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고발 – 세례자 성 요한 참수 축일
세례자 성 요한의 참수 (8월 29일)1
목을 잘라서 사람을 죽이는 참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처형 방법입니다.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주고, 당하는 사람을 지독히 경멸하는 방법입니다. 20세기 초에야 거의 없어진 이 흉악한 일이 지금도 극단적인 이슬람 국가 몇 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참수는 우리 역사 안에 크고 깊이 새겨진 상처와 아픔을 되새기게 합니다. 조선 말기의 폭정과 수탈에 시달리다 못해 일어섰던 동학농민전쟁의 전봉준 장군과 지도자들이 참수를 당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는 한국 독립군들의 목이 일본 군인의 무자비한 칼부림과 작두질로 땅에 뒹굴어야 했습니다. 권력자에게는 처형이지만, 힘없는 이가 보기에는 살인입니다. 이 몸서리쳐지는 살인이 세례자 요한에게 일어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뱃속 시절부터 예수님의 친구였고, 커서도 깊은 우정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한 꿈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꿈은 다양한 권력으로 사람을 억압하며 짐짓 거룩한 체하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위선과 악행을 회개하며 물 속에 들어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이 세례 사건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활동이 더욱 깊이 연결됩니다. 우리 신앙인은 세상에서 계속되는 억압과 불의와 위선을 비판하고 저항하라는 사명을 받고 기름 부음(크리스토스)을 받은 새사람, 작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사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 사건의 전면에 섰습니다. 불의하고 부도덕한 왕에 맞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참혹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헤로데 왕은 먹고 놀며 춤추는 연회장에서 내기의 노리갯감으로 세례자 요한의 생명을 앗았습니다. 낙타 털옷과 들꿀로 살던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의 화려한 옷과 기름진 잔칫상이 큰 대조를 이룹니다. 쟁반에 올려진 세례자 요한의 마르고 차가운 얼굴과 낄낄거리며 만족하는 왕의 반지르한 얼굴 차이가 선연합니다.
오늘 우리 세계에도 세례자 요한의 운명을 나누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근본주의 종교 집단은 선량한 사람을 붙잡아다 참수하는 잔혹한 일을 벌입니다. 참수는 아니더라도, 더 교묘한 방식으로 생살(生殺)여탈(與奪)권을 쥐고 흔드는 다양한 권력자들이 우리 일상에 숱합니다. 이들은 가진 지위와 힘으로 약한 사람을 겁주고 경멸하고 모욕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여전하다면, 우리는 무례하고 악독한 헤로데 시대를 사는 셈입니다.
이콘이 비추는 대로,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우뚝 선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못된 권력과 힘부림에 맞서라고 촉구합니다. 교회 전통에서는 세례자 요한 참수 축일에 단식하며 그의 죽음을 기리거나, 음식을 먹더라도 칼을 쓰지 않고 둥근 쟁반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의 억압과 폭력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언입니다.
-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8월 24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