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일등 – 고귀하게 빛나는 신앙

빈자일등 – 고귀하게 빛나는 신앙 (마르 12:38~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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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 장자만등’(貧者一燈 長者萬燈)이라는 불교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의 인도 지역 ‘사위국’에 ‘난타’라는 여인이 살았습니다. 가난하여 거리에서 잠자며 밥을 빌어먹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연등회 준비가 한창인 것을 본 여인은 자신도 부처님께 등잔 하나를 바쳤으면 했습니다. 여인은 구걸하여 얻은 동전 두 닢으로 기름을 사서 등잔에 부어 불을 밝혔습니다. 그 등잔은 부자들이 바친 것에 비해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등불이 하나둘 꺼졌습니다. 그런데 모든 등불이 다 꺼진 뒤에도 그 여인의 등잔은 꺼지지 않고 더 환하게 빛났습니다. 손을 휘젓고 입으로 불어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등잔이지만, 마음 착한 여인이 온 정성을 다해 바친 등잔인 탓이다.” 부자들이 올린 만개의 등은 모두 꺼졌지만, 가난한 ‘난타’가 바친 등잔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든 신앙의 도약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여기는 것을 포기하거나 바칠 때 일어납니다. 오늘 엘리야가 만난 사렙다 여인의 환대와 예수님께서 목격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서도 확인하는 진실입니다. 게다가 그 포기와 봉헌에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끝까지 내려간 절망의 순간에서 나온 연민이 더욱 크게 빛납니다. 사렙다 과부는 쫓기다 지친 낯선 예언자를 안타깝게 여겨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밥을 지어 낯선 사람을 대접했습니다. 자신과 아들이 지상에서 누릴 마지막 기쁨마저도 남루한 손님을 환대하며 내놓았습니다. 그 여인이 어떤 보상을 기대했다는 인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자비의 실천과 포기의 신앙에 선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자비와 연민의 종교적 행동을 사회와 정치에 깃든 신앙의 차원으로 안내하십니다. 부자의 헌금과 과부의 헌금을 크게 비교하시며 우리 삶을 정확히 보라는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하시고 당신 스스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걷기 시작하시기 직전에 나옵니다. 무너져야 할 질서와 종교 행태를 드러내시는 한편, 새롭게 세워져 부활해야 할 질서와 신앙의 행동을 열어주십니다. 무너져야 할 질서는 분명합니다. 율법학자들은 지금의 판사나 검사, 대학교수, 고위성직자를 포함하는 직업군입니다. 이들의 지위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지만, 권력과 재산을 향한 욕심으로 책임을 무시하곤 합니다. 게다가 이들은 과부 같은 가난한 사람의 등을 쳐서 자신의 탑을 쌓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으며 무너져야 합니다.

새롭게 세워야 할 삶의 질서와 신앙은 작은 사람의 헌신에 있습니다. 신앙인은 오히려 실패한 사람, 가난한 사람,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에게서 부활의 삶을 미리 봅니다. 신앙인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성공과 성취와는 거리가 먼 삶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위의 작은 사람과 사물에 깊은 연민을 지닙니다. 신앙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먼저 포기하고 내어주면서, 끝까지 밝게 빛을 발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삶을 여는 고귀한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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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와 사렙다의 과부 – 베르나르도 스트로찌, c. 1640-4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5년 11월 8일 연중32주일 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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