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인간이라면…

현 2mb 정권은 인간에 대한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집단이다. 사람의 목숨 여섯을 순식간에 앗아간 대참사다. 당시 진압 방법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속속들이 드러나는데도, 수사를 성급히 종결하려는 시도가 뻔히 드러나 보인다. 수구 언론과 이 정권의 똘마니 의원들은 아예 연행된 사람들에 대한 멍석말이를 하고 있다. 이 틈을 타서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무식한 진압 작전을 승인한 자도, 대충 자리 보전을 점치는 분위기로 기울고 있단다. 생명에 대한 예의가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이 정권과 그 졸개들에게는 인간이란 함께 살아가는 집단이라는 최소한의 이해가 없다. 콘테이너로 장벽을 쳐서 막으면 그만이고, 그 콘테이너로 짓누르면 그만이다. 서로 소통해야 할 언어가 애시당초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것들이, “고의적 방화”니 “도심 테러”하는 망발들이다. 또다른 콘테이너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 덜 된 것들만 탓해야 무엇하리.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학살을 보고 받으셨을 때, 그리고 실로암 탑 붕괴로 많은 이들이 죽은 것을 예를 들어서 말씀하실 때, 희생자들에게 적용하려던 ‘필벌’의 방향을 돌리셨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루가 13:1-5) 참사를 만들어낸 원인을 쏙 빼고 희생자들에게 모든 것을 덮어 씌우려는 못된 생각을 전복하셨다. 게다가 이 말씀은 이 참사를 저잣거리의 남의 일쯤으로 돌리는 일에 대한 매서운 경고다. 누가 이런 사람 덜 된 것들을 최고의 자리에 앉혔는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이 말씀은 욕망교회의 광신도들인 2mb와 그 졸개들에겐 공염불일 터이니, 우리 먼저 회개하고 정신차려서 이 정권의 광란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11 Responses to “차마, 인간이라면…”

  1. 민노씨 Says:

    대한민국 정부가 어떤 의미에서는 욕망교회의 광신도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우리와 저들을 나누게 하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최소한의 예의를 생각하면 도무지 저들은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들인지… 하는, 우리와 함께 뉘우치고, 반성하며, 함께 부서지고, 조각난 것들을 다시 세우고,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실수를, 잘못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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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짠이아빠 Says:

    신부님.. 정말.. 답답합니다.. 앞으로 4년을 어찌 견뎌야할지..
    또… 아직도 현실을 전혀 모르는 우리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답답하구요..
    도대체 삶의 우선순위가 왜 우리 대한민국에는 이리도 뒤죽박죽인지요..
    교회가 그리 많으면서 왜 우린 사람을 꼭 죽여야 성공하는 사회가 되어가는지..
    요즘에는 TV뉴스를 보지 않습니다… 세상에 기자라는 자들이 버젓히 카메라 앞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먹고 있던 컵이라도 던지고 싶더군요…

    아.. 답답해요.. 답답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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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r. joo Says:

    민노씨 / 저도 그게 암담합니다. 멀리 있어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 그 소통불가를 목도하며, 이들이 정말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무리들인가 의심합니다. 콘테이너 박스가 상징하는 것들이 극악합니다. 게다가 욕망교회의 광신도들이 이 정부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이와 성을 불문하고 그런 광신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순간, 이 사건이 다른 뉴타운 건설에 영향을 끼치면 어떡하나 하고 주판 굴리는 사람들이 있을테니…

    그러니 이 광포함을 멈추려면 먼저 제 자신을 포함한 회개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적당히 안타까워 하고 혀를 차는 일로는 안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삶의 방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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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r. joo Says:

    짠이아빠 / 지금으로서는 그 답답함을 함께 하고 있노라는 말씀 밖에 드릴 수 없어요. 그게 저를 더욱 슬프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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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seoulrain's me2DAY Says:

    서울비의 알림…

    “그 철거민들이 잘못해서 벌 받은 거라고 생각하냐? 망할 놈들아” – 예수의 말씀이다….

  6. 바우로 Says:

    집에서 내쫓긴 용산철거민들의 반항을 용역깡패와 결탁하여 폭력진압한 경찰을 보면서 전 한국이 로마제국처럼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 종교적 표현으로 사탄의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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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r. joo Says:

    바우로 / “사탄의 질서”는 다름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내면화된 욕망의 질서입니다. 그 욕망을 투사하여 만든 것이 2mb라는 망측한 우상입니다. 그런데 이 우상이 힘을 얻는 과정을 보면, 이렇게 세운 우상을 짐짓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혹시 떨어질지도 모를 떡고물을 기대하는 걸로 양식삼아 성장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때 신앙인은 “경계에 선 파수꾼”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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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부엉이 Says:

    저도 앞으로의 기간이 걱정되네요ㅠㅠ

    MB가 막무가내인 인간이라는건 이미 대선전부터 분명했는데
    환경재앙인 대운하도, 각종 비리/도덕성 문제도 ‘경제’,’실용’에 묻어버리고
    노소를 막론하고 MB를 뽑아버린 국민들도 미워지네요.
    (그렇다고 경제를 살린 것도 아니구요…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이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것들도 곁들여 받게 되리라” 하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이런때일수록 신앙인이 정신차려야 겠죠…
    하지만 저희들의 회개만으로 괜찮을까요?ㅠㅠ MB일당뿐만아니라 MB가 상징하는 국민들의 경제적 욕심은 그대로인데….

    기도라도 열심히 하는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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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r. joo Says:

    부엉이 / 회개만으로는 안되니, 회개를 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여러 모양으로 이 “일당”과 열심히 싸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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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로렌스 Says:

    고통이 반복되는 삶, 팍팍하고 건조한 인생에서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 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구요 ^^. 고통의 문제는 저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고 가야할 우리네 삶과 얽혀있는 무엇이겠기에, 요즘같은 때에는 더더욱 묵상의 주제가 되곤 한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용산지역 참사를 지켜보면서 이토록 참혹한 고통의 현장에서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라는 제법 도발적인 생각이 든 적도 있었더랬습니다. 원망스러운 마음에 그랬겠지요.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으막한 음성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스쳐갔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보고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마음을 온전히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에게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에 시대의 징조는 커녕 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에 바빴던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더랬습니다.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고자 천주교 사제들이 시국미사를 길거리에서 봉헌했더니 어떤 까칠한 여성 하나가 사제들더러 “차라리 옷을 벗고 정치에 입문하시지요” 라고 했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접한 오늘은, 기도의 힘과 변함없는 하느님의 은총에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싶은 마음 가득한 날입니다.

    아파오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댓글 단답시고 주제넘게 제 넋두리만 잔뜩 늘어놓았네요. 아둔한 이의 마음을 이끌어 주시는 신부님께 감사 … 그리고 신부님과 우리 모두에게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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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r. joo Says:

    로렌스 / 깊은 생각 나눠줘서 고맙습니다. 한동안 먹먹한 마음에 있다가,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피정하고선 돌아가는 길입니다.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모호한 경계의 사이(betwixt & between) 안에서 잠시 댓글을 돌아 봅니다. 마음을 같이합니다.

    침묵의 문제라면, 저는 우리 자신의 침묵을 좀 탓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피정 안에서 가진 대 침묵이 어떤 연민과 자비에 대한 공감과 공명의 지경을 넓히는 작업이라면, 우리 성직자들과 우리 교회의 침묵은 뭘 만들려는 건지 잡히지 않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신자들에게 그런 몰지각한 욕을 먹을, 용기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그 몰지각과 야만에 대한 둔감을 질타한다고 봅니다. 이 처지에 다시 우리 교회의 침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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