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우물 맛 나무 – 생명과 환대의 신앙
깊은 우물맛 나무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그분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겨라.
GFS의 태동과 초기 역사를 정리한 “GFS의 역사” History of the Girls’ Friendly Society (1911년 간행) 첫 장의 시작입니다. 19세기 당시 큰 사랑을 받았던 디나 크레이크(Dinah Claik)의 시를 인용하며, GFS 의 꿈을 격려하고, 그 꿈을 일구는 땀과 수고를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되새겼습니다. 이 기록의 시점에서 백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 GFS는 성공회 모든 교우와 더불어 어떤 꿈을 꾸며 나무를 심고 어떻게 길러내야 할까요?
세계 GFS 가 작은 씨앗으로 공식 출범하던 1875년, 그 꿈은 가난한 여성 노동자, 특히 어리고 젊은 여성들을 향했습니다. 이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자신의 삶을 가꾸는 대화의 장과 교육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일에 지친 젊은 여성들이 피로와 가난에 짓눌려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그 꿈을 일으켜 세워 그들과 함께 더 큰 꿈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가난한 여성은 정회원이 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도우미’ 회원이 되어 책을 읽어주고 대화를 이끌었습니다. 지위와 재산으로 갈라진 세상을 여성들이 나서서 싸매어 위로하고 온전하여 ‘거룩한 사회’로 회복하도록 애썼습니다. “기도하며 있는 힘을 다해 새로운 나무를 심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여러모로 갈라져서 반목이 깊다는 우려가 큽니다. 그 안에서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특히 젊은 여성들의 처지가 더 나빠진다는 걱정이 깊습니다. 실은 이 걱정과 우려가 GFS의 깊은 희망이 자라나는 토양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사회와 교회가 눈길을 주지 못하던 모퉁이를 찬찬히 살피는 GFS의 선교는 황량한 벌판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환대하는 일이 우리 교회의 선교라는 사실을 되새겨 줍니다. 이 환대가 교회의 선교이며 신앙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환대와 사귐은 깊고 풍성한 신앙의 ‘우물’에서 나옵니다. 잠시 흘러 넘치는 빗물이나, 손쉽게 틀면 쏟아지는 수돗물과 같이 ‘얕은’ 물이 아니라, 새로운 ‘삶과 생명의 물’을 제공하는 ‘깊은 우물’입니다. 그 우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목마른 이들을 초대하고 동행하고 적셔주는 삶입니다. 그 우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다른 이들의 슬픔과 아픔에 참여하여 함께 흘리는 눈물입니다. 이 촉촉한 삶과 고난의 눈물이 모여 깊은 죽음으로 한없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마련된 지하수가 바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요, 부활의 생명입니다. 교회는 그 지하수를 퍼올리는 ‘우물’입니다. 그 ‘우물가’에 부활의 생명수를 머금은 나무들이 자라납니다.
GFS가 이 동행과 눈물과 생명의 깊은 우물물을 퍼올리는 마중물이기를 다짐합니다. 신앙의 역사와 전통, 전례와 영성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올린 독특한 물맛을 나누는 일이 선교입니다. 그 깊은 우물맛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 우물가에 큰 나무를 키워야 합니다. 여기서 교회의 미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 풍성한 나무 아래서 많은 이가 열매와 진정한 쉼을 나눌 수 있습니다.
GFS의 증인들과 디나 클레이크는 우리와 더불어 여전히 노래합니다.
- 한국 GFS 소식지 <우물가> 2015년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