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설교 전통과 미국 정치 및 문화
못돼 먹은 여우 한마리(Fox News)가 또 사냥감을 물었나 보다. 이번에는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The Rev. Jeremiah Wright)이다. 그는 최근 설교에서 힐러니 클린턴을 비롯한 많은 백인 대선 후보 경쟁자들을 백인 문화의 틀에서 온갖 특권을 가진 이들로 격렬하게 비난했다. 게다가 전형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설교가의 대단한 격정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바락 오바마가 다녔던 교회의 담임 목사였던데다, 정신적으로 그의 신앙적 멘토(mentor)였다고 한다. 나쁜 짓만 골라 하는 미국 언론의 여우가 호기를 잡았다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라이트 목사가 설교 시간에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를 신랄하게 씹어댔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는데, 무엇보다도 폭스의 보도 영상은 유투브를 타고 확산되며, 미국의 “우월한” 백인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라이트 목사의 말을 들어보면 다 맞는 것 아닌가? 하지만 능청스러운 품위를 가장하여 말투가 거칠다느니, 극단적이라느니, “반(反) 미국적’이라느니, 사회에 증오를 불러일으킨다느니 하면서, 이게 결국 오바마에게도 도움이 안될 것이라면서, 다시 오바마의 입장이 궁금한 척 하면서 언제라도 그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곧장 오바마는 라이트 목사의 견해와 거리를 두었다). 솔직히 거친 말하고 얼굴 안붉히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역사 안에서, 그리고 사회와 문화 안에 여전히 뿌리깊은 인종주의에 대해서 이런 분노를 한번씩이나마 표출하는 걸 가지고도 트집잡아 대선 정국에까지 몰고 가려는 짓은 죄질이 심히 불량하다.
물론 모든 백인들이 그런 건 아니다. 언젠가 한번 소개한 적이 있거니와, 실은 이 이야기도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Diana Butler Bass)의 성찰 깊은 글을 통해서 전해들었다. 모든 신자들이 설교자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이게 그 자리에 앉았던 교인들 전체, 혹은 그 교회의 일원이었던 오바마의 생각도 같다고 할 수 없다고 운을 뗀 배스는, 이 문제를 이렇게 진단한다.
라이트 목사에 대한 공격은 그리스도교 교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역동성에 대한 무지 이상의 어떤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공격은 여전히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 그리스도인을 여전히 갈라 놓고 있는 어떤 오해를 드러내고 있다. 많은 백인들은 아프리카계 그리스도들의 설교 전통을 매우 공격적인 것이라고, 특히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에 관련될 때 그렇다고 생각한다.
배스는 자신도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가운데 하나였음을 인정하며, 교수의 권유로 미국 흑인 사회의 신앙과 이들의 설교 전통을 연구하면서 이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감정 상의 극복 과정은 만만치 않았는데 특히 흑인 설교자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1852년 7월 5일에 행한 (미국 독립 기념일) “7월 4일은 노예들에게는 무엇인가?”라는 설교였단다.
이 정치적 설교는 백인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동료 시민 여러분, 모든 국민이 시끌벅적하게 즐기고 있는 이 시점에, 나는 무엇보다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울부짖는 통곡 소리를 듣습니다. 무겁고 참담했던 어제의 쇠사슬은 그들에게 다가왔던 희년의 환호성(노예 해방)을 통하여, 오늘에는 더욱 참을 수 없이 힘든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나아가 미국인의 행태를 “극악 무도하고 혐오스러운 것”이라며,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미국 헌법과 성서를 “짓밟고 무시한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이런 말로 설교를 끝맺는다. “이 혐오스러운 야만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위선이 어떤 반대에도 직면하지 않고 미국을 통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설교를 읽으면서 자신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비판의 힘”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흑인 설교의 예언자적인 본질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목소리들은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들에게 나온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성서와 사회 정의 사이를 연결짓는 내러티브를 존중하게 되었다. 이 설교들을 통해서 어떤 극한적인 상황에서 바라 보는 복음을 듣게 되었다. 노예, 해방된 흑인, 그리고 사적인 폭력에 대한 두려워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던 이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 설교들을 통해서 나는 예수를 통한 해방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종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백인들은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오히려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이루는 화해의 비전을 보고 싶어 한다.
