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성공회 주교회의 열릴 수 있나?
람베스 회의(Lambeth Conference)는 10년마다 열리는 세계성공회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명칭이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무실인 람베스 궁(Lambeth Palace)에 세계 모든 주교들이 초대받아 10년마다 모여, 세계성공회 각 지역 교회들의 현안들을 논의하고 교류하는 모임이다. 이게 거창하게 무슨 초대 교회의 공의회 전통(conciliar tradition)이니 뭐니 해서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은 없다. 그런 선의가 없지 않지만, 그 이름 높은 “공의회”와 같은 막중한 임무와 교리적 결정 권한을 갖지 않는다. 게다가 이 회의는 14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전통을 가졌고(1867년에 첫 모임), 캔터베리 대주교의 “개인적인 초대”에 주교들이 응하는 모양새를 띤다. 흥미롭게도 이 회의는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가 처음으로 제안했던 것이며, 당시에 여러 신학적 논란에 대한 지역 주교들의 의견 교환과 공동 선교의 협력을 위한 교류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여전히 문제다. 인간의 성(Human Sexuality)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그 실천을 둘러싼 논란이 2008년에 열리기로 예정된 람베스 회의 개최 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첫 모임과는 반대로,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때문에 모임이 무산되리라는 위협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자칭 “글로벌 사우스”에 소속된 주교님들께서 동성애 문제에 관한 캐나다와 미국성공회의 정책을 “회개”하여 철회하지 않는 한 같은 자리에 앉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찬례에도 참석하지 않고 같이 한 떡과 한 잔을 나누기를 거부한 분들이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세계성공회 일치의 상징인터라, 예정대로 이 회의로 모이기를 희망하고,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발송된 초대 명단에서 논란이 되는 미국 뉴햄프셔 교구의 진 로빈슨 주교를 뺐고, 나이지리아 주교에게서 지명받아 주교가 된 미국의 마틴 민스 주교도 초대하지 않았다. 정당하게 선출되어 인준받아 성품된 주교와, 해외에서 지명되어 교구 영역 “침입”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주교를 차이두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의식해서 인지 캔터베리 대주교는 미국 주교원 회의에서는 진 로빈슨 주교의 초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노라고 했다. 이에 “글로벌 사우스”는 다시 자동반사적으로 발끈하고 있다. 캔터베리 대주교와의 상통도 재고하겠다는 거세게 덤빈다.
아프리카의 몇몇 주교들은 아예 람베스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연기하라는 공개서한도 람베스 궁에 보냈다. 여기에 영국의 매우 보수적인 몇몇 주교들도 가세를 하는 모양이다. 논란이 있어서 함께 모여보자는 람베스 회의 원래 취지를 잊었던 것인지, 아니면 성찬례도 같이 나누지 않는 판에 이게 대수겠냐라는 결연한 의지의 발로인지는 모르겠다.
영국의 한 주교님이 블로그에 쓰신 글을 소개하려다 말머리가 길어졌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 람베스 회의에 참석하겠느냐는 질문에 우스개를 섞어 대답한 것이다. 그 촌철살인을 여기에 다 옮기지 못하겠으나, 그의 생각을 요약 인용하면 이렇다. (인용 안 링크는 내 블로그 안의 관련 글로 내가 덧붙인 것임.)
1. 당연히 참석한다.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람베스 회의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개인적인 초청 파티이다. 그가 천주교처럼 바티칸 공의회 같은 모임을 열든, 자신이 좋아하는 심슨 비디오를 틀어주든 그의 마음이다. 산헤드린이 목요일 저녁에 모였지만,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날 만찬을 즐기시지 않았던가? 1662년 기도서에 이런 말이 있다. “주인이 좋은 음식으로 잔치를 마련했는데, 이를 거절하고 오지 않으니 얼마나 비통하고, 냉혹한 일인가?”
2. 사실 나도 자리에 같이 앉고 싶지 않은 주교들이 있다. 십계명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아프리카 형제 주교들이 있다. 부러움에 가득차서 정권들과 끼리끼리 놀아나고, 거짓 증언하고, 도둑질하기도 한다. 이것이야 말로 도덕적인 문제 아닌가? 이런 사람들하고 어찌 같이 앉을 수 있단 말인가? 양심이 있다면 우리 자신들의 죄를 모두 다 까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내 교만을 이겨낼 수 있다면 함께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
3. 그나저나 윈저 보고서와 람베스 결의안 1:10의 문제는? 나는 동성애 결혼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윈저 보고서와 람베스 결의안에서 요구한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한 경청의 과정에 내 자신이 열심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미국성공회는 이 요구 사항들에 애써서 따른 것 같다. 그에 비해 아프리카 형제들은 다른 관구에 들어가 분파들을 서품하고 하면서 이런 요구들을 날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여기서 두가지 잣대를 들이대는 위선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느니 우리 모두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둘러 앉아서 함께 걸어가기 위해 대화할 일이지, 갈라져 나갈 일이 아니다.
