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 잡감
1.
성직자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위계를 전통으로 하는 교회 안에서는 그 질서의 압박감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각양각색의 신자들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무엇보다 고민 많은 한 신앙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이는 이를 잘 피해나가는 것이 경륜이자 지혜라고들 하나, 여럿을 보건데 자기 합리화로 들리곤 했다. 그 말들에 사실 행복한 얼굴이 묻어나지 않은 탓이다. 자기 검열에 먹히는 일이 빈번하다.
나 역시 자유롭노라고 할 처지가 아니다. 몇 번이나 그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거니와, 하루에도 몇번씩 다짐과 생각을 고쳐 먹는다. 도전을 객기로 여기고, 슬픈 자포자기를 도통으로 여기라는 충고가 앵앵거린다. 철 들라는 소리와 함께.
2.
그러나 성직자는 혼자가 아니어서 사제들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위로하며 새로운 도전을 일깨운다. 저마다 부족한 것들이지만, 사금파리로 모여 듬성듬성 삶의 빈 곳을 매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동체가 이 희망을 저버리거나, 무관심하면?
아마 조급증이었으리라. 이런 절망과 무관심이 우리 교회 안에서 독버섯 피어나듯 하여 우리 그늘을 좀먹고 있다는 생각. 햇볕을 피하는 그늘이 되어 지친 삶을 서로 기대어 쉬는 자리가 아니라, 축축하고 써늘하게 습진 동네가 되어 버린다는 생각. 이 조급증이 사람살이의 복잡한 일을 내밀하게 살피지 않고 간섭하도록 나를 떠밀었는지 모른다.
3.
몸이 이 공동체에서 멀어져 있는 탓도 있겠다. 첨단 테크놀로지로도 몸이 함께 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 다만 그 간극을 좁히고 싶고, 내 깐에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어보고, 그 사이에 어떤 소통이 마련된다면 족할 일이라서 해서 블로그니, 포럼이니, 인터넷 지식 프로젝트니 하는 것에 기운을 주고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대문에 걸어 놓았다. “성공회 카페는 신앙과 지식과 성찰이 어우러져 새로운 지혜와 실천을 열고자 하는 공감의 목소리와 공명의 메아리를 담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게 빈수레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4.
유혹이었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피하고 싶었을 게다. 그도 아니면 나서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내가 스스로에게 묻는 동안에, 길동무[道伴]인 신부님은, 같은 물음을 하느님께 물어 그 음성을 이렇게 들었다고 한다. 내공의 차이다.
네가 너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을 많이 얻어
교회의 세력을 이루었다면
그 어울림과 권력의 맛에 취하여
반드시 하느님도 사람도 잃어버렸을 것이다.
네 외로움, 네 모자람, 네 어리석음 때문에
너는 나를 향하여 나의 길을 걸어오게 되는 것이다.
5.
어디에다 적었던 글들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배운 바 없지 않으니, 다른 식으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대화와 나눔이 없으면, 자랄 수도 풍요로워질 수도 없다. 이것이 자기 검열을 넘어, 좀더 넓고 깊은 자기(‘우리’) 수련과 도전으로 이끌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를 몸으로 살지 않고서야, 미사에서든,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몸”을 운운할 수 없다.
January 14th, 2009 at 6:00 am
신부님, 사제의 고민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이 글이 사제가 아닌 저의 마음에도 크게 울립니다.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합니다. 저를 돌아보고,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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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4th, 2009 at 3:01 pm
차요한 / 같이 기도합시다. 그리고 신학생들 사이에서도 애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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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7th, 2009 at 1:38 am
신부님 감사합니다.
분당교회에 출석하는 성직지망 청년입니다.
신부님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저 같은 사람이 용기를 얻습니다.
항상 수많은 고민과 부족한 자신감 때문에 스스로 자문하곤 합니다.
내가 과연 교회와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성직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하지만 신부님 같은 신앙의 선배들의 진실된 고민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위안과 용기를 얻습니다.
저 같이 부족하고 우둔한 사람이 과연 성직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그래도 도전해볼 가치가 있기에 저는 지금도 하루하루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더 크고 힘든 십자가를 지는 것이기에 지금보다 고민과 두려움이 더 커지겠지요…..
