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 주류 교회의 쇠퇴

비(非) 서구의 보수적인 그리스도교파일수록, 특히 성장에 열을 올리는 교회들일수록, 서구 주류 그리스도교의 쇠퇴와 죽음을 안줏거리로 삼는다. 이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서구 그리스도교의 쇠퇴는 단순한 쇠퇴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적인 문화와 가치가 서구 문화에 스며드는 현상이라며, 여러 긍정적인 영향의의 사례를 들어 맞불을 놓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서구 그리스도교, 특히 주류 교회(mainline church)는 쇠퇴하고 있다.

용어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우선 정리할 것이 있다. 서구에서 말하는 주류 교회와 한국에서 말하는 주류 교회는 아예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서구의 주류 교회란 전통적인 개신교단, 특히 ‘리버럴’한 교단을 지칭한다. 미국의 보수주의 신학 – 그것도 미국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정치 문화적 우파와 상업주의가 결합한 – 에 기초한 메가 처치(mega church) 등은 신생 교회 혹은 교단이다. 물론 전통적인 보수 교단이 존재한다. 남침례교 같은 교단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주류 교단/교회는 대체로 한반도의 정치사와 엮여(특히 반공주의에 기반하여) 한국에 정착하여 특이하게 발전한 보수주의/근본주의 개신교들이다. 한국에서 진보적이거나 리버럴한 교회들은 교단적으로나 개별 교회 차원에서도 그 세가 지극히 미약하다.

많은 이들은 미국의 예를 들어, 진보적이고 리버럴한 교회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보수적 가치에 따른 복음주의 부흥이 가져오는 교회의 성장을 예로 들며, 교회의 미래를 점친다. 여기에는 통계 수치의 마법이 빠지지 않고 이용된다.

그러나 미국 주류 교단의 쇠퇴 현상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면 안될 역사 문화적 요인과 교회의 내적인 요인이 있다.

1. 미국 주류 교회들이 신자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그 쇠퇴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시민 인권 운동을 겪으면서 진행되었다. 이때 많은 주류 교회는 자신들의 과거 신학과 그 행태를 반성하기 시작했고, 특히 그 교회 지도자들은 시민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때 이러한 미국 주류 교회의 반성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보수적인 교단으로 대거 이동했다.

2. 게다가 이 시기 많은 주류 교단 내 개별 교회들은 시민 인권 운동 참여로 많은 논란을 겪었다. 이 논란 속에서 진보적이고 리버럴한 교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교회 행태가 싫거나, 보수파 교인들에게 지쳐서 교회를 떠났다. 이들은 이후에도 진보적으로 탈바꿈하려는 주류 교회에 다시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제는 세속 사회의 여러 가치가 자기들에게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들은 보수적인 신앙인들에게 치인 경험도 있어서 교회 자체에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3. 또 다른 요인은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와 영성주의의 문제이다. 반성하는 주류 교회는 교회의 가치에 공동체와 사회적 책임을 두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더욱더 개인주의화하고, 이에 들러붙은 영성주의(spiritualism)에 빨려 들어간다. 제도적 종교를 가지지 않되, 여전히 종교적/영적/신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4. 주류 교회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메가 처치(mega church: 초대형 교회)의 이른바 ‘번영 복음’ ‘번영 신학’이 사람을 유혹한다. 미국의 꿈은 이 번영의 복음을 통해서 실현될 참이다. 이들은 주류 교회에 남아서 흔들리는 신자들마저 미국의 가치를 들먹이며 뽑아간다.

최근 영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국교인 영국 성공회가 지속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실이다. 그 요인과 관련하여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지적들이 있다.

1. 사회의 세속화는 대세이다. 그러니 그리스도교가 쇠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국에서 이슬람교의 성장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것은 종교 근본주의의 성장 맥락에서 봐야 한다.

2. 교회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 현대 사회에 대한 교회의 부적응이 눈에 띈다. 특히 젊은 성직자들은 대체로 학교에 배치되어 있어서 교회에 관련을 맺기 어렵고, 교회 현장은 나이 든 성직자들이 대거 점령하고 있어서, 새로운 사목적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3. 영국 성공회의 경우, 현재 논쟁 중인 여성 주교 문제, 그리고 동성애 문제 등이 언론을 통해서 드러날 때, 특히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곤 한단다. 이때 젊은 세대, 그리고 좀 더 지적인 사람들의 태도는 교회에 대해서 더욱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4. 특이한 현상이 또 있다. 복음주의 교회들의 성장은 교회 전체의 쇠락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복음주의 교회들의 매우 협소하고 반지성적이며, 반동성애적인 극단적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는 교회가 득세할수록,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를 교회 전체의 목소리로 듣게 되고, 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영국에서 복음주의권이 성장하면 할수록, 영국 성공회와 다른 기타 주류 교회 등은 쇠락할 것이라고. 실제로 영국 감리교는 쇠퇴를 거듭한 결과, 영국 성공회에 재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주류 교회의 쇠퇴와 번영 신학에 입각한 보수파 교회, 그리고 메가 처치의 성장을 두고, 미국의 종교 사회학자 마틴 마티(Martin E. Marty)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Schadenfreude) 현상이라며 혀를 찬 바 있다. 한국에서야 좀 더 부드럽게 “금붕어 어항 옮기기”라고 할 만하겠으나, 비슷한 현상이다. 이 현상은 한국 개신교의 성장이 둔화를 넘어서 쇠퇴를 기록하기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몇몇 대형 교회들은 거침없이 교인 수와 자산을 늘리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교회의 계급화/계층화 및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과 영국의 상황에는 공통점과 상이점이 있겠다. 그러나 함께 고민할 만한 여러 시사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그리스도교계 (천주교, 개신교, 성공회 모두 포함)의 처지는 어떤가?

