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떤 교회를 선택할 것인가?
여기까지 왔다면, 독자들 대부분은 내가 특정 교단을 홍보하려고 별수를 다 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정한다. 한국 사회에서 작은 교단/교회들은 정해져 있다. 내 지식과 경험의 한계로 다른 종교에 대해서 할 말은 없다. 다만,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말하자면, 특정 교단/교회들을 머리에 두고 있다. 물론 내가 속한 성공회를 거기에 끼워 넣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부끄러운 것은 내가 속한 성공회가 소수자로서 소수자와 함께하는 신학과 신앙생활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랜 관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동시에 열등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자기 교단의 가능성에 초대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작은 교회 자체의 문제와 열등감을 이겨내려면, 그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열등감을 넘을 수 있는 가치와 행동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할 사람도 부족하고 노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작은 교단은 또 다른 좌절의 악순환에 내맡겨진다.
어쨌든 머리에 둔 교회들을 적어본다. 교단으로 말하면, 기독교 장로회(기장), 성공회, 복음 교회를 들겠다. 이 교단에 속한 개별 교회들이 그 가치와 실천에서 균일성을 보여주지 않으나, 교단 전통 안에서 최소한 공유하는 가치들이 있다. 문제는 이 전통적 가치들마저 성장주의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 교회로 따지면 더 확대할 수 있겠다. 예수 장로회(통합), 기독교 감리회 등과 같은 교단 안에서 분투하는 목회자들과 작은 교회들을 눈여겨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교단의 여러 교회는 그동안 작은 교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러나 무참히 실패하기도 했다. 그 작음으로 인한 가난은 사람을 너무나 지치게 했다. 교단 내에서, 그리고 교단을 넘어서 이들 사이에 긴밀한 생존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네트워크를 가진 교회들이 그나마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남았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천주교는 그리스도교 단일 교파로서는 세계에서 최대, 한국에서도 최대이다. 천주교의 진보성은 소수의 성직자과 수도자, 평신도의 진보성이다. 그들이 겪는 처지를 전해 듣는 마당에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정교회는 한국에서 가장 작은 교단으로 남아 있으나, 그 처지를 잘 알지 못하니 말하기가 어렵다.
트위터에서 트윗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쉽지 않은 문제였는데, 나는 우선 교회 규모로 쉽게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교단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개신교의 개교회주의라는 정황과 현실을 봐서, 도시에서는 500여 명이 분기점이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위 세 개 교단에서 이 숫자를 넘기는 교회는 기장이 좀 사정이 낫긴 하지만, 손을 꼽는다. 작은 교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우라면, 그 수가 더욱 낮아질 수 있다. 120명을 넘기자 일부러 분가한 교회도 있다(기장 강남 향린, 들꽃 향린). 내 경험과 자료들로 보면, 약 300명을 넘기면 개교회는 성장주의의 유혹에 빠진다. 성장을 원하는 작은 교회는 200명을 목표로 하다가 자기 정체성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작은 교회들은 악전고투하고 있다. 보기에 딱할 정도이다. 2-30명부터, 4-50명, 7-80명의 출석 인원까지 다양한데, 모두 생존 때문에 원래의 추구하던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스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도 이른바 ‘악’만 바친 몇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교회들이 충분히 사목적/목회적이도록 따뜻할 여지가 많지 않다. 새로운 찾아온 사람들은 낯설어하고, 슬금슬금 뒤꽁무니를 뺀다. 이 상처입은 작은 교회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악순환이다.
글 꽁무니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 짐짓 타이르듯이 쓰려 했건만, 그 처지를 다시 돌아보니, 넋두리에 구걸이 되었다. 그렇다. 뜻있는 작은 교회를 위해서라면 구걸이라도 해야 할 참이다. 교회를 포기하는 분들, 혹은 반(反) 교회, 무(無) 교회를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 길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그 길의 방향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교회 안으로/안에서 서품받은 사람으로서 보수적인 교회주의자인지 모른다. 내 깐에는 이것도 중요한 하나의 길이라고 믿는다. 이 길에 걸어보겠다. 어리석은 판단이라 해서 혀를 찰 분도 있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 생각을 바꿀 지언정,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넋두리에 섞인 구걸도 후회하지 않는다.
