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녀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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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녀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1

주낙현 요셉 신부 (성공회 GFS (Girl’s Friendly Society) 동행사제)

꽤 야릇한 편지글 제목을 뽑았지만, 쓰기까지 여러모로 주저했어요. 꼭 한 해 전 우물가 소식지에 써달라 하여 쓴 글을 읽어보니 너무 많은 소망과 청을 GFS 회원들에게 던진 터라, 더는 적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게다가 올해 한국 GFS 지도사제를 맡으라는 명을 받은 후에 느낀 부담이 적지 않았고, 그동안 GFS 가 걸어온 길의 수고와 땀이 고마우면서도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으니까요.

“여기에 제가 무슨 말을 더 보탤까요?” “곁에서 이야기하시듯 써 주세요.” 글쓰기가 안 된다고 투정을 부렸더니, 예의 밝은 웃음으로 건네는 격려의 말씀을 회장님과 회원들께서 들려주시더군요. 좀 멀리서 관망하며 뻔한 소리나 하는 일은 접고, 가까이서 뵙는 이에게 드리는 편지라도 써볼 량 마음을 다잡기로 했어요.

얼마 전 문학 관련 글을 쓰시는 교우 한 분이 자신의 글에 김혜순 시인의 “첫”이라는 시 한토막을 옮겨다 놓았더군요. 시 읽기를 좋아했던 시절이 아스라해져 버린 제 처지에 아주 반갑게 다가왔어요. 그 반가움에 시인의 어둡고도 깊은 뜻은 헤아리지 않고 ‘첫’이라는 말이 열어주는 추억과 생각에 저 자신을 멋대로 맡겨 읽었답니다.

“…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 (…)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김혜순, “첫” 부분)

여기서 저는 GFS 와 관련하여 세 개의 “첫”을 생각했어요. 51년 전 폐허가 된 한국 사회에서 작은 성공회의 더 작은 여성들이 시작한 한국 GFS 의 첫 마음과 다짐은 어땠을까요? 6년 전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탈북여성들의 삶을 도우려는 우물가 프로젝트의 첫 꿈과 각오는 어땠을까요? 그리고 한국의 활동 50년의 땀을 넘어서 100년을 향한 첫 희망은 무엇일까요?

GFS 의 ‘첫’ 마음을 시인의 언어 속에서 발견합니다. 세상 속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에게 “엄마 젖”을 나누며, 서로 사랑으로 “뭉클뭉클” 한몸이 되고, 서로 울고 웃고 떠드는 사귐의 마음이지요.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처지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고 “서로 짐을 나누어 지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걸은 세월이었어요. 그 ‘첫’ 걸음이 우리 땅에서만 50년을 넘어 이제는 원숙한 중년의 삶과 지혜를 얻었고요. 서로 짐을 나누어 질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지워진 멍에를 벗기는 일에도 애를 썼고, 쓰러진 이들을 보살피고 일으켜 세우는 노력을 기울였지요. 이 거친 길은 자칫 우리 중년의 삶을 피곤하게 하여 자기끼리만 보살피는 생활로 이끌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세월의 쇠락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 되고 말 수도 있어요. 이때 우리는 ‘첫’ 마음에 담아서 ‘젖’을 물렸던 아픔과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간절한 아쉬움으로 세상 속 많은 여성과 “뭉클뭉클”하고 서로 “간지러움”을 나누는 삶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우물가 프로젝트의 ‘첫’ 각오는 참으로 감사하고 감동스러웠지요. 우리 역사에 새겨진 분담의 아픔, 여전히 이어지는 대결과 긴장, 그리고 그 안에서 특별히 고통받는 여성들은 우리 삶의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눈감지 않고, 우리 ‘소녀 친구들’은 탈북 여성을 돕기 위해 우물가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분열과 아픔의 옛 역사를 매정한 마음으로 칼로 끊어내고 새로운 역사의 ‘첫’ 장을 열려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었어요. 여성들의 불안한 갈망을 평화롭고 기쁜 희망으로 바꾸는 그 소중한 발걸음은 이제 걸음마를 떼고 달음질쳐야 할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어린이로 치면 학교 갈 나이인가요? 좀 더 배우고 대화하고 사귀며, 더 큰 장소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더 많이 품는 일로 커나갔으면 해요. 아직 어리고 젊은 ‘소녀 친구들’을 더 얻어서, 원숙하고 너그러운 지혜의 ‘소녀 친구들’이 품어주고 응원해주었으면 해요.

저 개인으로서는 GFS와 첫 인연이 지도사제라는 발령입니다. 귀하고 복된 일이에요.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꽤 무거운 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꼭 짐을 나눠 주세요. 그 ‘첫’ 시작은 ‘지도사제’라는 말이 아니라 ‘동행사제’로 불러주었으면 합니다. ‘동행’은 깊고 아름다운 ‘친구’가 되는 길이니까요. 발령 후에 첫인사로 모인 ‘소녀 친구들’에게 물었어요. 지금까지 한국 ‘소녀 친구들’의 역사에서 전국 ‘지도사제’ 가운데 여성 사제가 있었느냐고요. 없었답니다. 그러니 다음에는 꼭 ‘첫’ 여성 동행 사제를 이 아름다운 모임에 모셔주시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여성 사제들이야말로 가장 멋지게 동행할 ‘소녀 친구’이니까요. 그 ‘첫’ 동행사제는 한국 사회와 교회에 여러 아픔의 기억과 희망의 기억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거에요. 그 ‘첫’을 여는 순간, 이제 우리는 ‘첫’ 생각에 담긴 어린 처지를 잘라내고, 오히려 환하고 젊고 원숙한 삶을 열어가며 더 많은 ‘소녀 친구들’과 기쁨의 짐을 나누게 될 테니까요.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마음과 각오를 되새기고, 끊어낼 것은 끊어내고, 다시 시작할 일의 ‘첫 시작’을 과감하게 펼쳐갔으면 합니다. ‘첫’ 마음의 축복을 담아 ‘소녀 친구들’에게 깊은 동행의 인사를 드립니다.

  1. 성공회 전국 GFS 탈북여성지원 프로젝트 ‘우물가’ 소식지 2016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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