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공회 여성 성직 10주년 생각

한국 성공회가 여성 성직 서품을 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성찬례와 곁들인 축하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몸이 함께 하지 못하니 기쁘게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작은 후원금을 보내는 일로 하릴없이 대신했다.

여러 생각이 겹친다. 교회 역사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 그리고 교회 일치 대화에서 여성 성직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여성 성직 서품이 결정되기까지 수많은 여성이 흘렸는 땀과 눈물, 여전히 남은 과제들. 이는 또한 사적인 경험과 잡감으로도 번진다.

1. 여성 성직: 교회 일치의 걸림돌?
2. 사적인 인연
3. 세계 성공회 여성 성직 연대기

1. 여성 성직: 교회 일치의 걸림돌?

역사가들과 신학자들은 묻혀 있던 교회 여성의 역할을 추적하고 그 자리를 되살려 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여성 성직은 늘 성공회와 천주교 간 교회 일치 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천주교 안에서도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미래는 요원하다. 여성 성직에 대한 성공회의 태도를 간결하면서도 잘 드러낸 글은 이것이다. >> 여성 성직: “무엇”과 “어떻게”의 사고 방식

이런 참에 8세기 이탈리아에서 나온 전례문 한 토막을 흥미롭게 읽는다. 바로 여성 부제 서품식문이다.

여성 부제로 서품받을 후보자를 주교에게 추천한다… 후보자가 머리를 숙이고, 주교는 그의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한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거룩한 독생자를 동정녀에서 태어나게 하시어 여성을 거룩하게 하셨으며, 또한 성령의 은총을 부어 주셨으니, 성령님은 남성에게만 오시지 않고 여성에게도 오시나니, 이제 주님의 이 여종을 돌아보시어, 이 여인을 주님의 섬기는 직책으로 부르시고, 이 여인에게 넘치는 성령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아멘.”

주교는 서품받은 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지고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여성을 축성하여 주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주님을 위한 봉사자의 직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께서 페베를 선택된 사목직으로 직분으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이들 위에 성령의 은총을 부어 주시어 이 여종에게 그 일을 맡기시고 이 여인을 주님께로 축성하시어, 주님이 펼치신 사목의 은총을 수행케 하소서…”

(8세기 이탈리아-비잔틴 전례서 <여성 부제 서품식문> 바티칸 도서관)

그런데 왜 여성을 부제직에만 제한해야 하는가? 서품식문에 담긴 신학은 이미 사제직으로 연장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2. 사적인 인연

한국 성공회에서 여성 성직 논의는 1970년대 이후로 계속되었다. 사적으로 여성 성직 서품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터에, 여성 성직 실현에 박차를 가하려고 마련한 여성 성직 특별위원회에서 신학 자료 조사위원으로 ‘잠시’ 힘을 보탠 적이 있다. 1999년이었을 것이다. 태부족한 신학 자료들과 다른 나라의 역사적인 경험을 정리하고 좀 더 나은 토론의 길잡이로 제공하는 일이 내가 맡은 일이었다. 지금의 여성 성직자들이 그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잠시’만 일한 연유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구 의회에서 교회 발전 계획 보고서가 채택되었는데, 그 안에는 여성 성직 서품 논의에 관한 ‘보고서’도 들어 있었다. 그 보고서의 결론은 여성 성직 서품을 허용하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이 보고서 채택을 여성 성직 서품 허용으로 해석하여 어느 교구에서 여성 성직 서품을 전격 실행했다. 그 뒤 여성 성직 특별위원회는 갑자기 해체되었다. 어떻게 나도 그 일을 그만두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갑작스러운 실행을 보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조금 늦더라도 좀 더 내실을 다지면서 나갔으면 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갑작스러운 실행이 장기적으로 여성 성직 후보자와 이후 여성 성직자의 사목 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염려했다. 운동을 하더라도, 하는 사람이나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좀 더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이 개혁을 유보하는 논리로 이용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당시 논의 수준과 준비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나는 이런 생각이 혹시 나 자신이 누리는 남성 기득권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했다. 둘러보니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분투했던 많은 여성과 여성 성직 후보자들의 땀과 눈물이 흥건했다. 내 염려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무엇때문에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에 대한 희생을 담보로 유보할 수는 없다. 내 불필요한 염려, 혹은 내 무의식의 남성 기득권이 누구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나 않았나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쉬움은 남는다. 교황청의 경고를 받고 교수직에서 쫓겨난 한국 천주교의 어떤 사제 학자는 매우 독특하게 여성 사제 반대 논리를 편 적이 있다 한다. 남성들이 오랫동안 지배해서 망쳐놓은 성직자 상과 성직자주의를 타파하지 않고 여성 사제를 허용했다가는 여성들마저 망친다는 주장이었다. 천주교는 여성 사제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처지인지라 우스개로 던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이 매우 깊은 반성에 자리한 고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 오기 전, 교구 내 어느 여성 성직 후보자에게 짧게 당부했던 말이 기억난다.

