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과 가라지 – 인내와 훈련의 신앙인
밀과 가라지 – 인내와 훈련의 신앙인 (마태 13:24-30, 36-43)
지난주에 이어 예수님의 비유가 계속됩니다. 씨앗과 수확이 같이 등장하는데 상황은 사뭇 다릅니다. 복음서는 이번에도 역시 친절한 풀이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우리 삶과 신앙에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느님 나라는 끝내 완성되어 많은 이에게 수확의 혜택을 베풀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명백한 뜻을 되새기는 한편, 더 깊은 뜻을 헤아리려 합니다.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밤에 나쁜 ‘원수’가 와서 가라지 씨를 뿌려 밀의 생육을 훼방합니다.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화가 나서 당장에라도 가라지를 뽑겠다고 덤빕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함부로 뽑다가 밀이 다칠까 염려합니다. 수확 때까지 기다려 ‘추수꾼’에게 맡기자고 합니다.
초대교회 내부에도 여러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좋지 못한 일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빨리 처분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섣불리 손을 대다가 상처와 아픔이 애먼 데로 번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없이 너그러워지라는 뜻일까요? 그보다 먼저, 나쁜 것들이 활개를 쳐 더러우니 모두 내팽개치지 말고 더 견디라는 부탁입니다. 절망하고 포기하면 교회와 공동체, 사회와 국가를 바르게 이끌어갈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 악인들이 판을 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른 사람들이 절망을 견디는 힘으로 다가옵니다.
바르게 견디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오로지 깊은 배움과 모진 훈련에서 나옵니다. 오늘 비유에서 ‘성급한 제자’와 ‘숙련된 추수꾼’의 대조가 분명합니다. 농사 지어본 사람은 압니다.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뽑아내야 합니다. 농부의 고된 일은 수확을 기다리는 데 있지 않고 잡초와 병충해를 막는 데 있습니다. 생육을 가로막는데도 내버려 두는 태도는 무책임합니다. 정작 문제는 책임을 다하겠다고 덤비는 제자들의 미숙함입니다. 의지와 패기는 가라지처럼 꼿꼿하게 넘치지만, 훈련으로 내실이 여문 알곡처럼 머리를 숙이지 못한 상태입니다. 신앙의 훈련이 미숙한 이들은 교회의 농사를 망칩니다. 오로지 숙련된 농부여야만 가라지를 식별하여 처리할 수 있습니다.
‘추수꾼’은 숙련된 신앙인입니다. 그들이 아니고서는 추수를 맡기기 어렵습니다. 추수할 일은 많은데 일꾼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탄식이 이 때문입니다. 더욱이 무늬는 일꾼이고 추수꾼일지언정 가라지가 아니라 밀을 계속 뽑아내면서 책임을 다한다고 하면 공동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교회가 온갖 역경과 도전 속에서 빚어낸 신학과 신앙의 원칙을 깊이 되새기고 훈련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것은 성서를 공동체 안에서 읽고 도전받으며 더 깊이 배우는 학습입니다. 우리 전례와 신학의 전통을 깊이 새기고 몸으로 익히는 행동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사려 깊게 살펴 성서와 전통이 작동하도록 힘을 보내는 이성적 실천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내와 훈련이 빚은 견실한 신앙 안에서 다가옵니다. 신앙인은 자신과 공동체 안에서 밀과 가라지를 식별하여 대처하는 전문가입니다. 이로서만 하느님 나라의 도구인 교회가 바로 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