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단상 – 관구장 회의
이마에 재를 받는 순간의 그 엄숙함을 지키며 스스로를 침잠시키고 있는 참이다.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선언은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선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 무상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다들 죽을 존재들이라는 운명을 되새겨주는 것만도 아니다. 이 선언은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의 끝에 새로운 생명, 즉 우리가 먼지와 흙에서 창조되었듯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롭게 빗어지는 새로운 창조의 삶에 대한 기대까지도 담고 있다. 이 이중 의미의 선언이 관구장 회의 이후의 세계성공회, 특히 미국 성공회에게 더욱 깊고 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관구장 회의 전체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자기 모순들이 서로 충돌하기에 바빴던 허약한 모임이 또다른 희생양 잡기로 전락한 모습을 보노라니 답답할 뿐이다. 게다가 이런 모임이 이제는 [성공회 계약] 초안을 통하여 버젓이 교리적 파수견으로 등극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성공회의 역사가 새로 쓰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성공회가 가져왔던 깊이와 넓이가 이런 알량한 모임으로 왜소화될 것을 예상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일치”라는 가치가 교묘하게 분열주의자들에게는 일치론자를 압박하는 좋은 무기가 되고, 새로운 “한 몸인 그리스도가 되어 스스로를 봉헌하는 일”이 목적인 성찬례는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볼모가 되어 버리는 광경이 관구장 회의에서 일어나는 다반사라면, 어찌 그들을 지도자로 따를 수 있겠는가? 어처구니 없는 떼쓰기와 협박이 신앙의 보수를 덧입고 날뛰는 괴기한 광경들이다. 자신은 영성체를 하지 않으면서, 성반을 받아들어 주님의 몸을 나눠주는 괴이한 행동은 도대체 어떤 신학에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남부끄럽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관구장 회의에 때맞춰 참으로 깊은 신열을 앓았다. 그 와중에도 관구장 회의의 진행 내용을 꼼꼼히 챙겨서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반면교사가 아닌 이상 배울게 없는 사태로 막을 내렸고, 나도 더이상 힘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나흘 동안이나 침대와 책상 앞에 눕기와 앉기를 반복하다 지친 몸의 기운들이 재의 수요일을 통해서야 새로워지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리하여 주님과 새로운 부활한 몸을 얻으리라는 희망 만이 힘이다. 신실한 세계성공회의 신자들과, 실망과 좌절로 이 사순절을 맞고 있는 미국 성공회의 여러 신자들에게 이런 희망에서 나오는 깊은 연대의 기도를 바치는 사순절을 만들어야 하겠다.
이 와중에 동료요 친구 사제인 리차드 헬머(The Rev. Richard Helmer) 신부는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난 축복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자신에게 축복이었으며, 하느님의 손길이었는지를 깊은 성찰로 증언하고 있었다. 귀가 있는 자들은 이 외침을 들어라. 그리고 그가 감싸고 있는 사랑 안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이들을 보라!
이제 나는 그들과 함께 한다. 꼭 해야 한다면 그들과 함께 쓰러질 것이다. 하느님, 필요할 때에 그런 용기를 내게 주십시오.
아멘, 내 친구!
September 25th, 2007 at 5:20 pm
[…] of Bishops)이 9월 19일부터 25일까지 뉴올리언즈에서 열렸다. 지난 2월 탄자니아에서 열린 관구장 회의가 올해 9월 30일 시한으로 현재 세계성공회의 갈등과 논란에 대한 […]
October 16th, 2007 at 10:15 am
[…] 한 같은 자리에 앉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찬례에도 참석하지 않고 같이 한 떡과 한 잔을 나누기를 거부한 분들이니 그리 놀라운 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