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 분노를 내려놓기로”

“안녕 – 분노를 내려놓기로”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자 영국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인 가일즈 프레이저 신부의 말이다. 자신이 9년 동안 글을 기고하던 <처치 타임스>(Church Times) 지에 더는 글을 싣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마지막으로 쓴 글 제목이다. 이 글에 담긴 여러 말이 가슴에 꽂히는 바가 있어서 잠시 그와 해당 글 일부를 소개하고, 그리고 나 자신의 소회를 이에 비춰보기로 한다.

프레이저 신부는 영국 성공회 런던 교구 사제이자 니체 전공 학자로서 교회 및 사회 문제에 관한 진보적 발언을 계속했다. 특히 그가 소속된 ‘영국’ 성공회의 여러 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작년 ‘점령 운동'(Occupy Movement)이 런던 주교좌인 세인트 폴 대성당에 천막을 치고 있었을 때, 그는 그 대성당의 고위 성직자인 캐논(canon) 신부였다. 그는 점령 운동을 지지하며, 세인트 폴 대성당 측의 천막 철거 방침에 반발하여 캐논 신부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신자가 거의 없는 런던 시내 작은 교회의 주임 사제로 부임했고, 여전히 가디언지 등에 기고한다.

9년 동안 글을 써오던 <처치 타임스> 지면에 안녕을 고한 이유가 아프다. 새로 지명된 캔터베리 대주교 등 교회 당국자들의 정책에 비판과 분노를 내뱉는 일에 더는 시간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더는 그에게 분노하거나, 내가 소속되어 있고, 앞으로도 나 자신이 그 한 부분일 교회에 대한 부끄러움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나는] 사적으로 불평하기보다는 공적으로 의견을 내어 비판하는 쪽을 택한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가일즈 신부는 새 캔터베리 대주교가 고수하고 있는 동성애 문제에 관한 태도에 실망한 듯하다. 실제로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얼마 전에 있었던 대주교 선출 확인 예식이 끝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영국 의회를 통과한 “동성애자의 시민적 결합” 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었다.

프레이저 신부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영국 성공회는 지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향에 영구적으로 반대하는 영적인 개척 분야가 있다… 반대보다는 찬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성서의] 지혜를 따라, 더 찬성하면서 편안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을 찾기로 했다는 말이다…

“내 의견이 잘못된 적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조직의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을 점점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속성만을 찾는 듯하다. 정말이지, 사탕 발린 말만 던지는 주교들에게 신물이 난다…

“점령 운동 건은 계속해서 나를 흠칫 놀라게 한다. 아마도 내가 죽는 날까지 남을 멍 자국이다. 새로운 사람이 세인트 폴에서 대주교가 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 상처가 다시 몰려왔다.

그와 똑같은 사안과 경험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의 감정과 결심을 이해할 만한 일들이 내게도 있었다. 거기서 헤어나지 못해서 지난 3년의 ‘시간을 허비’했다. 물론 내 책임도 크다. 그러면서 그동안 사랑과 마음을 두었던 기존의 조직에서 방향을 틀어 ‘영적으로 새로운 개척 분야’에서, 어둠을 직시하면서도 좀 더 밝은 일을 하려는 쪽으로 잠시 가닥을 잡기로 했다. 쉽지 않다. 또 다른 도전과 걸림돌이 많다. 그러나 우선은 이것이 나 자신을 추스르고 쇄신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이저 신부가 말한 ‘흠칫 놀라게 하는 사건과 멍’은 내게도 비슷하다. 외부의 비난과 치기는 실은 참을 만하다. 그것들을 허상으로 보면 되고, 실제로 허상이니까. 그러나 어떤 발언과 일에 대해 거의 철저하다시피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닫아 침묵하는 행태에서는 희망을 점점 잃었다. 나는 이제 그런 ‘도통한 이해나 단수 높은 침묵의 동의’를 믿지 않는다. 그것들이 설령 어느 차원에서 ‘도통’한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차원에서는 그만큼, 혹은 그보다도 더 나쁘게 자기 행동을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일로 상쇄하기 마련인 탓이다. 공감과 소통이 없는 조직에는 숨과 피가 돌지 않는다

프레이저 신부의 마지막 문장은 내 마음을 울린다.

“때로는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위해서는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은 신선한 들판, 새로운 풀밭을 위한 때다.”

4 Responses to ““안녕 – 분노를 내려놓기로””

  1. 아거 Says:

    신부님께서 새로 하시는 일이 순항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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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아거님, 격려와 기원 고맙습니다. 곧 설이군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설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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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헌남 Says:

    숨겨진 분노를 내려놓고 공감과 소통으로 영적인 건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프레이져 신부님을 통하여 용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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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uh Eun Says:

    Goodbye: I am letting anger drop
    영어 공부는 이럴 때 다시 하고 싶어진다…
    분노를 내려 놓지 못한다면…. 분노유발자로부터 도망이라도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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