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귀에 거슬리는’ 진리
복음 – ‘귀에 거슬리는’ 진리 (요한 6:56~69)1
성당 입구에는 세례대나 성수대가 있어서, 들어올 때 성수를 몸에 찍으며 세례의 은총을 되새깁니다. 세례 때 약속했던 대로, 죄의 과거에서 몸을 돌이켜서 구원의 제대를 향해 순례하겠다는 다짐과 행동이 은총의 첫걸음입니다. 성당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분리된 공간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분리와 구별을 ‘거룩함’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인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의 상식과 잣대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구별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요한복음서는 거룩하게 구별된 삶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우리를 더욱더 격려합니다. 어둠과 빛, 세상과 진리, 그리고 먹어도 죽을 빵과 영원한 생명의 빵을 구별하고, 빛과 진리와 생명을 선택하라는 부탁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에게서 이해하기 쉬운 ‘말씀’과 따라 살기 쉬운 ‘길’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과 길을 보고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못마땅하고’ 귀에 ‘거슬리도록’ 불편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61~62절). 세상과 달리 자주 손해 보고, 더 참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보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선택과 은총이 만나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불편한 말씀과 길을 따르겠다고 작정할 때, 새로운 삶, 세상을 변화하는 삶이 펼쳐집니다. 이것이 우리 삶을 ‘영원한 차원’으로 인도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 신앙의 출발입니다. 불편한 선택을 제거하고 손쉽고 값싼 축복을 남발하는 종교는 그리스도교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기대는 오히려 신앙을 ‘배반’하는 길로 빠집니다(64절). 실제로 많은 제자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이른바 번영과 축복의 종교를 기대하는 이들을 두고 예수님은 오늘도 물으십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겠느냐?”(67절).
베드로의 당찬 대답은 우리 대답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겠습니까?” 이 대답은 우리가 몸담은 교회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작고 불편하고 어렵고 못마땅하고 거슬리더라도, 우리 교회가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지니고, 오히려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오해받고 배반당했던 예수님을 우리 안에 성체와 보혈로 모시고, 세상에서 배척받은 사람들, 낯선 사람들까지도 품으면서 주님 걸으셨던 길을 뚜벅뚜벅 뒤따라야 합니다. 그 길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의 부탁대로 우리는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하고, 평화의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지니고 걷습니다. 여기에 우리와 우리 교회의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5년 8월 23일 연중21주일 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