허튼 생각을 얼기설기 엮은 탓에 틈이 많다. 그 틈을 교회 안팎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고민하는 이들이 메워주시라. 그 과정에서 비판을 달게 받겠다.
February 25th, 2010 at 1:54 pm
제 자신이 요즘에 교회를 shopping하고 있기 때문에 잘 읽고 갑니다.
작은 교회에서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지만, 그런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도 현실이네요. 항상 그런 꿈을 위해서 머물렀던 곳곳에서 애써왔지만 오히려 작은 교회 내에서 겪는 관계 중심의 교회 운영이라든지, 혹은 불투명한 목회방침 등에 부딪혀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좀 아는’ 평신도가 목회자에게 항상 위협이 되는지, 그런 작은 공동체들에서는 더욱 껄끄러워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그동안 지친 마음을 좀 달래고 싶어서 만만한 대형 메가 처치에서 좋은 프로그램과 듣기 쉬운 메시지에 당분간 머물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제 두살 반 된 아이가 잘 커갈 수 있는 교회학교의 필요도 있구요.
한국에 돌아가면 신뢰할만한 몇몇 목회자들이 힘겹게 이끌고 가는 작은 교회들이 있는데, 지금은 쉽지가 않네요. 혹시 이 지역(Atlanta GA)의 성공회 교회 중 가볼만한 곳이 있으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그래도 절 잘 아시는 평신도 신학자이신 @bomnamul 님이 저는 성공회를 찾아가야 할거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고등-대학 동창 친구가 성공회 목회자로서 벽에 부딪혀 고생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았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 쉽지는 않습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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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joo Reply:
February 25th, 2010 at 2:23 pm
실은 @jonghwan 님 덕에 이런 생각을 한번 공개해봐야겠다고 했는데, 정작 감사의 인사에서는 빼먹었네요. 금방 트위터 이름 넣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민하게 해줘서.
미국에 있는 작은 교회, 특히 한인 이미 교회의 사정은 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적은 것처럼, 규모가 작다고 올바른 교회인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뜻 있는 작은 교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바르게 일어설 가능성은 거의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종환님도 잘 알고 계시기에 고민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종환님의 처지를 모두 헤아릴 수는 없으나, 메가 처치는 짧은 휴식 정도로만 삼기 바랍니다. 아이의 교회 학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그 나이면 엄마 아빠가 성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기도하며 신앙 훈련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종환님의 교회 ‘버전’을 가정에서 먼저 만들어 주세요.
아틀랜타 지역에는 한인 교회에 관한 한 제가 아는 교회가 없습니다. 영어를 쓰는 교회 혹은 다문화 사목을 하는 교회도 괜찮다면 지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친구 중에 성공회에서 일하시는 분이 있군요. 어떤 분인지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모르나, 저 자신이 경험하는 바이기도 하고, 또한 동료 신부님들을 통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깥 탓으로 돌릴 수 없으나, 교회 내부의 왜곡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회가 너무나 작은 교회로서 존재한 탓에 만들어진 점도 있습니다.
격려해주시고 늘 고민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bomnamul 님이 말씀하신 것이라면, 아마도 맞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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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wan Reply:
February 28th, 2010 at 8:19 pm
오늘도 메가처치를 다녀왔네요. ^^ 삼주째 메가처치인데, 그래도 마음의 휴식은 가질 수 있어 좋습니다. 대신에 교회를 넘어 신앙 안에서 친하게 지내는 두 가정을 초청해서 같이 대보름 저녁을 했습니다. 이런 성도의 교제가 훨씬 더 큰 기쁨을 주네요. 말씀하신거처럼 일단은 잠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저도 여기서 공부를 하는 입장이고 이제 2년 정도 기간이 남은터라 고민이 없는건 아닙니다. 지금와서 다시 공교회를 바라보며 섬길 수 있는 개교회를 찾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게 큰 걱정이지요.
