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희망 – 성삼일 워크숍 제안서에서

웬일인지 이루지 못한 일이 아쉽게 자주 떠오른다. 해 놓은 것 없이 나이만 들어가니 급해지는 탓일까? 계절의 소식과 함께 좀 더 빠른 주기로 찾아오는 이 징그럽도록 고통스러운 알레르기가 남겨놓은, 몸에 대한 좌절일까? 부탁받은 글을 쓰면서 다시 들춰 본 몇 년 전의 워크숍 제안서의 앞 대목은 그 현재성이 선명한데도, 그 좌절의 경험 탓인지, 가물가물하도록 요원한 투정으로 읽힌다. 그래서 새로 글쓰기가 힘든지도 모른다. 그래도 과거의 희망을 여전히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읽으려 한다. 아직 함께할 많은 벗이 있지 않나. 그 작은 희망을 버티기 위한 기억으로 한 부분을 옮겨 놓는다.

부활-성삼일(Triduum Sacrum) 성직자 워크숍 제안서
(부분, 2009년 4월)

배경과 질문:

현재 한국 성공회는 그 선교적인 정체성과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교구는 정체성과 성장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며 이를 실행하면서 다른 교구에 하나의 모본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서 한국 성공회 전체의 선교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이 논의와 실험은 한국 성공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1.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교회의 선교적인 정체성과 성장에 대한 전망의 방향과 근거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우리가 굳이 “성공회”로서 선교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고, 이 이유와 우리가 바라는 성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 문제는 성공회가 발전시켰던 성공회 전통의 신학 방법과 신앙 방법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이냐를 묻는 것과 연결됩니다.
  2. 이러한 방향과 근거를 통해서 갖추어야 할 우리 교회의 신앙적인 실천 내용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성공회가 자신을 형성시켜온 신앙생활의 방법을 우리 신앙생활의 실천에서 드러내고 있는가? 이 문제는 전례(말씀과 성사)를 성공회의 신앙과 영성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를 묻는 것과 연결됩니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성공회의 선교적 정체성과 성장은, 성공회를 형성시켜 왔던 전통에 입각한 선교적인 전망과 그 실천인 전례를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단과 목적:

성공회는 전례를 통해서 그 신앙과 영성을 발전시키는 신앙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회 사목의 핵심은 전례에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의 문제와 위기는 이 점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거나, 혹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그리스도교 전례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축하하는 일입니다. 이 구원 사건은 우리 전례력의 성삼일/부활밤 전례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래서 성삼일/부활밤 전례는 모든 다른 전례(주일 성찬례를 포함한)와 성사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전례의 원천이 되는 성삼일/부활밤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바르지 못하면, 그 밖의 전례와 성사 생활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목의 초점이 사라지고, 권위를 잃는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합니다.

올해[2009년] 성삼일/부활밤 전례의 실태를 사후에 현장의 사목자들로부터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번 성삼일/부활밤 전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전해 들은 바에 기초해서 판단하건대, 현재 한국 성공회의 전례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특히 성직자들은 이 전례의 중요성을 되돌아 보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성공회 사목의 근간에 대한 이해가 얕거나 그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서 우리 성공회 전통을 설득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특히 이 전례의 역사적인 발전과 신학적 의미를 새롭게 하고, 각 교회의 상황에 맞는 사목적인 전례를 검토하고 나누고 연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워크숍 제안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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