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락 – 눈물의 대화

깊은 우정의 대화 속에서 감정과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내고, 다시 새로운 사랑과 격려의 에너지를 얻은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 다닌 길처럼 돌고도는 인생. 고마운 친구요, 선생님이요, 신부님을 가진 복락을 누렸다. 그 복락의 한 조각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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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lake, “Visions of the Daughters of Albion” circa 1795)

신부님을 5개월 만에 다시 뵈었다. 신부님께서 홍콩에 계시는 동안 이메일 몇 통만 간단히 나누고 말았다. 뵙고 싶었다. 여전하셨다. 그분의 건강한 모습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환대하며 염려하고 경청하시는 모습이 여전하셨다. 어느 처지에서든 당신 자신을 열어 놓고 여전히 배우시는 분임을 다시 확인했다. 삶에서 얻은 그 배움을 신부님과 나누는 일은 참으로 유쾌하다.

유쾌한 대화 후에 속을 찢어 토로하는 시간을 나누었다. 덫에 걸린 들짐승처럼 상처 입고 피 흘리는 내 모습이었다. 딴에 권력이랍시고 가진 것을 의식, 무의식으로 휘두르는 이들을 향한 혐오감, 그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이용당하느니 아예 초야에 묻혀 살겠다는 성급한 생각, 가치 없는 동네에 나 자신과 고민의 산물을 나눌 필요도 없겠다는 건방진 태도, 나도 어느 권력이나 특권을 얻으면 온갖 변명을 들이대며 적절히 즐기고 남을 짓누르게 될까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기대했던 이들에게서 발견하고 싶었던 길동무의 모델을 접어야 했을 때의 허탈함 등이 지난 몇 년의 내 허송 세월, 그에 따른 가족의 희생과 겹치며 눈물을 타고 흘렀다.

이것들은 지난 몇 년의 경험이었거니와 그 안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얻는 내 식별이기도 했다. 그러나 식별 자체로 일이 풀리지는 않는다. 분노는 분노대로 쌓일 뿐이다.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나누고 경청하며 도전하고 도전받는 길동무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남남이 되고 만다. 저마다 얻은 식별이 즐거운 내용이든 어둔 내용이든 그 식별 자체의 진가에 마음을 두어 깊이 서로 기도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선생님이자 친구, 그리고 말 그대로 아버지가 되어주신 신부님(Father)께 늘 감사하다. 대화 중에 신부님은 연신 함께 눈을 적시며, 아픈 속내를 나눠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돌아서서 떠나는 나를 다시 불러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오는 10월쯤에 신부님과 함께 운전하여 콜로라도에 다녀오는 계획이 성사되었으면 좋겠다.

***

“이렇게 에너지를 다 쓰고 그를 만나러 갈 수 있겠어요?”

온갖 감정을 다 쏟아낸 터라 신부님의 염려가 컸다.

“예, 에너지를 쏟은 만큼, 새 기운을 얻었으니까요.”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이제는 어머니 같은 친구 신부님을 만났다. 내 안의 분노를 다스리고, 내 안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잘 보호하는 방법을 나눠줄 테니, 어서 건너오라던 신부님이었다. 개와 고양이가 여러 마리인데다, 곧 이사를 준비하는 터라 집안이 어지러웠다. 이것저것을 밀쳐 치우고 너른 공간을 마련하여 서로 마주 앉아 차를 나누었다.

“무슨 차 마실래요?”

“난 커피가 좋은데요” “우리 집엔 커피 없어요.”

“흠… 음, 여기 detox 라 이름 붙은 허브 차가 있네요? 이걸로 하죠. 오늘 만남이랑 딱 어울리는데요?”

이미 한 시간 전에 어떤 묵은 감정을 토로했던 탓일까? 신부님과 나누는 몇몇 방법은 간단하고 손쉬웠다. 내부에서 어떤 격정이나 반항이 없었다. 그러나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충분하게 연습했다.

다시금 깨닫거니와 자신을 잘 보살피려면 내 안의 분노를 적절하게 내보내야 한다. 치미는 분노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다만 그것을 바로바로 내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분노를 쌓아놓으면, 작은 일을 타고 묵었던 분노가, 그 일과 상관없는 과거의 분노까지 한꺼번에 치고 올라와 일을 망친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망친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잘 돌봐줘야 한다. 예전에 여러 친구 신부님과 나누던 생각이 났다. 나도 늘 친구 신부님들께 간절하게 부탁했다. “신부님, 자기 자신을 잘 대해 주세요. 분노가 신부님을 삼키지 않도록 하세요.” 이 말은 내게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적절하고 유용한 자기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세상은 상처 입을 일로 가득하다. 어떤 선한 만남도 그렇다. 그렇다면 신발을 신고 길에 나가듯, 내 마음에 보호막 하나, 외투 하나를 걸치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를 보호해야 한다.

막바지에 신부님과 사목 이야기도 나눴다. 5~6년 정도 후에 은퇴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마도 지금 맡은 공동체는 자신의 은퇴와 더불어 생을 마감하리라 내다봤다. 슬프고 아픈 일이 되리고 담담히 말했다. 내 지난 4월이 생각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예, 나는 이미 겪었잖아요. 그런데 그거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말 그대로 어머니 같은 신부님(Mother)과 넉넉한 작별의 포옹을 하고, 다시 한 시간 반을 달려 돌아왔다. 남쪽으로 향하는 1번 국도 옆에 펼쳐진 바다가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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