경청하는 걸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내와 역사적 상상력, 그리고 내 친구들을 향한 – 내 흑인 친구들에게도 – 많은 불평이 필요했다. 결국 내 조상들이 억압자였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량과 변화에 열려 있는 마음으로 억압받는 이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복음에 비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백인들에게 이 말은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신앙과 문화 속을 깊이 흐르는 영적인 물줄기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권좌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이다.
어떻게 잦아들까? 하기야 공격은 그만 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다만 은퇴한 목사의 설교를 두고 물어 뜯는 걸 보니, 이제 부시 정부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지난 미국 대선 기간 동안 설교 시간에 대선 후보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고 하여 종교 조직의 면세 해택을 박탈한다고 겁주었던 세리청(IRS)이 떠오른다. (세리청은 LA 파세데나에 있는 성공회 올 세인츠 교회의 라가츠 신부의 설교를 문제 삼아 그 교회의 면세 혜택을 중지한다고 편지를 했고 법정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이제 이 교회에도 겁주기를 시도할까?
March 17th, 2008 at 9:52 pm
예. 라이트 목사가 틀린 소리한게 아닌데 이걸 가지고 저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보니 참 이성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지난 번 미셀 오바마의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인임이 자랑스러웠다”는 발언과 함께 엮어서 감정을 자극하려는 것을 보면 치졸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Reply]
March 17th, 2008 at 9:53 pm
매케인이 복사해서 기자들에게 돌렸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pdf)를 보면 이번 공화당과 수구세력들이 오바마를 본선에서 맞을 경우 어떤 수를 쓸 지가 들여다 보입니다.
지난 2004년에는 존 케리를 flip-flop 에 귀족 리버럴로 몰아부쳐 바보 만들었고, 1988년애는 듀카키스를 범죄에 약하고 국방을 모르는 꺼벙이로 만들어 버린 자들 아닙니까?
이런 것 보면 미국에서 리버럴이라는 사람들이 너무 이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어 번번히 선거에 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문제는 이런 보도를 보면 나는 그런 인종감정(혹은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감정) 전략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아주 많은 영향을 받을 것 같다는 지각의 제3자효과 때문에 노심초사하면서 괜히 늙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이 어린가 봅니다.
그나저나 결혼식 주례선 목사님인데, 거리를 두는 제스처를 해야 하는게 얼마나 마음에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Reply]
March 18th, 2008 at 12:25 am
아거 / 자기들 한 짓이 있으니까 이성을 모독하지 않고는 덮어 둘 수 없겠다는 판단인가 봅니다. 인용한 배스(Bass)의 글은, 따다 놓으신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염두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적하신 미국 리버럴들의 “이성에 대한 호소”가 역시 돋보이죠. 그게 이런 시궁창 싸움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똑같은 백인들은 아니라는 것과 자신의 변화 경험을 통해서 “흑인들의 경험”에 경청해서 배워야 한다는 점만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지각의 제 3자 효과”라고 하셨나요? 아마 한동안 깊이 앓았던 울컥증이 거기서 비롯되었나 봐요. 마음 추스리려 TV 뉴스도 잘 안보고, 한국 신문도 안들여다 보는데, 용케 이게 다른 블로그를 통해서 걸린 거죠.
이 목사님은 결혼 주례뿐만 아니라 오바마 아이들 세례도 줬다는 군요. 언론의 집요한 물음에 오바마는 자신이 늘 동의하는 것은 아닌 삼촌같은 분이라고 얼버무렸구요.
그나저나 라이트 목사님 대단한 격정가이시더군요. 유투브를 좀 살폈습니다. 덕분에 몸이 아파 퍼져 있던 하루를 잘 지냈어요. 폭스 뉴스의 어떤 애송이와 인터뷰 한 장면도 있던데, 인터뷰한다는 녀석이 공부도 하나도 안돼가지고 백전노장한테 덫만 치려고 하다가 보기 좋게 박살나더군요.
“흑인 신학에 대해 한권이라도 읽어봤냐”라는 라이트 목사에 질문에, 이 닭대가리가 한다는 소리가, “나 신학 공부했고, 신학교에도 갔고, 라틴어 배웠어!” @@. 라틴어 배우러 신학교 갔냐? 이런…
신학 공부했으면서 저널리스트 혹은 인터뷰어 흉내내려면, 목사 출신인 빌 모이어스(Bill Moyers) 정도는 돼야지 싶더군요.
