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보이는 것들과 감추인 것들…
큰 어른이 돌아 가셨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당신의 삶으로 많은 것을 비춰주고 가셨다. 큰 슬픔과 더불어, 부활의 생명에 드신 그분의 새로운 삶을 기린다.
사람은 역사에 족적과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여러 모양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살아있는 이들 가운데는 이름 값에 현혹되어 노욕의 추태를 부르거니와, 어떤 이들은 한 생명이 살아간 족적을 조급하게 평가하려든다. 한편,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한 존중때문에 사람들은 죽은 이에 대한 온갖 찬사를 쏟아놓기도 한다. 그 사이에 보이는 것들이 남발되고, 여전히 감추인 것들은 숨을 죽인다.
부활의 생명에 드신 김수환 추기경의 삶에 대한 기억 역시 내내 이런 유혹을 당긴다. 지난 40여년 간 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한결같이 보이신 신앙의 용기와 사목자로서 약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어떤 이들에게는 직책을 떠난 그분의 마지막 10여년과 불편하게 겹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 계실 때와 교회의 공적인 임무를 벗어났을 때를 가름하는 것이 어떤 이해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분과 함께 숨쉬는 공동체의 여부가 그분의 여러 언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희박한 자유의 공기 속에서 공동체와 더불어, 밭으나 깊은 호흡을 나누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 자신의 신학 연구 활동으로 바티칸 당국의 경고와 제재를 받은 바 있던 스리랑카의 천주교 사제 티사 발라수리야는 1977년에 나온 자신의 책 첫머리에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이렇게 옮겨 실었다.
교회는 부활의 신성한 촛불을 밝혀야 합니다. 교회 담장 안에서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담장 밖에서 행동을 통해서 그리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양심과 정의를 되살리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좀더 밝고 좀더 정의로운 사회와 더불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안에서 지난 30여년 동안 이 말대로 “교회 담장 밖에서 행동”했던 이들은 소수 무리인 정의구현사제단이었거나, 소수의 수도자들이었거나, 소수의 헌신적인 신자들이었다. 실은 종교 밖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땀과 희생이 더 컸다. 다만 종교는 늘 상징을 그 힘으로 삼기때문에, 그 상징적 인물과 그 행동이 도드라진다. 다만 그 속에서 밝히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감춰지는 것도 있다.
과대평가된 한국 천주교의 진보 정도를 가늠해서 밝힐 생각은 없다. 단지 천주교 내의 소수 무리인 정의구현사제단의 그것에 한참 못미친다는 건 분명하다. 사람들이 지난 몇십년 동안 천주교에 갖게 된 호감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실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사제단’은 소수이며, 듣기로는 그마저도 천주교 내의 힘있는 이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핍박받고 있다고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형국일 수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남기신 족적과 이름에 대한 찬사가, 이 소수의 이름없는 이들, 그리고 종교 밖에 있던 이들의 실천을 가리지 않길 바란다. 성직자로서 그분의 소임은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비추는 거울이요 창이었으니, 그분은 당연한 일을 하셨다. “선종”(善終)의 뜻이 그러하리라. 어른을 잃은 것을 슬퍼하는 것은 그나마 그런 창들이 귀한 처지가 되었고, 어른입네 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 창이 쉽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큰 어른을 잃었다. 그 어른이 감추지 않고 드러내려고 했던 사람들, 함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삶이 그분의 이름때문에 가려지질 않길 바란다. 부활의 촛불은 모든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비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어른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는 길이요, 올바로 추모하는 길이다. 그분이 의도하지 않았던 30여년 전 유언을 다시 듣는다.
교회는 부활의 신성한 촛불을 밝혀야 합니다. 교회 담장 안에서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담장 밖에서 행동을 통해서 그리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양심과 정의를 되살리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좀더 밝고 좀더 정의로운 사회와 더불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February 17th, 2009 at 9:09 pm
저도 좋은 모습만 비추고 돌아가셨으면 하지만,
말년의 모습은 사실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훌룡한 분인 것은 사실이지요.
천주교 신자인 제가 보기에 이곳이 막장인 개신교회보다 좀 나을뿐이지
밖에서 보는 것 만큼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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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7th, 2009 at 10:38 pm
짧지만 기도 드렸습니다.
평생을 사제로 살아오셨다는 것 만으로도 그분의 마지막을 기억하며 추모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가합니다. 인간이기에 남겨진 허물들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이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주님 당신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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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7th, 2009 at 10:50 pm
젤리 / 그분이 보여주신 큰 삶 앞에서 몇가지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확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한편, 남의 교단 말할 처지가 아닌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희 성공회도 마찬가지여서 내심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렌스 / 예, 저도 소식 듣고 바로 기도드리고, 오늘은 우리 기도서에 있는 기도에 따라 기도를 따로 바쳤습니다. 그분의 삶이 어떤 거울이요 창이었음을, 그 거울과 창으로 애써 비추려 했던 고단한 사람들의 삶을 함께 깊이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그분이 남기신 도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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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8th, 2009 at 8:42 pm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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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9th, 2009 at 8:13 pm
오늘 파키스탄 저희 교회 아침예배와 겹치는 시간이였지만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 생중계 본다고 아침예배 참석도 안했습니다(다른 사제 집전이라서 가능 ㅎㅎ). 그러면서 주 신부님이 한 말씀 하셨을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생활한지 20년이라 최근 10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지만, 제가 CCC출신인지라 김준곤 목사님 장례가 이렇게 KBS YTN이 생중계할 만큼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한 국무총리와 유 문화부장관의 덕(?)을 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천주교에 입문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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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9th, 2009 at 9:05 pm
카라치 김 /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가족들도 잘 지내시지요?
