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고 환대하는 삶 – 성 안드레아 사도와 니콜라스 페라

이사 52:7~10 / 시편 19:1~6 / 로마 10:12~18 / 마태 4:18~22
2014년 12월 1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월요일 아침 성찬례

주낙현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오늘 축일로 지키는 성 안드레아 사도는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첫 제자였습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서는 안드레아가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먼저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사목과 선교 활동이 연결되는 지점에 성 안드레아 사도가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옛 시대의 끝이 새 시대의 시작과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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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 안드레아 사도는 열 두 명의 사도 명단에서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 가운데 핵심 사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핵심 사도로 등장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기지만, 안드레아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그리고 교회의 선교가 활발해진 이후에, 안드레아의 활약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그는 유럽의 북부 끝인 스키티아까지 올라가서 선교 활동을 벌였고, 지금의 동유럽과 러시아를 여행하며 선교활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 안드레아 사도는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러시아의 수호성인으로 존경 받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당시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 대교구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세계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 대교구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선교사로 계속 활동하려고, 동료에게 주교직을 물려주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리스 아카이아 지역의 도시 파트라스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는 X 모양의 십자가에 손발이 묶여서 처형을 당했다고 전합니다. 그 후로 X 자 모양은 성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성서의 기록을 보자면, 안드레아의 별명은 “따르는 사람”이었을 법합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 복음서의 장면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무래도 요한복음서의 설명이 더 그럴듯합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을 따라서 세상의 회개를 외치며 새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모본을 따라서 검소한 생활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고 지목하자, 안드레아는 요한 선생의 명을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올바른 외침과 생활에 자신을 던져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아는 또한 이러한 삶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형제 베드로를 불러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선생을 따르는 사람,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선생님을 내세우며, 초대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맡겨서 그 교회의 주인이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의 현실과 행태에 던지는 도전이 참으로 큽니다.

연원을 알 수 없지만, 교회는 11월 30일을 성 안드레아 성인의 축일로 지켰습니다. 교회는 대림절로 교회의 새로운 해를 시작하기 때문에, 성 안드레아 사도의 축일은 한 해의 성인 축일 가운데 첫 번 째 성인 축일이기도 합니다. 따르고 환대하라는 교회의 사명과 삶이 교회의 시작이어야 한다는 뜻을 되새겨 주려는 의도였을까요?

원래 11월 30일, 어제 지켰어야 할 축일을 오늘 12월 1일에 지키는 까닭은 축일이 대림주일과 겹쳐서 하루 미뤄서 지키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12월 1일은 니콜라스 페라(Nicholas Ferrar: 1592~1637)라는 분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페라는 영국 성공회 초기 수도자입니다. 한국 성공회 교회력에서는 지키지 않지만, 성공회 역사에서 니콜라스 페라는 매우 중요한 분이어서 그의 축일을 지키는 나라가 여럿입니다. 그는 헨리 8세 이후 거의 완벽하게 파괴된 수도원을 다시 일으켜 세운 첫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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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페라는 중세 교회의 재산 많고 권력이 찬란했던 수도회를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제 성직을 받았지만, 결코 사제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간 그는 친척들과 친구들과 함께 수도회 전통의 회칙에 따른 삶을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교회를 다시 세워서 수도원으로 사용하는 한편, 지역에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한 이웃의 건강과 복지를 살피는 사목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금식과 기도와 명상 생활에 충실했고, 성서의 이야기와 삶의 교훈을 그림으로 그려서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수도회에 대한 호감이 거의 사라졌고,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서 금식과 절제 생활을 꺼리는 현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페라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수도원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이 수도원 생활은 초대 교회의 수도원을 되살리는 사례였고, 2백 년 후인 19세기 영국과 세계 성공회 전역에서 다시 수도회가 부흥하는 영적인 자산을 마련했습니다. 현대 영미 문학계에서 최고 시인의 한 명으로 불리는 성공회 신자 T.S.엘리엇은 “리틀 기딩”(Little Gidding)이라는 긴 시를 남겼습니다. 이후에 그 유명한 <사중주>로 편찬된 시집의 마지막 네 번째 장입니다. 이 “리틀 기딩”은 바로 니콜라스 페라가 내려가 수도원을 세웠던 마을이요, 그 수도원 교회의 이름이었습니다. 시인 엘리엇은 “리틀 기딩”을 방문하고 이런 구절을 적었습니다.

“우리가 시작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끝이며 / 끝을 내는 일이 곧 시작하는 일 / 그 끝이 우리가 시작하는 곳.”

12월은 교회 시간(교회력)의 시작 달이지만, 세상 시간(세속력)의 마지막 달이기도 합니다. 한 해를 끝내는 시간에 겹쳐 우리는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안드레아 사도가 자신의 세상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삶을 따르기 시작하며 다른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초대했던 것처럼, 새로운 마감과 시작이 겹치는 삶, 새로운 따름과 환대의 시작이 여러분에게서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니콜라스 페라가 세상의 권력과 부를 끝내고 작은 시골의 삶 속에서 새로운 수도원과 영성 생활을 시작하며 사람들을 보살폈던 것처럼, 이 12월이 여러분에게 새롭게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며, 이웃을 발견하고 보살피는 시간이길 빕니다.

“우리가 시작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끝이며 / 끝을 내는 일이 곧 시작하는 일 / 그 끝이 우리가 시작하는 곳.”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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