감사합니다….자주 블로그를 방문했지만….글은 처음 남기네요…..
주낙현 신부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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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8th, 2009 at 6:21 pm
김바울 / 응원 감사합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에 너무 사로 잡히지 마세요. 스스로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면서 성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직도 어차피 하느님이 주신 소명이기에, 행복하게 즐겨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게 뭘까 싶습니다. 참되게 즐기는 일에 힘을 쏟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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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8th, 2009 at 7:34 pm
행복하게 즐겨야 할 것이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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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th, 2009 at 4:19 am
바쁜 일들에 쉼표 하나 찍은 기분입니다.
앞으로 할 일이 참 많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무거운 일 하나를 덜어냈다는
후련함에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신부님도 잘 아시지요? 아무런 사고 없이 행사를 치루었을 때의 기분을요. 멀리서 기도의 힘을 보태주신 덕분에 은혜롭게 퇴임식과 승좌식을 잘 치루었습니다.
…
한동안 옆으로 밀쳐두었던 일기장을 꺼내어 읽는 기분입니다.
신부님께서 올려주신 글 … 그리고 얼마전에 임프란시스 신부님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 … 두 글 모두 행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제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두어번씩이나 곱씹어가며 읽었더랬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제게는 참으로 귀한 말씀 … 감사합니다.
조금더 부지런하지 못한 제 자신을 다시 추스르려는 참입니다.
거칠기만 한 고민도 다듬어야 하겠고, 공부도 더 열심을 내어야겠고,
올해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 어느때보다도
느슨해진 제 생활을 조여야 할 것만 같은 마음입니다.
제가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신부님께서도 응원해 주실거죠? ^^
조만간 전화드리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신부님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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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th, 2009 at 2:45 pm
로렌스 / 애 많이 쓰셨습니다. 한편, 두 행사에 대해서 듣고서, 어떤게 “교회 일”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이죠.
착각을 벗어나는 일에 함께 했으면 합니다. 공부도 그 일의 방편이겠으니, 준비에 진전이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물론,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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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8th, 2009 at 6:50 am
안녕하셨지요..?! 람베스 회의 이후로는 한동안 신부님 블로그에 들어오지 못했네요. 졸업이다 뭐다 세상 일에 정신이 팔려서 말이지요… 🙁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그간 제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학교는 졸업이 코 앞이고, 그새 새로운 학교에 도전해서 합격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교구 사제로 무사히(!) 서품을 받을 수 있을 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충실히 따르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신부님의 이번 글을 보니, 저 역시도 깊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서도 때때로 신부님의 글을 찾아 읽으며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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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8th, 2009 at 4:32 pm
승좌식에서 성가대로 참석했는데 마음이 묘하더군요!
저야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내부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항상 성직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 paul님 사제의 길을 걸으시는군요!
주님의 은총이 성직자로의 길에 항상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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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8th, 2009 at 7:50 pm
Paul / 오랜만입니다. 언급하신 그 변화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기를 응원합니다. 천주교의 “교구 사제”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엇갈립니다만, 같은 처지의 교구 사제로서 나눌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응원하며 기도합니다.
부엉이 / 역시 오랜만입니다. 지난 여름 생각이 나는군요. 다시 그런 시간 가질 수 있을까요? 🙂 잘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기도 고맙습니다. 이곳을 통해서나마 자주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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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30th, 2009 at 9:00 am
주신부님, 교회공동체의 대화를 찾다가 오게되었습니다.
나너 그리고 우리를 넘어서 하느님께까지 갈 수 있는 대화를 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나를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공동체에 비추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죠.
그래서 성공회 전국총회의 과정이 더욱 귀하게 생각됩니다.
최근이 이어령선생의 대화집, 나, 너 그리고 나눔의 대화집을 들고 몇 군데를 읽었습니다. 나, 너 그리고 우리를 넘어 세계화까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굴, 남자들은 동굴 속에 갇혀있다고 어느 작가가 말을 햇죠.
그 동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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