파키스탄에서도 보셨군요. 그런데 언급하신 김아무개 목사를 돌아가신 큰 어른의 이름과 나란히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군사 독재 시절에 그 김아무개 목사와 추기경이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장례미사 생중계와 현정권의 총리나 장관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마이뉴스도 생중계했는걸요. 그들의 덕(?)이 뭔지 모르겠지만, 추기경이 쌓으신 덕(德)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저는 총리가 읽은 2mb의 추도사를 듣고는 구토를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과 행동의 큰 어른을 보내드리는 길이어서, 마음을 여미고 잡생각을 버리고, 꾹 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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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th, 2009 at 10:29 am
여러 번 읽습니다…
이런 온전하게 충만한 글에는 왠지 댓글을 남기는 것도 송구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주신부님 기도를 바라보는 흔적이나마 남기고 싶어 다시 오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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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th, 2009 at 10:19 pm
민노씨 / 실은 저도 제 글을 여러번 살폈습니다. 하도 오해가 많은 세상이라서요. 그래야 고작 이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실은 민노씨 생각은 어떤지도 듣고 싶었는데… 아직도 떨쳐 내지 못한 여러 복잡한 생각은 남습니다만, 여기서 묻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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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3rd, 2009 at 3:44 pm
안녕하세요? 주신부님.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지만 대학로 성당에 다녔던 류혁이라고 합니다.
지금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더이상 성공회 교회에 나가지는 않습니다만 가끔 그때가 그립네요.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류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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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3rd, 2009 at 6:14 pm
류혁 / 기억하고 말고요. 세월이 돼서, 멋지고 잘 생긴 청년으로만 기억하는데 (그때는 다 청년이였지만), 여전하리라 믿어요. 오히려 기억해 줘서 고맙습니다. 미국 어디에 있나요? 제가 이메일 드리지요. 통화 한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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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4th, 2009 at 4:43 am
“더 가난해야 했었다 … 더 사랑해야 했었다 … 하느님 없이 사제는 아무것도 아니야 …” 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저 일 때문에 라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저같은 풋내기에게 하신 말씀같아 더욱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오늘 저녁 6시에 광화문 감리회관 앞에서 KNCC와 서울교구 사회선교부, 그리고 정의평화사제단 등 몇 개의 교계 기관과 단체에서 “용산참사 추모예배와 시국기도회”를 공동으로 가졌더랬습니다. 조금 전에 그 현장에 있다가 들어온 참이구요. 예배 시간 내내 서글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제 블로그에 몇자 적을까 하고 왔다가 오히려 신부님 블로그를 찾아 이렇게 넋두리를 풀고 있습니다.
시국 발언으로 일관한 예배 이야기는 집어치우고서라도 오늘 집회에서 남는 장면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장면이었습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건 살리려는 게 아니라 죽이는거다” 라고 나즈막하게 말씀하시던 어느 분이 계속 눈에 밟힙니다. 그리고 단상에 올라서서 “함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던 용산 참사 희생자의 자녀의 말도 계속해서 귀에 어른거리고 있구요.
용산 참사에서 희생당하신 분들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앞에서 참으로 마음이 아파옵니다. 어이없는 과욕이 부른 재앙과 우리 시대 큰 어른을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스럽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적어도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의 힘에 마음을 모으는 일이겠지요.
기도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요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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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4th, 2009 at 11:01 am
로렌스 / 생각 나눠줘서 고맙습니다. 우리 정의평화사제단 소식도 고맙습니다. 다른 글에서 좀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요즘”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때마침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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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4th, 2009 at 12:01 pm
“아직도 떨쳐 내지 못한 여러 복잡한 생각은 남습니다만, 여기서 묻어야지요.”
최근글을 보면 그 복잡한 생각들을 끄집어 내신 것 같습니다.
주신부님께서 깊은 고민으로 마음이 어지럽고, 또 이런저런 번뇌를 겪으실 줄은 잘 알지만… 저같은 독자로선 참 반가운 일입니다.
추.
저는 솔직히 김수환이라는 한 시대의 거대한 상징에 대해선 그저 관성으로나마 경외감의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을지언정, 제 실존을 울리는 어떤 것도 지금은 남아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늙어서 초라해진 거인의 쓸쓸한 초상이랄까… 뭐 그런 지극히 피상적인 이미지들 뿐이죠.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저에겐 좀 분수에 넘치는 일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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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4th, 2009 at 5:53 pm
민노씨 / 복잡한 생각들을 다 담을 수도, 다 토해 내서도 안되겠지요.
“늙어서 초라해진 거인의 쓸쓸한 초상”이라고 하셨는데, “거인의”란 말을 뺀다면, 사람은 다 그런 거 아닌가 싶고, 그런 “늙어서 초라해진 쓸쓸한 초상”은 모든 사람의 미래일테니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초라하고 쓸쓸한 것 같아도 참 아름다운 분들을 보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장례를 치른 마당에 첨언하자면, 그분은 초라하거나 쓸쓸하지 않았던게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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