교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에다, 별 무리 없이 성직 서품을 받은 사람으로서 말하기 참 미안합니다. 그 미안함을 무릅쓰고 부탁합니다. 저 같은 남성 성직자보다 더 잘하셔야 합니다. 불평등한 요구라는 걸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첫걸음의 발자국을 따라 다른 이들이 걸을 테니까요.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이 된 탓에 생긴 성직자 권위주의의 유혹이 곧 뒤따를 거에요. 그 유혹을 조심하세요. 끝까지 저 같은 남성 성직자를 동지로 여기고 참된 도전을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잘해 주세요.

아직도 이 당부가 유효할까? 떠난 지 오래여서 알 수가 없다. 아니 더는 이런 부탁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여성 성직 10주년, 한국 성공회의 모든 여성 성직자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연대와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3. 세계  성공회 여성 성직 연대기

  • 1862: 영국 성공회, 엘리자베스 캐서린 페라르드, 최초 여성 부제(deaconess)
  • 1944: 홍콩 성공회, 플로렌스 리 팀-오이(李添嬡), 성공회 최초 여성 사제
  • 1971: 홍콩 성공회, 제인 황, 조이스 베넷
  • 1974: 미국 성공회, 은퇴 주교들이 11명의 여성 사제 서품 – ‘불법’ 논쟁 격화
  • 1975: 미국 성공회, 5명의 여성 사제 서품 – ‘불법’ 논쟁 격화
  • 1975: 캐나다 성공회, 여성사제 서품안 통과
  • 1976: 캐나다 성공회, 6명의 여성 사제 서품
  • 1976: 미국 성공회, 여성 사제 및 여성 주교 서품안 통과, 이전의 여성 서품 인정
  • 1977: 미국 성공회, 최초의 ‘합법적’ 여성 서품
  • 1983: 케냐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
  • 1983: 우간다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
  • 1987: 영국 성공회, 여성 부제(deacon) 서품
  • 1988: 미국 성공회, 바바라 해리스, 성공회 최초 여성 주교 성품
  • 1989: 뉴질랜드 성공회, 페니 제이미슨, 여성 주교 성품
  • 1990: 아일랜드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
  • 1992: 호주 성공회, 11명의 여성 사제 서품
  • 1992: 남아공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
  • 1992: 필리핀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
  • 1992: 영국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안 통과
  • 1994: 영국 성공회, 첫 여성 사제 서품
  • 1995: 캐나다 성공회, 빅토리아 매튜, 여성 주교 성품
  • 1998: 일본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안 통과 및 여성 사제 서품
  • 2001: 한국 성공회, 민병옥, 첫 여성 사제 서품
  • 2003: 스코틀랜드 성공회, 여성 주교 성품안 통과
  • 2010: 영국 성공회, 여성 주교 성품안 통과

4 Responses to “한국 성공회 여성 성직 10주년 생각”

  1. 나무아래 Says:

    “갑작스러운 실행을 보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조금 늦더라도 좀 더 내실을 다지면서 나갔으면 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갑작스러운 실행이 장기적으로 여성 성직 후보자와 이후 여성 성직자의 사목 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염려했다.” 라는 부분에 공감이 갑니다. 적어도 한국성공회 안에서는 말입니다.

    저는 여성성직에 적극 찬성하고 지지를 보내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지만, 지나온 10년동안 그들이 흘렸던 눈물과 땀 만큼이나 내실을 갖추었어야 했어요. 쉽지 않았겠지만, 기성제도에 도전하고 개혁을 주도하는 입장에 있다는 사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여성’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성직’을 고민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반 남성주의가 아닌, “봐라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구호가 아닌,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연대하지 않는다면 자칫 여성성직은 또 하나의 기득권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10주년의 노고와 그 살아온 과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Reply]

    fr. joo Reply:

    나무아래 / 바른 식별을 비켜나가기 딱 좋은 일입니다. 그만큼 걸려넘어지기 쉬운 사안이고요. ‘악마’는 대로로 등장하지 않고 꼭 여길 치고 들어옵니다. ;-) 어려운 처지에서 애쓰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공정하게 비판적이 되기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그 균형에 대한 생각을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Reply]

  2.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잡감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10년 Says:

    [...] 성공회의 절반은 여성 성직 서품을 시행하고, 나머지 절반은 반대한다. 세계 성공회의 여성 성직 서품 시행 역사에서 ‘영국 성공회’는 늘 뒤처졌다. 1993년 여성 사제 서품이 [...]

  3.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성소 잡감 1 – 성직자와 평신도 Says:

    [...] 성직에 대해서 이런 말을 전하기가 참으로 미안하다. 여성 사제 서품에는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분투했던 많은 여성과 여성 성직 후보자들의 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적 사제직으로 서품받은 한 사람으로서, [...]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