[Reply]
March 23rd, 2008 at 8:53 pm
이상하게 흘려보냈던 글인데, 아거님 소개로 다시 읽네요. : )
실은 주신부님께서 쓰신 이 글은 일전에 제목만 읽고 통과( ^ ^;; )했던 글이네요.
제목이 다소 저에게는 추상적, 일반적으로 느껴져서, 좀더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딱딱하게 느껴져서 (^ ^;; ) 당시에는 그냥 지나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다시 읽으니 제목만으로 지나친 제 흥미위주의 선입견적인 포스팅 읽기 습관을 반성하게 됩니다.
아거님의 논평과 주신부의 솔직하고 격정적인 대답 말씀도 참 인상적이네요.
특히나 주신부님께서 주된 비판 대상의 하나로 다루고 게신 ‘여우(폭스TV)’는 우리나라의 거대신문들을 연상시킵니다. 정말 사람들이 진실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를 이슈화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피상적인, 하지만 골수에 각인된 ‘어떤’ 정서들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자신이 ‘거부’하는 정적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모습은 정말 닮은 꼴이네요.
주신부님, 좋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 )
[Reply]
March 23rd, 2008 at 8:57 pm
제가 좋아하는 블로거이신 미닉스님께선, 이런 명언을 하신 적 있더랬죠.
“블로그계에서 오타는 당대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본문에 사소한 오타가 계신 듯 하여… 굳이 알려드립니다.
이 댓글은 확인하시고, 귀찮으시더라도 꼭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 ^;
다른 독자들에게는 별 의미없는 노이즈에 불과해서 말이죠.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요.
별 것도 아닌데 말이죠.
첫번째 문단. 하단.
“라이트 목사가 설교 시간에 미국의 백[일]우월주의를 신랄하게 씹어댔기 때문이다”
[Reply]
March 23rd, 2008 at 9:18 pm
민노씨 / 아거님이 예전에 보여주시던 기독교 우파와 정치적, 문화적 이슈 선점 전략 등에 대한 분석들을 생각하면, 이 건도 아거님이 다뤄 주시리라 생각했어요. 다만 요즘 다 눈 감고 지내려는데 인용한 분의 글이 RSS 리더기에 떴던 거지요. 댓글에 아거님이 적절한 논평을 붙여 주셔서 가치(?)가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민노씨까지 다시 방문해주시고…
블로그 제목달기는 아직도 젬병이에요. 이건 고민을 했는데요. 좀 자극적인 제목을 달까 하다가 나도 폭스 같아지나 싶어 그만둔게 너무 보수적이고 추상적으로 달렸어요. 하지만 좀 내러티브하게, 필요할 때는 좀 자극적으로 달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민노씨를 놓치지 않으려면…
오자 지적해 줘서 고마워요. 비문은 차치하고 오자라도 안남길려고 노력하는데도 점점 늘고, 눈에도 잘 안보여요. 늙고 있는건지… 오자 탈자 지적은 언제나 환영…
[Reply]
March 24th, 2008 at 3:48 pm
별말씀을요.
제 피상적인 선입견을 반성해야 할테지요.
다만 주신부님 말씀처럼 일반독자들의 흥미요소를 조금 ‘배려’하는 차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정말 좋은 글이 너무 점잖은 혹은 너무 논문스러운(?) 제목 때문에 지나치는 것은 글쓴이에게도 또 독자에게도 모두 아쉬움이니까요.
물론 ‘자극적인’ 작명은 오히려 거부감이 생기겠지만요(다음 블로거뉴스의 에디터들이 이런 자극적인 작명으로 재미를 붙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블로거들이 송고한 글의 제목을 멋대로 고치더군요).
추.
그런데 제 댓글을 가만히 살펴보는데, 저도 누기가 있네요. ^ ^;
“주신부님,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 )”
‘글’을 빼먹었네요. ㅡ.ㅡ;;
[Reply]
April 30th, 2008 at 3:43 pm
[…] 문제의 발단은 몇몇 흰 여우들의 짓이었다. 미국 대선에서 미국 정치의 “백인” 정통성이 흔들릴 것이라 우려하는 이 못된 것들이 오바마의 상승세를 꺽어보려고 2003년에 행한 라이트 목사의 설교 한 토막을 갖고 쉬지 않고 TV에 틀어댔고, 오바마는 그와 조금의 거리를 두었다. (관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