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 – 자비로운 휴식, 넉넉한 신앙

측은지심 – 자비로운 휴식, 넉넉한 신앙 (마르 6:30~34, 53~56)1

“아, 쉬고 싶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이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쉼 없이 바쁜 생활, 특히 현대의 도시 생활에 지친 마음이 드러납니다. 선진국 반열에 든 우리 사회이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최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생활입니다. 젊은 세대에서는 더욱 깊은 한숨이 되어 나옵니다. 깊이 듣고 살피면 육체의 피로를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매일 듣고 살며 경험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어지럽고 불의한 사건 속에서 우리는 깊은 피로를 느끼며 평화를 목말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응답해야 할까요?

예언자 예레미야는 쉼 없는 사회의 피로가 어디서 나왔는지 갈파합니다.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사회와 인간관계가 이런 한숨 섞인 피로의 원인입니다. 소위 ‘갑을관계’가 우리 마음을 짓누르고, 사람을 향한 보살핌과 안녕을 도외시하는 여러 정치 행태와 규율이 사람을 겁나게 합니다. 자녀교육과 취업 문제로 시름 깊고 마음 불안합니다. 이때 신앙인은 인간관계의 정의를 기도하고,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서로에게 모두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사람 사이에 만드는 정의와 평화의 토대를 말합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는 누구도 서로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은 서로 억누르거나 강요하는 삶을 떠나, 낯선 사람,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환대하여 형제자매로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니 교회의 성장 비결은 그리스도의 환대와 사랑을 중심으로 커가는 새로운 가족 말고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집’인지 판가름하는 잣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집을 이룬 가족의 마음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몸소 보여주십니다. 참 인간이신 예수님이기에 육체의 피곤을 느끼십니다. 피세정념(避世靜念), 즉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일상, 앞만 보고 달려가는 생활에서 잠시 발을 멈춰야 큰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사람과 사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멈추어 바라본 세상에 마음을 주는 일이 측은지심입니다. 그런 뒤에 일상에 다시 돌아와 움직이는 행동은 이제 일이 아니라 치유요, 구원입니다. 치유와 구원을 펼치는 자비의 손길은 피곤함을 모릅니다.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마련해 줍니다. 말씀과 성체로 서로 먹이는 풍요로운 신앙의 길로 인도합니다.

휴가와 휴식의 계절에 우리는 정의와 평화, 측은지심의 기운을 되살렸으면 합니다. 성서로 기도하고 좋은 신앙 서적을 읽으며 우리 자신을 가르치고, 낯선 사람과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고 발견하는 시간을 가꾸어 갑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과 가정, 우리 교회와 사회를 ‘신령하고 넉넉한 하느님의 집’으로 세워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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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ian Maier)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5년 7월 19일 연중16주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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