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성직자들의 모임 – 미국 성공회
나이든 신부님께서 이런 농담을 하셨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네. 좋은 소식은 성공회의 35세 이하 성직자 가운데 절반이 최근에 열린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그 숫자가 겨우 신학교 채플을 채울 정도밖에 안되었다는 거야.”
미국 성공회의 소식이다. 미국 성공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성직자는 1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앞으로 35번째 생일을 맞게될 성직자들은 그 3퍼센트에도 지나지 않는 300여명에 불과하다. 신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는 성직후보자들은 평균 나이가 40줄에 육박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제들은 은퇴할 나이에 다다르고 있다.
이처럼 냉엄한 현실이 젊은 성직자들을 한데 모이게 했다. 이른바 “차세대의 모임”이라 명명한 회의가 지난 6월 버지니아 성공회 신학교에서 열렸다. 회의 처음부터 젊은 성직자들은 함께 모여 경험을 나누고 서로 사귀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이들이야말로 이후 30년 혹은 40년 동안 동료로서 지내며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미국 성공회 프랭크 그리스월드 수좌주교는 부인과 함께 이 모임에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이 모임이 서로를 위한 존중과 배려의 끈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이 공동체는 대립을 만들지 않고 서로에 대한 존경과 관심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상호 연대와 사랑이라는 교회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첫날 일정은 버지니아 교구 피터 리 주교의 환영사로 시작되었다. 리 주교는 이어 성직을 희망하는 대학 연령의 젊은 사람들을 찾아 격려해 줄 것을 부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명을 받고 능력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사제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사제직에 대해서 격려하고 권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염두했던 것은 함께 모여서 친교를 다지고 대화하고, 어떤 문제에 대한 논쟁은 덮어놓자는 것이었다. 많은 성직자들은 이를 의도를 존중했다. 물론 대화가 상당히 열띠게 전개된 적도 많았다.
초청 연사로 나온 알라바마 버밍햄의 폴 자흘 학장은 성공회의 정체성과 복음화에 대한 글을 참석자들에게 제출하며 토론을 유도했다. 이 결과 전통과 쇄신, 한계와 관용 사이에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모두 영국 중심적인 전통과 현재 전세계에서 실천되고 있는 성공회정신에는 깊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라틴 아메리카계의 한 사제는 “성공회 신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한 방법이다. 하지만 성공회정신을 너무 협소하게 정의하면, 그때부터 성공회 신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참석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준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것은 젊은 성직자들에 대한 편견이었다. 대체로 동료들이 없는 지역에서 봉사하고 있는 젊은 사제들에게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어려움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번 모임은 학교를 졸업하고 내 동년배들과는 처음으로 갖는 모임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젊은 사제가 온 것을 두고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성장을 원합니다. 그리고 젊은 가족들과 아이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뭔가 새롭고 색다른 것을 해보려고 상부에 건의하면 대답은 언제나 ‘안돼’라는 말뿐입니다.” 이런 공감은 계속 이어졌다. “젊은 성직자들은 정책 결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내가 들은 경고 가운데 하나는 ‘저 친구는 너무 젊어’라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사제들도 전국의회 대의원 선거에 대해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스월드 수좌주교는 이 회의가 끝난 후 전국교회실행위원회에 참여하여 나이든 성직자들에게 각 위원회에 젊은 성직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열어 놓을 것을 제안했다. 또 교구사목위원회에는 성직후보자들을 더욱 격려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도록 부탁했다. 또한 젊은 성직자들이 경험 많은 성직자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피곤하고 절망적인 분위기”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견 성직자들에게는 사제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리스월드 수좌주교는 이 모임에서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에도 불과하고 서로 존중하는 모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모임에 참여한 젊은 성직자들이 그토록 다양했다는 것이었다”고 실행위원회에서 털어놓았다. “젊은 성직자들은 마음에 있는 말들을 이야기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중견 성직자들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너그러움이 있었습니다.”
젊은 사제들 사이에 아주 심각하고 분쟁을 일으킬만한 이슈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런 문제를 중심 주제로 떠올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참석자들은 실로 다양했다. 보수적인 교회, 자유주의적인 교회 출신이 있는가 하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있었고, 전통주의자들로부터 진보주의자들까지, 그리고 고교회파부터 저교회파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한가지 그들은 모두 사제였다.
참석자들의 말이다. “이번 모임은 나에게 그토록 싫어하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적대 감정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멋진 희망이 아니겠어요?”
회의 끝 무렵에는 다음 회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한동안 이런 형태를 이어가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공감대 확산을 위해 로비를 하자는 소리, 우선은 행동보다는 공동체와 친교에 초점을 두자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현재 신학교에 있는 진정한 “차세대”의 성직자들을 위해서 후원자가 되고 지도자가 되는 모임이 될 수 없느냐는 주문도 나왔다.
아직 이들에게는 산적한 문제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 모임을 준비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틴 맥스패든은 마지막 설교에서 이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었다. 급속히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복음을 번역하여 전달하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에 깊이 뿌리내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려움 속에 놓여 있는 교회 현실 속에서 그는 이러한 희망의 메세지를 던졌다. “우리는 죽어가는 교인들을 도우라는 부르심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안락사를 도와주는 사람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산파이기 때문입니다.” (Episcopal Life)
viamedia | 98/10/04 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