람으로 신부님께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의 힘을 보태드리는 것 밖에 없겠지만,

    늘 기억하겠습니다.

    신부님께, 평화.

    [Reply]

  6. fr. joo Says:

    로렌스 /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기도로 힘을 보태는 것 말고 우리가 서로 도울게 별로 없지 않나요? ㅎㅎ… 스스로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pax et bonum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