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금요일: 정지된 시간
성 금요일이 처음부터 “좋은 금요일”(Good Friday)이었던 건 아니다. 누군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을 두고 “좋은 일”이라고는 미치광이가 아니고서는 할 말이 아니다. 십자가는 가장 참혹한 처형 방식이었던데다, 본때를 보여서 전면적인 공포 정치를 널리 알리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죽음과 그 공포는 시간을 정지시켜 버린다.
성 금요일의 사건은 예수의 체포, 심문, 판결, 그리고 처형으로 신속하게 흐른다. 이런 빠른 속도의 원동력은 두려움이다. 그것이 기득권을 지키려는데서 나왔든, 책임을 벗어나려는 행동이든, 아니면 기대와 실망에 대한 집단적인 분풀이든, 자기 보존과 안이의 인간 본능은 두려움에 힘입어 그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범죄에 자신을 내 맡긴다. 두려움에서 나온 증오가 사람들을 삼켜 버린다. 두려움은 어떤 대상을 설정하고, 그 대상을 심판하여 스스로 정당한 벌을 내린다. 여기서 권력과 대중은 상호 대결을 피하는 대신 그 경계에 있는 희생양을 처단한다. 이 합의된 폭력을 파시즘이라고 하든, 집단적 광기의 살인이라고 하든, 실상 이런 으스스한 말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라, 자기 본능의 한 축으로 늘 잠재해 있다. 사람은 그걸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그 조절 과정은 느리고 깊은 성찰로서만 지켜낼 수 있다.
십자가 처형 사건은 단순히 말해서 폭력에 대한 고발이다. 세상의 온갖 폭력과 죽임, 그리고 그 세력에 대한 고발이다. (이 단순성을 에둘러서 신학적 구원을 대뜸 운운하려는 것은 잘못된 신학의 첫걸음이거나 그 결과이다.) 예수께서 숨은 거두는 순간에 일어났다고 하는 현상들은 일상적인 시간의 정지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낮이 멈춰 밤이 되고, 멀쩡한 성전 휘장이 찢어질리 없고, 무덤이 터져 나올리 없다. 그리고 폭력이 계속되는 한 이 인간의 시간은 정지된다.
그제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죽임의 행진을 시작한지 5년째 되는 날이었다. 세계의 악동 부쉬는 이라크를 다 “부쉬”고도 여전히 전쟁을 계속할 것이란다. 계속되는 군인들의 죽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쟁 속에서 희생되는 민간인과 어린이들의 주검을 계속 보는 한, 세계의 시간은 멈춰 있다. 지난 세기로부터 이어지는 전쟁과 야만의 시기가 이어지는 대신 인간의 시간은 멈췄다.
사리와 사욕에 가득 찬 정권을 뽑아 놓은 우리 사회도 여전히 두려움에 가득차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 내가 그만큼 크거나 높지 않으면 내가 당하리라는 경험과 두려움이 편만한 사회는 시간의 초침을 돌리지 못한다. 이런 정권들에 동조하는 심리와 행태가 “죽이시오, 죽이시오”라고 외쳤던 2천년전 어느 총독부 뜰의 풍경과 겹쳐지는 것은 나만의 과장된 생각때문일까?
성 금요일이 “좋은 금요일”인 탓은 한 청년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이 헛도는 두려움과 미움과 죽임의 궤도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은 이 사건을 한(恨)-단(斷)의 변증법으로 풀었다. 그러나 이것은 부활 사건의 시선에서 본 사건 후의 해석 작업 혹은 의미 부여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 대한 신앙인들의 책임적 행동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두려움이 인종주의로, 성차별로, 지역차별주의, 학벌주의 등으로 계속되는 한, 자신의 일 밖에 대해서는 눈감을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한, 시간은 죽음 속에 묻혀 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April 10th, 2009 at 10:07 am
[…] 성 금요일: 정지된 시간 […]
April 29th, 2011 at 12:28 pm
[…] 부활 성삼일 전례와 영성을 다뤄 나눈 글에 대해서 몇몇 고린 어린 조언과 물음이 있었다. 특히 ‘성 금요일’에서 십자가 사건의 ‘구속’에 대한 강조가 부족하지 않으냐는 신중한 아쉬움을 전해 오기도 했다. cf. 성 금요일: 정지된 시간 […]
April 6th, 2012 at 10:15 pm
[…] 어떤 생명도 느낄 수 없는 곳이다. 부재와 침묵의 그늘이 지배하는 곳이다. 십자가 처형 이후로 정지된 시간의 연속이다. 다만,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피어오를 희망을 기대하고 […]
November 10th, 2013 at 1:44 pm
[…] 성 금요일을 지나 침묵의 성 토요일로 옮아가는 시간, 성공회 사제요, 시인으로 […]
February 26th, 2016 at 12:40 am
사순절 기간동안 신부님의 글을 가지고 묵상중입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으나, 제 안의 폭력이 커서 또 머뭇거립니다. 오늘은 제 안의 폭력을 들여다보며 지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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