14 Responses to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 주류 교회의 쇠퇴”

  1. leopord Says:

    깊이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영국 성공회의 네 번째 쇠퇴 요인은 한국에서 리버럴한 교회가 구성되고 유지될 가능성이 왜 미미한가, 또 교회 바깥의 냉정한-그다지 냉철하다고는 할 수 없는-시선은 어디에 기인하는가를 간결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전문을 블로그에 게시하고 싶습니다. 블로고스피어의 변방이지만, 이글루스 같은 경우엔 ‘개독교’에 대한 이미지와 거부감이 무척 강해서-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 사이의 괴리가 있을텐데도-목회자의 입장은 어떤지를 비록 적은 사람이라도 읽고서 교회와, 그에 대한 편견, 또 교회가 거듭하는 잘못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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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그 네 번째 쇠퇴 요인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지형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들의 최근 행태를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수구 개신교인들의 거침없는 행동은 어떤 점에서는 성장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죠. 그들이 발가벗고 춤출 수록, 또는 혐오감을 만들면 만들 수록 그와 비슷한 사람들은 모여들게 됩니다. 정치를 진흙탕으로 만들면 만들 수록 정치에 진저리쳐서 정치에 무관심하게 하고, 오히려 수구들은 그런 정치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은 링크만 하시되 (굳이 전문을 옮기겠다면 막을 수 없지만 ^^), 레오포드님이 토론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부분적으로 옮기면서 대화의 길을 확장하시면 좋겠어요. 어디서 다른 분의 요청에 답한 것과 같습니다. 또 이글루스 등은 그나마 낫지만 여전히 회원/비회원에 따라 댓글쓰기 제한이 되는 등 자사 서비스 울타리에 반대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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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opord Reply: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 생각할 꺼리만으로도 감사한데요. 주말을 틈타 나름 이야기를 풀어가봐야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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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헤아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도 풀어갈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2. ntolose Says:

    “매우 협소하고 반지성적이며.. 극단적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는 교회가 득세할수록,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를 교회 전체의 목소리로 듣게 되고, 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그렇기에, (비록 선언서, 성명서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만, 그리고 성명서 문화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교회들, 그리스도인들의 지향과 목소리를 천명할 선언문 같은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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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성명서 문화’에 대한 복잡한 생각에 공감합니다. 저도 이 블로그 어디에서 그에 대한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명서가 자신들의 이미지 구축에 사용되면 안될 것 같아요. 오히려 실천에 대한 신학적 근거와 지향, 실천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으면 합니다.

    그 ‘성명서’는 좀 더 다양해져야 하리라고 봐요. 요구만이 아니라 반성문도 좋고, 선교 선언문이었으면 하고요. 굳이 거대한 단체를 통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개별 교회가 자기 고민을 정리하여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네 성명서에는 집단주의의 그림자가 너무 진하게 깔려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좀 더 고민과 실천의 방향이 진척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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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베땅이 Says:

    흠… 외국에 있어서 주류 기독교라는 것이 그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나라의 주류는 외국의 대형교회 현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거… 특히 복음주의 대형교회의 성장이 교회 전체의 쇠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겠지요.
    에효… 뭔가 깝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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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갑갑하게 만들려는게 본 뜻은 아니었는데… 힘 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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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코뮌 Says: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도 전문은 올리지 않고, 부분만 옮기고 링크를 걸어 블로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짧지만 강한 글들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시원하기도 하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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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반갑습니다. 제 생각에 공감하든 아니든, 또 링크를 하든 옮기든, 이런 생각에 코뮌님 자신의 경험과 비판을 붙여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이 훨씬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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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김성민 Says:

    미국에서는 이런 주류교회의 쇠락을 극복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경우를 봅니다. 사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필라에 있는 Biblical Seminary에서도 대부부분 중류계급의 장로교배경을 지니고 있는 교수들이 missional theology(특히 emerging church movement)에 목숨걸 정도록 집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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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말씀하신 missional theology 나 emerging church 운동은 주류/비주류, 리버럴/보수신학을 막론하고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그만큼 그 논의의 지형과 색깔이 다채롭습니다. 그러니 하나로 얼추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 운동이 기반이 되는 몇가지 중요한 ‘재발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선교’에 대한 재발견과 새로운 이해(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통치, 선교하시는 하느님)와 ‘전통’에 대한 재발견(영성 전통, 전례 전통, 그리고 교회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사고 방식에 호의적인 것입니다.

    지적하신 ‘중류 계급의 장로교 배경’은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가져다 줍니다. 위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계층과 신앙 전통(교단)에 따라 이머징 처치 운동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방법과 내용이 다릅니다. 한편 이 운동이 메가 처치의 문제에 대한 염려와 저항이라는 면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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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냉철한 열정” – 서구 주류 교회의 미래 Says:

    […] 전 아래에 서구 주류 교회(교단)의 쇠퇴에 대해서 적었다. 서구 주류 교회에 ‘자유주의’라는 딱지, 그것도 […]

  7. 김바우로 Says:

    제블로그에 발췌하겠습니다.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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