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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겸 “민중의 아버지” 영역

Tuesday, June 29th, 2004

Father of the Lowly

By Kim, Hung-Gyum (1961-1997)
Trans. by Joo, Nak-Hyon (2004)

Respond to us, O God whose tongue is cut,
Hear our prayers, O God whose ears are stopped,

God, you turn away your burned face from us,
And yet you are my only one, my dear old father.

O God, are you dead?
O God, are you in the dark weeping under a back street shadow?
Or are you thrown away like refuse in a dump?
Oh, my poor God.

God, you turn away your burned face from us,
And yet you are my only God, father of the lowly.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짤린 하느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

영역 후기:

이른바 그의 ‘까마득한’ 학과 후배였지만, 동문인 탓에 학교에서 그를 몇 번 만났다. 빈민 선교하는 선배들은 야학이나 빈민 선교 일손을 구하려고 졸업 후에도 늘 학교를 찾았고, 밥 사주고 술 사주며 얼르며 신입생들을 설득했다. 이후에도 빈민 선교 연합 모임이나 민중 교회 연합 모임 등에서 그를 몇 번 만났다. 대체로 회의 끝난 이후 술자리였다. 그 전에도 나는 ‘민중의 아버지’를 듣고 노래 부르곤 했었다. 그는 전설이었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전설치곤 첫 인상이 참 지저분하고 과격했다. 나 같은 ‘하층 농촌’ 출신은 과격하더라도 보수적인데가 많아서, 당시 ‘도시’ 빈민 선교하는 선배들의 차림새와 행태를 속으로 능멸하곤 했다. 노래 ‘민중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도시인의 아버지이다. 그래도 그를 포함한 많은 선배들(전도사, 목사, 신부)의 삶과 투신은 어린 내 마음에 큰 영향을 남겼다.

이후 나는 늦게 입대했다가 2년 후 풀려났다. 우리 교단 내에서 성직자가 된, 그의 동기인 선배들을 만났는데, 김흥겸 선배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군대에 있을 때, 그의 소식을 듣던 참이었다. 암 투병을 하다가 몸이 좋아진 후, 성공회 쪽에서 성직을 희망했노라고 했다. 그런데 다시 악화되어 이제는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얼마 후 신촌 세브란스에서 열린 그의 살아있는 ‘장례식’에 갔다. 많이들 울었다. 특히, 그가 어느 대목에서 ‘사람들에게 용서를 빈다’고 했을 때, 많은 이는 죄책감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 해 1월 어느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잠시 생각하다, ‘죽은 자’의 장례식에 가지 않겠노라 답했다. 이미 그의 ‘산 장례식’을 치른 탓이라 했다. 아니, 그냥 그가 살아있는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싶었다. 그 날 밤, 아내와 술을 한 잔 했다.

대학 생활 이후로 도시에 산 탓에, 그 ‘도시인’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여러 사연으로 미국 땅에 유학을 왔다. 옛 생각과 더불어 한국 생각도 많이 났고, 내 생활도 여전히 궁핍했다.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종종 이 노래를 불렀다. 어느 짧은 페이퍼를 위해 어떤 시를 번역했다가, 갑자기 이 시가 떠올랐다. 흥얼거리다가 단숨에 번역해서 친구인 신부님께 살펴달라면서 번역을 마무리했다. 2004년 어느 여름 날 허름한 카페에서, ‘작은 이들의 하느님’을 부르며, 그와 그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5.18…

Wednesday, May 19th, 2004

한국날짜로는 어제, 여기로는 오늘이 5.18 광주민중항쟁 24주년 기념일입니다. 24년이라는 시간은 그 일을 손쉬운 과거로 돌리기도 하고, 발빠른 망각으로 망월동을 참배하는 5-6공 세력까지 목격하게 합니다. 잊혀지는 기억에 대한 힐난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듯이 보입니다.

200805181408.jpg

하지만 이 사진의 주인공은 이제 그 세월을 건너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되었겠고, 그 아버지 부재의 24년이라는 기억은 채워질 수 없는 깊은 허공과 같을 것입니다. 다만 그 빈 기억 속에서 한국의 민주화가 이만큼 진행되었고,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혹독하지만 착실하고 아름다운 민주화의 성취 과정을 가진 저력이 드러났다는 사실에서 작은 위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13살에 풍문으로 들었던 그 참혹한 아픔의 현실이 내 눈에 사진으로, 그리고 동영상으로 확인이 된 것은 몇년 후의 일이었고, 내 삶의 진로에 대해 온갖 감상적 생각에 젖을 그 무렵의 나이에 이 죽음의 기록은 전혀 다른 차원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제가 되기까지 그 기억의 충격과 더불어 더많은 죽음을 접하게 되었고, 때로는 그 주검을 망월동에 옮겨 묻는 손을 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 기억들이 선연한데 세월을 탓하며 망각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더구나 2000년의 세월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신앙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이 24년의 세월 속에서 그 일을 잊는다면, 이는 그 기억에 근거한 신앙의 배신이거나, 위선의 신앙이겠지요.

김민기 “금관의 예수” 한국성공회성가(1990) 477장