@bomnamul님 말씀이 맞다는건, 역시 성공회 홍보를 하시는거군요. ^^ 감사합니다. 사실 정말 잘 알아보고 싶은데 이근처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한인교회는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갔다는 메가처치도 당연히 한인교회가 아니고, 미국에선 네번째 정도 크기인 정말 메가처치지요. 한인교회가 아닌 교회에서 성공회 교회 중 추천하실 곳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너무 감사합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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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joo Reply:
February 28th, 2010 at 9:18 pm
jonghwan 님, 오늘 주일 잘 보내셨어요? 우선 지친 마음에 휴식을 주고 보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다른 가정과 함께 하실 수 있다니 더욱 좋고요.
그 휴식 동안에 메가 처치나 성공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단 교회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선 성공회의 경우, 애틀란타 교구 웹페이지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 같고요. 지금으로서는 교구 주교좌성당(Cathedral)에서 전반적인 성공회 분위기(특히 전례)를 익히시면서, 집에서 가까운, 혹은 생각하고 있는 사목/선교 활동을 펼치는 교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주간과 부활절은 전례 전통의 교회에서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주교좌성당은 여러가지가 잘 갖춰져 있지만, 꼭 즐거운 곳만은 아니에요(제 경험 상 ^^). 하여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저도 지인들에게서 소식을 얻으면 연락드리지요.
애틀란타 교구 웹페이지 http://www.episcopalatlanta.org/
February 25th, 2010 at 7:52 pm
공감하고 배우며 잘 읽고 갑니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해서 특히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 지난 한주간동안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현재로서는 지금 발 담근 교회에서 계속 배우고 나누며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생명목회, 민중목회를 위해 애쓰면서 열명 스무명 내외의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과 개인적으로나마 계속 대화하면서 스스로 안주하는 것을 경계해야겠다고, 또 여타 ‘작은 교회들’의 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연대의 가닥을 놓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돌아보게하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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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joo Reply:
February 26th, 2010 at 9:54 am
실제로는 교단이 그런 네트워크의 근간일텐데, 그렇지 못하니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힘이 분산된다고 생각해요. 교단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특히 한국 개신교에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안정적인 교회들과 민중 교회와 같은 대안 교회 운동을 하는 교회들 간의 연대와 협력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각적인 연대가 희미해지는 교단의 정체성과 교단의 원래 목적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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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6th, 2010 at 12:02 am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로써 한마디 한마디 가슴에 담게 되네요.
요즘 무교회나 파라처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도 교회 공동체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같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겠지요. 무당이 되지 않는 이상…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많이도 보수적인 교단에 속해있는지라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소수자를 돌아볼 줄 아는 작은 교회를 늘 동경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속한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다면 그 신앙 고백에 ‘아멘’이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공회쪽도 관심을 갖게 되구요… 뭐 더 생각해봐야겠지만요.
어쨋든 신부님 글을 읽고나니 고민의 해결보다는 마음의 위로를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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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joo Reply:
February 26th, 2010 at 10:02 am
무교회나 ‘파라처치'(이 개념을 잘 모릅니다)와 ‘무당’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 그 신학적인 이념과 실천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와 다른 전통에 있는 교회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무책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자신 변명의 수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사정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지만, 주신 말씀을 통해서 볼 때, 그 교회의 전통과 신학에 동의할 수 없으면, 거기에 참여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위로가 되었다니 뜻밖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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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nd, 2010 at 2:10 am
생각이 무르익지 않은 와중에, 찬찬히 읽으면서 배움의 소중한 시간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작은 교회’의 필요성(혹은 필연성?!)에 동의하고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참여와 개입을 주저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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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joo Reply:
March 6th, 2010 at 11:33 pm
아직 설익은 생각이야 피차 마찬가지니, 좀 더 대화를 펼치고 고민을 나눠서 어떤 실체를 계속 실험했으면 좋겠어요. 선한 생각을 지닌 이들이 배회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교회에 있는 사람으로서 – 실제로는 잠시 외유하고 있지만 – 그런 분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마련해 내지 못하는 게 못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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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4th, 2014 at 9:46 am
게이임을 죄악시하지 않는 교회, 게이임을 거리낌없이 오픈하고 다녀도 사비가 걸리지 않을 교회가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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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 Reply:
November 17th, 2014 at 9:44 am
한국에도 있습니다. 길찾는교회…는 누구나 성적지향에 관계 없이 주일 오후 4시에 성찬예배로 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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