4. 내가 성공회 신자인 것은 성공회 신자가 되기 위해서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이다. 교회보다 좀더 높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전망을 가져야 한다. 현대 인류학이니, 탈제국주의니, 도덕 신학이니 하는 것들도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하신 일, 모든 벽들을 허물어 뜨린 일, 그리하여 우리 생각의 방법을 확 바꾼 일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동료 주교들과 같이 앉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 한니발 렉터도 스털링 요원과 같이 이야기하지 않나? 드클러크도 넬슨 만델라와 같이 하지 않았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예수님도 이스가리옷 유다와 함께 저녁을 드셨다.
그나저나 블로깅하는 주교님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나? 이곳 캘리포니아 교구 마크 앤드러스 주교님도 블로거다(Bishop Marc). 내년에 주교님이 되실 우리 가운데 신부님들도 블로깅을 시작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October 16th, 2007 at 9:50 pm
정말 촌철살인이네요.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네요.
저도 우리 주교님이나 신부님들의 말씀을 기쁘게 인용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전반적으로 우리 성직단, 우리 성공회안에 소통이 자유롭고 신뢰할 만한 수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에 성직자게시판에 주교선거 관련 글을 하나 올리려고 글을 쓰다보니
너무너무 힘이 들더군요. 내용이 정리 안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실은 읽는 분들의 소통 수준, 해석 능력^^을 고려하려 보니 표현을 이리저리 바꾸는 일에 너무 공력이 들고 진도가 잘 나가지 않더라구요.
웬만한 내용은 그냥 상식이고, 이심전심이고, 우스개는 우스개고, 논리는 논리고, 뭐 그렇게 이해해야 쓰던 읽던 글이 될텐데…
지난 번에 한 번 글을 올렸더니만 핵심적인 논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별로 안중요한 표현과 말꼬투리만 따지고 늘어지는 분들을 너무 많이 보았거든요. 왜, 신실한 분들일수록 대체로 머리가 안좋은 것일까^^고 비감하게 생각하며 이것이 과연 나의 교만한 판단일까를 제 3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주제로 보면 저 또한 ‘인간의 성’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묻고 듣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없지 않으나 도무지 ‘소통’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 아득한 ‘소통’을 위하여 늘 노심초사 애쓰시는 신부님께 존경과 격려의 마음을 드립니다.
[Reply]
October 16th, 2007 at 11:17 pm
“신실한 분들일 수록 대체로 머리가 안좋은걸까?” 이거 오늘의 당첨작입니다.
신부님의 고민을 알고도 남습니다. 그래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셔서 올리신 좋은 글을 성직자 포럼에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계속 애써 주세요.
성직자 포럼에 최근에 올린 제 글은 하도 반응이 없어서 내리려는 참이었는데, 임신부님 글 뒤에 누군가가 따다 올려놨더군요. 그래서 그대로 두기로 했어요.
사실 언젠가 성직자 포럼에도 적어올렸고, 신부님과 전화하면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소통을 위한 기본적인 “공유 개념 정리”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념은 맥락과 논리와도 연결되는 것이니, 이런 공통 기반이 없이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이 여러 주변 환경에 의해서 상당히 오염되었는데 그 찌꺼기들을 발라내는 시도들을 널리 유통시켜야 하리라 봅니다. 그게 신자들과 다른 신부님들을 돕는 것이겠다 싶어요. 신부님이나 저나 이런 블로깅을 통해서 그런 시도를 해보는 것이고요. 성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한동안 두들겨 맞을 것도 각오해야지요. 하하하.
[Reply]
October 17th, 2007 at 2:20 am
두들겨 맞는 맷집이 저는 형편없어요.^^
하지만 더 성숙하려면 불가피한 일이겠지요?
바울로 사도가 자칭 예루살렘 정통사도들로부터 두들겨 맞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갈라디아서에서 로마서로 이어지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 의 사유가 깊어졌겠습니까?
바울로 사도가 고린도교회 교우들로부터 뒷통수를 맞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오늘도 우리를 울리는 그 편지들을 성경에서 볼 수 있었겠습니까?
공연히 혼자 마음만 상해서 냉소적인 처신을 아니하고
더 깊은 사랑으로 뭔가 생산적인 열매를 거두려면
역시 우리 힘이 아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은총의 선물이 필요하리라 믿습니다. 더하여 분별력을 주시길 청하고,
그 공동식별의 과정에 신부님의 도움을 늘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평화!
[Reply]
May 18th, 2008 at 12:37 pm
[…] 역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람베스 회의(Lambeth Conference)가 올 여름에 열린다. 이 회의가 이미 벌어지는 교회의 분열을 멈출 수 […]
July 16th, 2008 at 2:42 am
[…] 정리해서 올려야 하는데 잔뜩 미뤄놓은 채로 캔터베리에 와 있습니다. 예, 람베스 회의가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세계 성공회 사무소 커뮤니케이션 팀의 […]
March 20th, 2012 at 1:4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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