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요일: 무덤의 침묵

성삼일(Holy Triduum)과 그 전례적 의미에 관한 글을 작년에 서울 교구 성직자들과 나눴다. 그 글을 이룬 파편들은 이미 이 블로그 여기저기에 있으니, 이곳에 적지 않은 성 토요일에 관한 부분만 따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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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요일은 성 금요일이 보여주는 부재와 결핍이 가장 고조된 날이다. 십자가 처형 후 예수님의 시신은 내려져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마련해 둔 무덤에 안치되었다. 그 무덤은 어둡고 차가운 곳이다. 그 무덤은 단단하게 막혀서 어떤 생명도 느낄 수 없는 곳이다. 부재와 침묵의 그늘이 지배하는 곳이다. 십자가 처형 이후로 정지된 시간의 연속이다. 다만,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피어오를 희망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서 무덤에 찾아가려 했던 여인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부재와 결핍에 따른 침묵은 우리 인간의 몫일 뿐이다. 성서(1베드 3:19)와 전통(사도신경)은 성 토요일에도 예수님께서 그 구원의 사건을 우리가 알 수 없는 지하 세계에서도 펼치셨노라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부재와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구원의 위업을 멈추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되찾아야 할 하느님의 자녀를 위해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이해를 통해서라야 우리는 정교회 이콘 전통이 보여주는 부활의 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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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이콘 – 음간(하데스)에서 아담과 하와를 이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2 Responses to “성 토요일: 무덤의 침묵”

  1. 나복찬 Says:

    부활의 진수를 보게하는 모습입니다.

    [Reply]

  2.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존 던 – “죽음아, 뽐내지 마라” Says:

    […] 성 금요일을 지나 침묵의 성 토요일로 옮아가는 시간, 성공회 사제요, 시인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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